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을 위한 책갈피입니다. 나누고 싶은 책 내용이나 소개하고 싶은 글들은 이곳에 올려주세요~

"펠라론 게이트 안쪽 말이오.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긴 천당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요?"

 

(중략)


  "그래. 어쩌면 너는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넌 장소 보다는 여정에 더 관심이  많은 패스파인더(pathfinder)고, 그러니 장소라는  것의 속임수에서 자유로울지도 모르겠구나."

 

  "무슨 말씀이슈?"


  "천국은 보통 하나의 장소로 생각된다. 그곳이 하늘 너머에 있든  어디에 있든,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기묘묘한 곳에 있든지간에 보통 사람들은 그곳을 어떤 장소, 그러니까 우리 주님이 계시고 착한 천사들이 착한 이들과 함께  오손도손 사는 어떤 '곳'으로  생각하지."

 

  "흐음. '곳'이라."

 

  "하지만 그건 어떤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이라는 말도 부정확하긴 마찬가지다. 사람은 장소, 즉  존재의 기준점을 빼놓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이 사용하는 말에는 모두 '장소'의 뉘앙스가 강력하게 스며있지.  참 어렵구나. 엘핀어로는 멋지게 표현된다고 들었다만 나는 엘핀을 잘 모른다. 하지만 이런 점을 생각해보거라. 사람들은 왜 그런 장소를  생각하게 되었을까?"

 

  "글쎄? 여기가 마음에 안드니까 저기겠지."

 

  파킨슨 신부는 놀란 얼굴로 데스필드를 바라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정확하다! 놀랍구나. 패스파인더라서 그런  건가? 그래. 네  말대로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마음에 드는 세상, 즉 천국을 생각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여기가 마음에  들면 저기로 가겠느냐?"

 

  "아니겠지."

 

  "여기를 사랑하면 저기를 떠올리겠느냐?"

 

  "아니. 음? 잠깐. 그 느끼한 눈빛은 당신 말 속에 든 무엇을  건져내보라는 강압인 거요? 본인은 그런 귀찮은 것 싫으니까 그냥 말하쇼."

 

  "…망할 놈. 좋다. 듣거라. 이곳을 사랑하면 다른 곳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이곳을 끝없이  사랑한다면 천국이 필요없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니까."

 

  "어라?"

 

  "그래. 너도 많이 들어본 것일 게다. 나의 원수 중의 원수이신 주여. 나의 고난에 고난을 선사하시는 주여. 들어봤지? 그게 이 세상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에 지친 인간의 주님에 대한 원망인 성 싶으냐?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의 경건한 자기 고백이다.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해야 한다. 죄는 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악은 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파킨슨 신부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여 벌떡 일어났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데스필드는 뒤쪽을 흘끔 바라보았고 마차에서 나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핸솔 추기경의 모습을 발견했다. 데스필드를 본  핸솔 추기경은 손가락을 입 앞에 세워보였다. 데스필드는 입을 다문  채 다시 파킨슨 신부를 돌아보았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파킨슨 신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별을 향해 설교하듯 말하고 있었다.

 

  "천국은 어떤 장소가 아니다. 그토록 많은 성인들이 순교는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자살은 하지 않은 이유가 뭐겠느냐? 왜 하루라도  빨리 천국으로 가버리지 않은 것이겠느냐?  천국은 가닿는 어떤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에 의해 분리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세상에 지어놓으신 이 많은 것들을  봐라! 그 분은 우리들이 사랑할  수 있는 이토록 많은 것을 주셨다. 비록 이것의 주인은  따로 있을지언정 이것을 최초로 만드신 이의 뜻은 변할 수 없는 법이다. 이  모든 것을
 한없이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다!"

  "그럼… 펠라론 게이트 너머엔 뭐가 있는 거요?"

 

  "게이트의 너머는 바로 이곳일 것이다."

 

  "뭐요?"

 

  "정확히는 말할 수 없어. 하지만 게이트는 통과만 상징할 뿐이지  구분이 아닐 거야. 알겠느냐, 데스필드? 너에겐  목적지라든가 출발장소 같은 것이 의미가 없지 않느냐.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길은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분하는 것이기도 하다.  길의 이쪽은 시작이고 저쪽은 끝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너에겐 그런 구분이 없지? 마찬가지야. 펠라론 게이트 너머는 바로 이곳일 것이다."

 

  "그럼 왜 들어가려는 거요?"

 

  "임마! 그러면 너는 왜 패스 위에서만 사냐. 껄껄껄!"

 

  데스필드는 싱긋 웃었다. 파킨슨 신부는 호흡을 고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찾는 것 또한 이곳에 있을 것이다. 난 그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서 나는 펠라론 게이트를 통과할 필요가  있을 게다. 그래서 나는 그곳으로 가는 거야."

 

 

 - 이영도의 <폴라리스 랩소디 6권> p 74

 

0. 정목사님의 '천당답사기(!)'를 보고 갑자기 떠오른 기억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인 이영도씨의 <폴라리스 랩소디>라는 환상소설의 한 대목이지요. 말 그대로 중고등학생들이 좋아할법한 '판타지' 소설입니다.(전 아직 정신 연령이 중고딩이라 아직도 좋아합...^^)

1. 저자는 딱히 종교를 가진 사람은 아닌 걸로 알고 있고, 이게 종교 색을 드러내는 책도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애들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등장 인물(파킨슨 신부)를 통해 말하고 있는 '천국(작 중에는 '펠라론 게이트'라는 용어로 나옵니다)'에 대한 이야기는 꽤 번뜩이는 통찰을 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허무맹랑함을 토대로 하는 소설에서, 깊은 기독교적 통찰이 빛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전적인 제 생각)

3. 결국 파킨슨 신부는 작 중 마지막 부분에서 기어코 펠라론 게이트(천국 문 앞) 안으로 뛰어듭니다. 그 속에서 그는, 의식적으로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지만, 흘낏 지나치듯 볼 때 어렴풋이 보이는 '누군가'를 만나지요.

4. 아...저작권 및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시면 자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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