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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고미숙 그린비

-요즘 고미숙씨 책을 읽다가 오늘이  어린이날이기도 하고 마치 어린이 날에 대한 글이 있어 실어 봅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에, 어린이를 위해 하는 일들이란 게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놀이동산이나 화려한 유원지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 아이들이 원하는 값비싼 물건들을 사주는 것, 혹은 럭셔리한 외국음식들로 외식을 시켜 주는 것 따위가 전부다. 어린이날이라기보다 어린이들을 ‘소비자의 왕’으로 군림하는 날이라는 게 더 맞을 지경이다.

 

청소년이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라는 명칭도 어디까지나 20세기에 등장한 개념이다. 특히 학교제도가 도입되면서 모든 국민을 연령별로 관리.통제하기 시작한 근대국민국가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런 문명담론은 일단 체쳐 두고 아주 단순하게 어린이날로 제정에 담긴 좋은 의도만 되새겨 보기로 하자. 당시는 일제치하라는 사회 전체가 궁핍했을뿐더러, 당시 한 가구당 식구는 열명이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이를 돌보고 배려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어린이날 재정은 이런 악조건속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환기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리고 해방 이후 80년대까지는 그런식의 사회적 배려가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 않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 집안에 형제들이 대여섯 명은 되었고, 한끼 배불리 먹으려면 형제끼리 아귀다툼을 벌여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분명 아니다.! 형제도 없을뿐더러 굶주림이 아니라, 영양광잉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아닌가. 다들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어린이날은 폐지되지 않는가? 그건 명백하게 자본의 농간이다. 자본은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가족의 사랑과 어린이의 순수함이라는 망상을 계속 유포한다. 온갖 화려하고 가식에 찬 이미지들을 총동원하여, 거기에 ‘내 자식은 특별해’, ‘하나밖에 없는데’, ‘힘닿는 한 최대로’ 이런 식의 가족(이기)주의가 맞장구를 친다. 가족주의와 자본의 노골적 결탁! 고아나 빈민, 한부모가정의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이 있지 않느냐고 반론할지도 모른겠다.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린이날 때문에 그 아이들은 갑자기 엄청난 결핍감에 시달려야 하고, 나아가 자신들이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것을 환기해야 한다. 만약 그 아이들을 정말 배려하고 싶다면 평소에 일상적으로 하면 된다. 그렇게 날 잡아서 쇼를 하지 말고...

 

말이 나온김에, 왜 어린이는 일방적으로 배려를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어린이는 어린이 나름의 힘과 능력으로 타인과 세상을 얼마든지 배려할 수 있다. 왜 어린이의 특권은 오직 받는 것에만 있다고 여기는가?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어린이든 노인이든, 매춘부건 병자건 누구나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누구나, 그 자리에서 ‘사랑해야’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사랑을 나눌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존재도 없고, 사랑이 필요없을 만큼 강한 존재 또한 없다. 무엇보다 그런 식의 일방적 배려는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는커녕 불행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길들여지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능력을 완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p101-103)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고미숙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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