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을 위한 책갈피입니다. 나누고 싶은 책 내용이나 소개하고 싶은 글들은 이곳에 올려주세요~

[ … 모차르트의 음악은 바흐의 음악처럼 메시지적 성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의 음악처럼 자신의 삶을 고백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음악 속에서 어떤 교훈적인 것을 말하고 있지 않으며
더욱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특히 그의 후기 작품을 보고 그의 음악이 메시지적이라든지
또는 자신의 삶을 고백한 것이라고 보는 분석은 인위적이고 합당하지 못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을 통해 어떤 것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입니다.
그는 청중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며 어떤 결정이나 입장을 선택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청중에게 자유를 줍니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런 자유가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 ]

(「칼 바르트의 모차르트 이야기」, 문성모 역, 한들, 34p.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956년 바젤, Friedrich Reinhardt 출판사 발행의 Zwingli-Kalender에서)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연구에 매진할 당시
매일 아침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설교자의 신학적인 실존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남긴 목회자형 신학자인 바르트가
저 글을 써내려가면서 그런 부분을 암시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 글로부터 흡사 한국교회 강단을 향한 ‘바르트의 설교비평’을 듣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아래와 같이 이어지는 구체적인 평론의 글은
마치 그의 신학을 음악적으로 압축시켜 묘사한 내용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 모차르트의 음(音)은 가사에 의해 활기를 띠고 가사를 수반하며 가사를 감싸고 움직입니다.
음이 가사에 일치된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음이 주체성을 가지고 가사와 만난다는 뜻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각각의 음이 수반한 각각의 가사와 일치하고 있으며,
각각의 작품은 그 작품 각각의 가사하고만 일치하지
그밖의 다른 것하고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 ] (같은 책, 35p.)

그런 점에서, 바르트의 글의 본래 지평에선 벗어나는 내용이지만,
어떤 메신저로서가 아니라, 모차르트처럼 “단지 노래하고 연주”하며, “단지 청중에게 자유를” 주는,
그런 ‘연주자적 설교자’의 길이 어디일지에 대해 조용히 고민거리를 나누고 싶습니다.

순자(荀子)의 말을 덧붙여봅니다. “악(樂)은 곧고 바른 것에 화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에서 의(義)를 발견하고 선포하는 그리스도교의 설교자들이야말로
벌써 최고의 음(音)-악(樂)-가(家)로의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서 해석에 대해 정용섭 목사님께서 자주 드시는 ‘음악 경험’의 비유에 관해서도
더 심층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안하시길….

[레벨:9]용남군

2010.04.26 16:13:46

설교는 직통 커뮤니케이션일까요, 예술일까요?

성서 텍스트가 악보라면, 음악과 악기와 연주는 무엇에 해당할 수 있을까요.

말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일상인(혹은 노동자)’들의 망상,

그 망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장이 곧 설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말한 음(音)은 복-음(音)이고, 악(樂)은 순자의 악, 가(家)는 예수를 통한 하나님과의 혈연관계입니다.

모차르트는 36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치기까지 인생 후반을 줄곧 비참한 생활고 속에서 지냈다는데,

아무쪼록, 영원한 생명의 지평에 속한 음-악-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이 세대에 예수의 이름을 계승한다고 하는 설교자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자신의 언어로 영광스럽게 ‘연주’하는 설교자….

독백하듯 남기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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