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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 한 분 하나님(7) [2]

  • Apr 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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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6 한 분 하나님(7)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어제 말씀드린 심판에 대해서 보충할 게 있습니다. 보충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요소이지요.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에 완료되지만 이미 역사 안에서 선취(先取)의 방식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사실이 바로 기독교가 유대교의 아류로 떨어지지 않은 중심입니다. 특히 부활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예수의 부활이 왜 심판의 선취일까요? 부활의 ...

4월5 한 분 하나님(6) [1]

  • Apr 0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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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5 한 분 하나님(6)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어떤 분들은 지옥불의 심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주장합니다. 눅 16:19-31절에는 소위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지였던 나사라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윤 아무개 목사님은 이 구절을 자주 인용합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태기도 합니다. 거지 ...

4월4 한 분 하나님(5) [6]

  • Apr 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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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4 한 분 하나님(5)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만인구원이라는 말에 기분이 불편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기분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단지 기분만이 아니라 영혼과 관계된 문제라서 더욱 심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분명히 배타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연루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심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에도 분명하게 거론되었습니다. ...

4월3 한 분 하나님(4) [4]

  • Apr 0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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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3 한 분 하나님(4)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앞의 묵상을 읽고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냐, 하고 생각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든지 않든지, 바르게 살든지 못되게 살든지 누구나 똑같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굳이 지금 힘들게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은 기독교 신앙과 거리가 멉니다. 우선 예수님을 믿는 게 힘들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

4월2 한 분 하나님(3) [2]

  • Apr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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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2 한 분 하나님(3)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바로 앞서 두 번의 묵상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뉘앙스로 전달되었을 겁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구원의 우주론적 능력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인간의 악까지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제 세 번째 이유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한 위격인 성령은 ...

4월1 한 분 하나님(2) [11]

  • Apr 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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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1 한 분 하나님(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어제 묵상에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이 적극적인 차원과 소극적인 차원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구별이라기보다 변증법적 긴장관계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인 차원에서 구원 경험을 하지만, 동시에 소극적이 부분도 열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구원 경험을 진실하게 한 사람은 당연히 소극적인 부분을 배척하지 않습...

3월31 한 분 하나님(1) [4]

  • Mar 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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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31 한 분 하나님(1)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12:32) 서기관은 앞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한 분이신 그 하나님은 누구일까요? 그 하나님은 성서가 말하는 바로 그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에서 절대자로 따르는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 대상은 없습니다. 없는 것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위의 정답을 기독교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과 역...

3월30 이웃 사랑 [4]

  • Mar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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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30 이웃 사랑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12:31) 둘째로 중요한 계명은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막연하게 들리지만 이웃 사랑은 구체적인 것으로 들립니다. 여기에도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이웃이 굶주렸을 때 먹을거리를 나누고, 아플 때 간호를 하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서로 돕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이런 이웃 사랑을 어느 경지까지 실천해야 하는지에 있습니다. 본문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듯...

3월29 하나님 사랑 [1]

  • Mar 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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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9 하나님 사랑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12:30) 신명기의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가장 으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 목숨, 뜻, 힘을 다하라고 합니다. 인격 전체를 모두 기울이는 사랑인 셈입니다. 이런 사랑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랑은 고사하고 우리는 사랑을 흉내 낼 줄 모릅니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실이 무엇인...

3월28 쉐마! [3]

  • Mar 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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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8 쉐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12:29) ‘쉐마’는 ‘들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서 신명기 6:4,5절을 인용했습니다. 그 구절의 시작이 쉐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은 제의적인 모임을 시작하는 부름말이라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바꾸면 ‘예배의부름’ 정도가 되겠군요. 예수님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아침저녁으로 이 본문을 낭송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들어야 할 말씀은 “주 곧 우리 하나...

3월27 첫 계명 [3]

  • Mar 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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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7 첫 계명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12:28) 예수님이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뒤로 계속해서 논쟁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막 11:27절 이하에서는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소란을 피우느냐고 따져 물었고, 막 12:13절 이하에서는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흠집을 내려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으냐 하고 물었으며, 막 12:18절에서는 사두개인들...

3월26 산 자의 하나님(4) [3]

  • Mar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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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6 산 자의 하나님(4)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이 구절이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만 삶이, 참된 삶이, 영원한 삶이, 부활의 삶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인 부활은 독립적으로 어떤 것을 말한다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서만 그 의미가 살아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나무도, 강과 산도, 심지어 바위도 생명을 얻습니다. 지구의 생명이 ...

3월25 산 자의 하나님(3) [5]

  • Mar 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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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5 산 자의 하나님(3)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12:27) 살아있다는 것을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너무 도식적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람의 입장과 하나님의 입장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이런 짧은 글쓰기에서 이런 문제를 일일이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대로 남겨둔 채 중요한 것만 짚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논점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입니다....

3월24 산 자의 하나님(2) [2]

  • Mar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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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4 산 자의 하나님(2)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12:27) 우리는 살아있다는 말의 의미를 너무 축소시킨 채 살아갑니다. 생물학적인 차원으로 좁혔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뇌와 심장이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세포가 분열하고 위장이 움직이며, 그래서 신진대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생명 현상으로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기만 한 걸까요? 다른 건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이런 생명 현상이...

3월23 산 자의 하나님(1) [6]

  • Mar 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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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3 산 자의 하나님(1)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12:27) 저는 어제의 묵상에서 출애굽기 3:6절의 인용이 부활에 대한 근거로 얼마나 정확한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신약의 관점을 통한 해석으로 그 의미가 훨씬 심층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에 나타납니다. 우선 그 이유를 문장의 표면적 의미에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의 관점에서 출애굽기 3:6절이 말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운운은 아브라함이 살...

3월22 아브라함의 하나님 [2]

  • Mar 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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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2 아브라함의 하나님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12:26) 예수님은 출애굽기 3:6절을 인용했습니다. 떨기나무 현상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모세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출애굽기의 이 구절이 부활에 대한 근거로 제시될 수 있는지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우선 출애굽기의 이 구절은 부활 자체...

3월21 천사처럼 [4]

  • Mar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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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1 천사처럼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12:25) 예수님의 대답이 계속됩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와 시집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은 당연합니다. 지금의 결혼은 생물학적으로 후손을 번식하는데 필요한 관습입니다. 부활은 그런 차원과 전혀 다른 생명의 세계니까, 거기서 결혼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을 너무 기능주의적으로 설명한 것 같긴 하군요. 남녀의 사랑, 가족의 의미 등을 생각해야 하겠지요. 그것은 다른 주제니까 여기서는 논...

3월20 앎과 믿음의 관계 [3]

  • Mar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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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20 앎과 믿음의 관계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12:24) 트집 잡듯 질문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시는 것으로 대답을 시작하십니다.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는 것은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인식의 오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인식의 오류는 당연히 판단의 오류를 불러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이 말씀은 한국 기독교에 딱 들어맞습니다. 우리에게는 ‘앎’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것...

3월19 일곱 남자와 한 여자 [2]

  • Mar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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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19 일곱 남자와 한 여자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12:23) 사두개인들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일곱 형제들이 모두 차례대로 한 여자와 결혼해서 살다가 죽었다면 부활 때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참 고약한 질문입니다. 이들은 이런 질문의 대답을 얻으려는 게 아닙니다. 누구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통해서 부활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뿐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

3월18 수혼법 [5]

  • Mar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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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18 수혼법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급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12:20-22) 신명기 25:5절 이하에 나오는 율법은 아주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식이 없이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말하자면 수혼법(嫂婚法, levirate marriage)에 관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은 자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재혼하지 말고 남편의 형제와 결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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