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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최신신학의 흐름》-복음주의 신학/박만 지음/나눔사 p.140-141
현대의 복음주의는 비록 복음 전하기와 사회봉사 및 사회정의 실현이 똑같이 중요한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의 과제라고 보기는 하지만, 역시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가운데 결국은 현상유지적 성향을 띤다. 특히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국의 복음주의는 미국식 백인 중산층 문화를 반영하고 있고, 미국 중심주의에 사로 잡혀 있어서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미국의 복음주의의 상당 부분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과 연관되어 있으며, 다분히 군사적, 강압적, 자본주의적, 반공주의적, 무비판적이다. 그것은 미국의 국익을 반영하는 미국식 기독교이다. 한국의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어떻게 이런 미국 중심적인 복음주의를 창조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한국 복음주의의 큰 과제가 될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의 사회정치적, 체제 변혁적 요소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철저히 개인주의화한 속죄론으로 해석하며 특히 부활하여 승리하신 주권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그 메시지는 예수는 우리의 왕이시며, 승리자라는 데 기초해 있으며 여기에서 치료적 접근을 시도한다. 예수 안에는 우리 삶의 모든 고민의 해결책이 있다. 이 예수를 받아들이면 당신의 삶은 완전히 변화될 것이다. 여기에서 중생에 대한 강조가 나온다. 당신은 중생한 그리스도인인가? 당신은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물론 예수 안에 답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의 문제는 개인 실존과 사회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기보다 쉽고 간단하며 고민 없는 답변을 준다는데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가 속한 집단이 누리는 사회적 혜택을 계속 즐기면서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있다. 결국 이런 종교는 중산층의 허무, 무의미성, 위기의식을 그저 어루만져주는 시민종교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여기에 있는 것은 진정한 십자가 신학이 아닌 인본주의적인 치료나 소비상품으로서의 예수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심각하게 치료하지 않고 바로 부활에 넘어가 버릴 때에 기독교 신앙은 값싼 것이 된다.
왜 미국 복음주의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이는 미국 복음주의가 미국 중산층의 물적 토대에 기초해 있으며 그런 중산층 의식(Middle Class Mentality)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종교로서의 미국 복음주의는
첫째 체제유지적이다. 그것은 미국식 삶을 축하하며 축복한다.
둘 째 개인주의적이다. 죄는 음주, 도박, 방탕, 낙태 등의 개인적인 것이며, 구조적인 죄인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다국적 기업의 착취, 자연 훼손 등은 거의 혹은 아주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 이는 구조적인 것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 구조악의 주 생산자이며 최대 수혜자임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로서의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탈 정치적이며 반동 보수적이다. 중산층은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무관심은 결국 기존질서를 정당화하는 반동, 보수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다섯째 내면화되고 사유화된 종교이다. 여기에서 종교는 마음의 안정, 삶의 의미, 죽음과 불안의 극복과 연관된 개인적, 내면적인 문제로 이해된다.
여 섯째 소비의 종교이다. 미국의 대형 복음주의 교회의 예배는 마치 공연장과 같다. 최첨단의 조명 및 음향시설이 갖추어진 강대상 위에 가창력을 갖춘 탁월한 가수들이 나오며 예배도중 간단한 연극도 제공된다.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듯 마음에 드는 설교, 간증, 찬양을 제공하는 교회에 참석한다. 여기에서 참석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보다는 종교소비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일 곱 번째 성공 주의적이다. 로버트 슐러의 크리스털 교회 같은 대형 복음주의 교회의 예배에는 그 사회에 성공한 사람들이 꼭 초청인사로 등장해서 예수 믿어서 성공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미국식 꿈(American Dream)의 종교버전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복음주의는 폭력주의적이다. 미국 복음주의는 선민으로서의 미국을 강조하며 미국은 옛날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때로 군사적,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도 주저치 않는다. 전 대통령 부시가 후세인의 이라크를 공격할 때 이를 성전(holy war)으로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이 바로 이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었다. 결국 미국의 복음주의가 미국 중산층 멘털리티의 반영이라면, 비록 그것이 무신론적 세속주의에 반대하고 있어도 사실상 북미의 근본적 문제에 그대로 응답할 수 없다. 미국 복음주의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교회와 사회가 미국과 미국식 복음주의의 엄청난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나라를 위해 부름 받은 공동체가 되려면 미국 복음주의의 부정적인 것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레벨:12]진 예수만

2010.04.18 19:39:12

이건 하나의 "신앙의 막장드리마" 그것이라고 느껴지는데, 미국만이 아니라 지금

국내 실정도 비슷한 양상으로 가고 있어요. 사회 권세적인 면으로는 특히나 강남

어떤 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로 뭉쳐진 지금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러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내가 그 정권

틀별한 감정 같은건 없지만 나나는 사회 분위기적인 기류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거의 종말론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는 그러한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말세에는 믿는자(여기서의 "믿는자"란 진정한

믿음을 말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보기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점과,

(거짓 선지자들에 의한) 거짓된 신앙이 판을 치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 말입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당혹스러운 일들이, 종말론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성취(현시)하고 있는 그러한 현상의 하나일까요?

앞으로 얼마나 어려운(우리를 혼미케하는) 신앙의 때가 다가올런지를 가상하면 

참으로 두렵지 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보편적 시각으로 잘못

됐다고 보는 그 부류(공동체)에 완전히 합류하여 끼든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대열에서 일찌감치 아웃되든지, 그 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의 제3계'는 보기가 어렵게 될 것만 같아요. 우리 각자 누구든지

신앙을 도적맞지 않도록 단단히 각오하여 무장하고, 주의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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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바우로

2010.04.25 23:21:31

막장 ㅋㅋ

[레벨:10]차성훈

2010.04.18 19:53:38

사실 전밙거으로 틀린 얘기는 아닌데, 이런 식의 '일반화'는 곤란하지 않나 싶습니다. 복음주의는 단정짓기 어렵거든요. 짐 월리스가 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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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바우로

2010.04.25 23:22:39

물론 저도 짐 윌리스처럼 예언자적인 의식이 있는 소수의 복음주의 그리스도 교인들은 윗 글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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