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의 딸 이야기

(사사기 11:34-40)


오늘 우리는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딸을 야훼께 번제물로 드렸다는 이야기이다. 왜 이런 이야기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자리하고 있는지, 그게 참으로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고상하고 거룩한 가르침이나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진술이어야 할 텐데, 아무리 하나님에게 서원했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딸을 불에 태워 죽인다는 말인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런 이야기 앞에서 교회 밖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불을 보듯 분명하다. 그들은 아마 성서의 야훼도 인신제사를 행했던 고대의 여러 종교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간주할 것이다.

혹시 이 사건은 성서 편집의 과정에서 실수로 들어간 게 아닐까? 이런 일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일점일획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성서의 편집이라는 말이 상당히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이다. 하나는 그게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절대성에 의존하는 종교라 하더라도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처럼 호도하는 건 건강한 신앙이 될 수 없다. 성서는 전승과 편집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성하고 해석한 신명기 역사는 두말할 것도 없고, 예수의 공생애를 보도하고 있는 복음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삭제될 건 삭제되고 새로 추가될 건 추가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런 전승과 편집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계시되는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은 없다. 물론 성서는 예언자와 성서기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전달할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도 없다. 바람과 대화하는 시인들의 영감이 간접적이듯이 성서기자들의 하나님 경험도 간접적이다. 하나님 경험이 간접적이라면 그의 말씀을 받는 것도 역시 간접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 말씀이 참된 계시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늘 검증받아야 한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성서의 형성이 불확실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위에서 필자가 경솔하다는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실수 운운 한 것은 이 사건이 성서의 다른 데서는 비슷한 유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 산 전승이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이 두 사건은 아예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모리아 산 전승에서는 모든 걸 야훼 하나님이 주도하신 것으로 진술된다. 아브라함을 불러 아들을 바치라는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번제물을 준비한 것까지 일체 야훼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반면에 오늘 본문인 입다의 딸 전승은 입다가 주도하는 이야기이다. 야훼 하나님이 그에게 딸을 바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그는 일종의 공명심 비슷한 심리로 딸을 바치겠다고 공언했다. 포괄적으로 본다면 자식을 번제로 바친다는 동기가 양쪽에 모두 깔려 있기는 하지만, 주도권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더구나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은 살고, 입다의 딸은 죽는다는 결과를 놓고 본다면 양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는 인신제사를 근본적으로 불신앙으로 본다. 몇 구절을 인용하겠다.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8:21)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레 20:2,3)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면 가증이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신 12:31)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신 18:10,11)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7)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구약성서는 몰렉에게 자녀를 번제로 드리는 행위를 혐오하고 있다. 입다 이야기는 분명히 전체 구약성서와 충돌한다. 딸 번제 사건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사 입다에 관한 전승의 기조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서기자가 이렇게 성서전통과 이질적인,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이교적인 내용을 끌어들인 데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가? 아니면 위에서 거론한 것처럼 편집과정에서 일어난 단순한 실수인가? 그동안 이에 관한 많은 성서 신학적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필자도 여기서 어떤 명확한 대답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 이 문제는 필자의 전문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그럴 능력도 없기도 하다. 다만 백정처럼 인문학적 사유라는 칼을 들고 오늘 본문을 해부해보려고 한다. 그 칼이 잘 들어야 할 텐데, 어쨌든지 앞으로 가보자. 


입다의 서원행위

입다에 관한 이야기는 사사기 10장 후반부에서 12장 중반부까지 자리하고 있다. 아주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입다 전승은 크게 세 대목으로 구분된다. 첫 대목은 암몬과의 전쟁, 둘째 대목은 딸의 희생, 셋째 대목은 에브라임과의 전쟁이다. 암몬과의 전쟁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에브라임과의 전쟁은 의외다. 이스라엘의 같은 열 두 지파에 속한 길르앗과 에브라임이 전쟁을 벌였다는 건 내전을 가리키니 말이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부족들과의 영토 분쟁에 열두 지파가 연합해야 할 그 시점에서 내전을 벌였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 전쟁의 동기도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사소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이런 불평을 쏟아냈다.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12:1) 이런 주장만 본다면 이건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 위험한 전쟁에 참가하지 않게 해주었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 아닌가. 여기에는 아마 다른 속사정이 있을 법하다. 필자의 생각에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전쟁에 참가하지 못해서 결국 승전국에게 돌아가는 전리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사시대에 각각의 지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서로 경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은 아마 다윗과 솔로몬 왕조에 이르러 확고하게 정립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윗 왕조 이후로도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에는 위기가 많았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시대에 여로보암의 반역에 의해서 나라가 둘로 나뉘었으며, 주변 제국의 공격과 식민정책에 의해서 사마리아가 유대와 대립하게 되었다.  


*우리는 구약성서가 제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너무 쉽게 확고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흔적은 성서 역사가들의 해석에 의해서 재정립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엄밀한 해석학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건 확실하다. 삼국시대에 백제 사람들이 고구려 사람들과 통역 없이 대화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게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나라로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으로 고구려를 친 것은 외세의 힘으로 같은 민족을 친 게 아니라는 말이 된다. 신라로서는 고구려나 당이나 모두 다른 나라였으니 말이다. 오늘과 같은 국가라는 개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길르앗과 에브라임의 내전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입다는 두 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다. 전술, 전략이 뛰어나기도 했고, 길르앗 지파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도 뒤따른 탓이리다. 승전의 결과로 그는 길르앗의 지도자로 우뚝 선다. 개천에서 용 난 격이다. 길르앗 지파에 속하는 입다는 원래 기생(창녀)의 아들로 서자였다. 길르앗의 본처가 아들들을 낳았다는 진술에(11:2) 따른다면 길르앗이 본처에서서 아들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기생에게로 간 것 같다. 이런 일들은 그 당시에 흔한 일이다. 뒤에 낳은 길르앗의 아들들이 자라자 입다는 쫓겨나게 된다. 이런 일도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당시 있을 법한 일화들이다. 기생의 몸에서 태어났다가 결국 아버지 집에서 쫓겨난 입다의 기분이 어땠을는지는 더 이상의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돕 땅으로 피신한 입다에게 ‘잡류’가 모였다고 한다.(3절) 입다는, 말하자면 조직 폭력배의 보스가 된 것이다. 입다가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었다. 이런 그의 면모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닌 다윗과 비슷하다. 다윗도 추방당해 약탈을 일삼는 강도떼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삼상 22:2절은 다음과 같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5장에는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강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성서기자는 강탈이 아니라 아비가일의 남편인 나발의 잘못으로 인해서 벌어진 사건처럼 진술하고 있지만 거기서 벌어진 일들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다윗은 조폭 두목과 비슷하게 행동했다. 입다 역시 무예가 높은 사람으로 널리 용맹을 떨치고 있었다.

입다는 단지 용맹했을 뿐만 아니라 협상에도 유능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입다 전승에서 그는 세 번이나 협상에 임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다. 첫째는 암몬과의 전쟁을 이끌어달라는 길르앗 장로들과의 담판이다. 입다는 도와 달라는 장로들의 요청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선 장로들의 약점을 짚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을 추방당한 사건이다. 기생의 아들이라고 쫓아낸 사람들이 이제 와서 도와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장로들은 입다에게 최고 지위를 제시한다. 둘째는 암몬과의 담판이다. 입다는 암몬과 무조건 싸우지 않고 가능한 협상으로 풀어보려고 한 것 같다. 왜 공격하느냐, 하고 말이다. 땅을 돌려달라는 암몬 왕의 주장을 입다는 지난 역사를 거론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이스라엘이 암몬의 땅을 빼앗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암몬 왕은 승복하지 않았고, 결국 전쟁이 벌어진다. 셋째는 에브라임과의 협상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암몬과의 전쟁 후에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것에 대해 불평하고 시비를 거는 에브라임 지파를 향해서 그들의 주장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실증적인 방식으로 논증한다. 여기서도 말로 해결이 되지 않고 결국 전쟁이 일어나서 에브라임이 크게 당한다. 어쨌든지 입다는 자기가 벌여야 할 전쟁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변론할 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암몬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에 입다는 야훼께 서원했다. 전쟁에서 승리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가장 먼저 나와서 영접하는 사람을 야훼께 드리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구약성서에는 서원이 흔하다. 자기의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도 많다. 삼손도 서원과 연결되며, 사무엘도 그렇다. 그러나 이들의 서원은 야훼를 위한 일에 자식을 바치겠다는 것이지만 입다의 서원은 번제로 바치겠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도대체 입다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서원을 했을까?

우리는 그 저간의 사정을 완전히 알 도리가 없다. 몇 가지 가능성만 내다볼 수 있다. 입다는 전쟁 승리 후에 딸이 제일 먼저 집에서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딸이 제일 먼저 마중 나온 걸 본 입다가 한탄하는 데서 이런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자기 집에서 부리는 노예가 마중 나오리라고 예상했을까? 노예를 예상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서원이 옳은 건 분명히 아니다. 어쩌면 그는 전쟁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뒷일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이야기에서 입다의 아내나 아들들이 전혀 등정하지 않을 걸 보면, 입다의 딸은 어머니 없이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무남독녀인지 모른다. 이건 모두 상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 장군의 허튼 서원 한 마디로 꽃 같은 소녀의 생명이 무참하게 땅에 떨어졌다는 비참한 결과만 알고 있을 뿐이다.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오는 무남독녀를 보고 입다는 옷을 찟으면서 이렇게 한탄한다.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11:35) 이런 한탄은 딸의 죽음을 목전에 둔 아비의 심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어서 나오는 딸의 대답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36절) 당시의 조혼 풍습에 따른다면 입다의 딸은 아직 철이 나기도 전의 어린 소녀였을 것이다. 그런 소녀가 자신의 죽음을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게 하는 하나님의 뜻과 연계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에게 두 달의 말미를 얻어서 친구들과 산에 들어가, ‘처녀’로 죽는다는 사실로 인해서 애곡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이스라엘의 딸들은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울었다고 한다. 이게 성서기자가 입다의 딸이 번제로 바쳐진 사건에 관해서 전해준 전말이다.


인신제사와 풍요 이데올로기

구약성서에서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이 처녀번제 사건은 이방 문서에는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크레테의 왕 이도메나에우스(Idomenaeus)는 폭풍으로 난파당하게 되었을 때 자기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면 자기를 맞으러 제일 처음 나오는 사람을 바다의 신인 넵튠에게 바치겠다고 맹세했으며, 아울리스에서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쳤다. 콜럼버스 이전의 멕시코 마야에서도 이런 인간 희생제가 행해졌다고 한다. 약간 다른 방식이지만 심청전도 역시 아버지를 위한 자식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인신제사와 비슷한 동기를 그 안에 담고 있다. 1929년에 우가릿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처녀 제사에 관한 정보가 많다고 한다.(필자가 보기에 C.S. 루이스의 작품 중에도 이 신화에서 따온 작품이 있다. Till we have a face. 루이스가 이 우가릿 문서에서 작품의 동기를 발견했을지 모른다.) ‘처녀 아낫’은 자연이 생기를 잃는 여름철에 바알을 애곡하면서 “땅 한 복판에 있는 모든 산과 들판 한 가운데 있는 언덕을...” 돌아다닌다. 이것은 분명히 땅의 다산과 관련된 제의이다.(J. Alberto Soggin, Judges, 국제성서주석, 판관기, 109 쪽 이하 참조)

고대인들에게 땅과 사람의 다산은 그들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기름진 땅에서 수확을 많이 거두고 자식을 많이 낳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 이후 40년 광야생활을 거친 뒤에 들어간 가나안도 바로 땅과 사람의 다산에 완전히 묶여 있는 곳이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은 바로 이들의 이런 삶을 보장해주는 신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과 결혼관계도 맺지 말고, 아예 상종하지도 말아야했다. 그들이 이렇게 가나안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은 이유는 풍요가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가나안의 온갖 종교적, 문화적 행위에서 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데에 있다.

가나안의 제의와 이스라엘의 제의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형식이 조금 다를 뿐이지 양쪽 모두 결국은 풍요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원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이스라엘도 야훼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내려주는 풍요의 신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아마 이런 것은 가나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가나안은 풍요 자체에 매달렸지만, 그래서 그것을 위한 모든 행위를 합리화했지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다. 가나안의 풍요 지향성은 축제 기간에 성적 방종을 허락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처녀 인신제물도 가능하게 했다. 이스라엘도 풍요를 원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야훼 하나님이 모든 삶의 근거였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야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성서가 가나안과의 관계를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으로 설정하는 이유는 가나안의 문명이 매력적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쉽게 그들과 결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훼 하나님을 아무리 바르게 따른다고 하더라도 풍요를 담보하는 가나안의 바알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쉽지 않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이런 일들이 반복되었다. 아무리 하나님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예언자들에게 들었어도, 그런 전승을 절기 때마다 의식으로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가나안의 보이는 풍요로 쉽게 기울어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풍요를 보장하는 가나안의 농경 신에게 기울어진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영혼이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가나안이 제공하는 풍요는 현재적인 구원이지만, 야훼 하나님의 약속은 미래적이라는 데에 근본 원인이 있다. 야훼 하나님은 지금 당장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한 약속이다. 더구나 거기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현재 풍요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에 자신의 미래를 의존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이런 신앙이 유지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가나안의 풍요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분명한 방증이다.

한국교회의 신앙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기복’이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며, 또한 복을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향이기에 그것 자체를 뭐라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낮은 자리나 구석진 자리가 아니라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기독교 신앙이 물질적인 복(풍요)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신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르긴 해도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날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본질과 더불어 복도 함께 받으면 좋지 않으냐, 하는 반론이 가능하다. 이런 주장은 가나안 종교에 직면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그들도 야훼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가나안의 풍요의 신을 섬기려고 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 상이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풍요로부터 부단히 유혹을 받았듯이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그런 유혹에 놓여 있다. 풍요를 향한 유혹에 휩싸이기 시작하면 극단적인 경우에 고대 종교에 흔히 나타나는 처녀 번제가 행해진다.

오늘 우리의 삶은 이런 처녀 번제와 전혀 상관이 없을까? 이런 일은 지난 인류 역사에서 반복해서 일어났고, 지금도 역시 계속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겠다. 지난 1월7일 경기도 이천 냉동 창고에서 화재가 일어나 수십 명이 타 죽었다. 희생된 이들은 대개가 외국인 노동자이거나 국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경쟁력이 없는 이들이었다. 최근에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의 여파로 어민들의 분신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도 역시 사회적으로 소외층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부모가 문을 잠가 놓고 일 나간 사이에 화재가 일어나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아이들이 불에 타 죽은 일들도 간혹 일어난다. 이런 일들은 풍요를 향한 무조건적인 숭배로 인해서 벌어지는 현대판 처녀번제가 아닐는지. 조금 더 기독교적인 유럽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화형으로 마감하는 마녀사냥을 만날 수 있다.

오늘 한국의 청소년들은 번제물과 다를 게 없다. 이들의 삶은 오직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고 있다. 노력을 많이 했거나 운이 좋아 괜찮은 대학에 들어간 이들이야 그렇다 치고,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청소년들의 삶을 누가 보상하는가. 보상은 무슨 보상이냐, 자기의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된 거지, 하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지구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인 옳은지, 무엇이 우리의 미래인지도 생각하지 못한 채 번제를 드릴 대상을 찾고 다니는지 모른다. 한 사람을 번제로 드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보장되는 그런 희생제물 말이다. 혹시 강바닥을 모두 긁어내고 보를 세우고 둑을 쌓아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운하사업도 역시 처녀번제는 아닐는지. 풍요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입다의 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레퀴엠을 부르자.

일종의 참극이라 할 입다의 딸 사건이 벌어진 뒤에 이스라엘의 딸들은 입다의 딸을 위해서 매년 나흘씩 애곡했다고 한다. 이런 풍습이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실시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스라엘 전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일부 지역에서 실시되었을 가능성은 높다. 이런 애곡은 ‘레퀴엠’을 연상시키다. 위대한 장군인 입다는 가부장적 군주 질서를 대표한다. 그의 딸은 아버지와 남자를 중심으로 한 억압적 체제에서 희생된 무력한 자들을 대표한다. 이름도 없는 이 딸은 자기를 방어할 어떤 수단도 갖고 있는 못한 채, 단지 통곡할 수 있는 두 달간의 시간만 유예 받은 채 속수무책으로 장작더미 위로 올라갔다. 이스라엘 딸들은 이제 입다의 딸을 위해서 진혼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기독교인들은 또 하나의 무기력한 죽음을 신앙의 토대로 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이 그것이다. 그는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렸다. 우리는 그와 더불어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레퀴엠을 불러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부르는 레퀴엠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오늘 기독교는 저주스러운 죽음을 위로하는 데서 예수의 십자가를 따른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폭력, 질병, 가난이라는 저주에 휩싸인 이들을 영혼의 깊이에서 위로하는 역할이 필요한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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