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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부활 (4)

조회 수 1676 추천 수 0 2014.04.17 01:23:25

내가 믿는 부활 (4) <김승혜, 유동식>

 

<김승혜> : 서강대, 미국 하버드 대학 종교학 박사, 씨튼 수녀회 수녀, 전)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세계 종교 전통 속에서 내가 배운 영원에 대한 통찰

 

1. 인도의 현인 <야즈나발카> : 영원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파악할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으며,

    포착할 수도 없고 붙잡아 맬 수도 없다. 오직 인간 마음의 연꽃 안에 깊이 몰입 되어 체험으로만 알 수

    있는 내적이고 궁극적인 실재이다.”(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2. 제2이사야 : 이사야 40~55장의 저자, 자연과 역사를 분리하지 않고, 자연은 역사, 곧 인간 문화에 조건을

    부여하기 때문에 치유된 백성은 치유된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역 사와 자연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영혼의 불멸성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부활, 공동체의 회복을 말한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말하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처럼 창조된 모든

   생명이 구원되기 위해 신음하고 있다는 우주적 비전으로 연결된다.

 

3. 스리랑가의 붓다고사 : 5세기 소승불교의 신비주의자. 청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별하 는 마음을 버린

    무념수(無念修)가 참된 수행이라는 말은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느님을 뵈리라”는 희망과 다르지 않다.

 

4. 여성 수피 라비아 : 7세기 말 이슬람 전통 안에 사랑의 신비주의자. 심판에 대한 두려움, 곧 죄와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기도와 단식 등 고행하는 생활을 하던 경향을 바꾸어,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기쁨과 순수한

   사랑을 실행했다.

 

5. 아빌라의 대데레사 ; 16세기에 활동한 갈멜 수도원의 여성 신비가. 하느님과의 일치에는 항상 실천이 따르고,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순수한 사랑이 가능해진다. 나를 비우고 하느님 안에 온전히 살게 될 때, 하느님의 영원성을

    자기 것으로 함께 나누게 된다. 이것이 윌리엄 제임스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말하는 “열정적 수동성”

    (Passionate Passivity)이다.

 

나의 부활신앙

 

죽음이란 “인간의 결정적 행위로서 한 개인이 일생 동안 한 모든 인간적 행위를 마지막으로 매듭짓고 집약하는

사건이다. 육체적 죽음은 현상에 불과하고, 같은 죽음 안에서 인간적 파멸과 인간적 완성이 갈라진다.”라는

칼 라너의 말에 공감하며, 결국 지옥과 천당은 이런 인간적 파멸, 소멸과 인간적 완성을 상징하는 언어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의 완성은 이기적인 자기를 극복하고 비워서 순수한 사랑을 이룬 것으로 측정된다.

 

17세기 성인 빈첸시오 드폴이 말한 바와 같이, “초연의 덕(Indifference), 한 마디로 어떤 것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 이 일을 하든 저 일을 하든,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거절하지도 않는”마음의 자유가

한결같이 성덕을 특정지으며,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하느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닮게 된다.

 

또한 씨튼 수녀회 창설자인 엘리사벳 앤 씨튼처럼,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순간의 풍부한 은총을 신뢰하고,

우리가 행해야 할 모든 작은 책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만족을 발견하는 길이다.

 

복음서의 곳곳에 나타나는 치유 사화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뢰는 사랑에서

오는 것이며, 그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부활은 사랑의 완성이다. 부활의 구체적인 형태와 장소와 영원성은 아직도 내게는 숨겨져 있는 신비이지만,

사랑의 힘을 신뢰하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 지구와 우주를 당신의 생명 안에 영구적으로

안으시리라 믿고 있다.

 

토론

 

<김경재> 영원에 대해 성찰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김승혜> 하느님의 신비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김경재>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왜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결정적 순간인가?

<김승혜> 소멸과 완정성의 완결, 이 두 가지가 천국과 지옥을 의미한다고 본다.

 

<강대인> 생태학적 관점에서 몸의 부활에 대해 부연 설명해달라.

<김승혜> 인간의 몸이 부활하고, 예수님의 몸이 부활한다는 것은 이 우주가 함께 신음하고 우주 전체가

                  함께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최현민>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노래한 “죽음을 통해서도 주님 당신 찬미 받으소서!”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승혜> 죽음과 생명이 똑같이 귀하다. 그것은 모두 자연의 일부이다. 죽음이 없으면 생명이 지속될 수 없다.

                 죽음이 있어야 새로운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자연스럽게 늙어갈 것이다. 삶과 죽음이 똑같이 자연의

                 연결 고리로 중요하다. 우리가 죽음을 인간적으 로 이해해서 악이라 생각하지만 죽음 역시 복이다.

 

<박태식> 사랑의 완성이 종말이라고 했다. 사랑의 실체는 무엇인가?

<김승혜>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체험을 통해 자기를 비우기 시작할 때 사랑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유동식> : 감리교신학교, 미국 보스톤 대학, 도쿄 대학, 전)연세대 교수

 

나의 육체는 나날이 낡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의 속사람은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나날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겉사람은 땅을 향해 나날이 하향길을 달리고 있다면, 속사람은 하늘을 향해

나날이 상향길을 달리고 있다. 이 두 길이 만나는 지점에 죽음이 있고, 그 연장선상에 부활의 세계가 있다.(고후 4:16~5:5)

 

죽음의 시점에서 내 육신의 장막 집은 무너진다. 그러나 우리는 벌거숭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없는

유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가 준비하신 새로운 몸, 곧 하늘에 속한 영원한 영체를 우리에게

주신다. 땅에 속한 몸이 있듯이 하늘에 속한 몸이 따로 있다.(고전 15:40~42)

 

죽은 내가 하늘에 속한 영체를 가지고 부활하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보증해주신 진리이며,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일어나는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인격에는 중단이 있을

수 없다. 인격이란 몸을 지닌 존재이다. 몸이 없는 벌거벗은 영혼일 수는 없다. 다만 육체로서의 몸이 죽음과

동시에 영체로 바뀔 뿐이다.

 

율법적 선과 악의 심판을 기다리는 묵시문학적 중음계(中陰界, 연옥)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없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죽음을 죽인 사건이요,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사후에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미 생명의 세계로 옮겨진 것이다.(요 5;24)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 제1의 생일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써 거듭난 날은 제2의 생일이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죽음과 동시에 하늘나라로 가는 날은 우리들의 제3의 생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그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제3의 우주, 곧 6차원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6차원계란 영원과 시간, 영과 육이 하나가 된 이사무애(理事無碍, ‘理’와 ‘事’ 사이에 담이 없어짐)의

세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 사이의 담이 없는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6차원 안에서 일어난 사실을 볼 수 있는 것은 4차원의 육안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열린 5차원의 영안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만 부활하신 그를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존재가 또한 변화하게 되었다.

곧 제3의 우주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느님과 제자들이 상호 내재하는 삼태극적 존재, 차원적으로는

7차원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는 ‘복음적 실존’이라고 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들의 아버지 하느님이 되었다.(요 20:17),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롬 8:15),

하느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요 1:12)

 

부활의 실상은 하느님 안에서 그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고 사는 데 있으며, 그 양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볼 수 있다.:

 

1. 하느님은 영이시다.(요 4:24) 따라서 우리는 영적인 자유를 누리며 산다. 부활하신 예수께 서는 제자들이

   모여 있던 밀폐된 방을 자유로이 드나드신다.

 

2. 하느님은 빛이시다.(요일 1:5) 빛은 생명의 근원이고, 아름다움의 원천이며, 평화의 세계이 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요 14;27)고 하신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평화가 있기를 축복하셨다.(요 20:19, 21)

 

3.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16) 우주와 인간의 창조, 그리고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 가와 부활,

    이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의 나타남이다. 사랑은 기쁨과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그리고 부활은 사랑과

    기쁨의 극치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 제자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요 20:20, 공동번역)

 

복음적 실존이 된다는 것은 부활의 실존이 된다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생명을 지닌 영원한 현존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공의 세계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선 존재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이미 옮겨졌느니라.”(요 5:2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

 

그리스도인에게는 지금(只今)이 곧 종말론적 지금(至今)이다. 우리는 이미 부활의 생명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완전한 부활의 날은 미래에 있을 육체적 죽음을 넘어서 전개될 부활에서 기대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나의 기도와 명상의 화두는 요한복음 14장 20절의 말씀이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속에서 내가 믿는 부활상을 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려고 한다. 이것이 곧 사후의 부활로 연결된다고 믿는다. 지금 여기서 맛보고 사는 부활 생명이

사후의 저 세상에서 완성되리라고 믿는다. 이를 가능케 하시는 이는 하느님의 사랑의 능력이신 성령이다. 사랑은

인격적 공동체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생명 현상이다. 나는 가족 관계를 비롯하여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인간관계가 저 세상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실현되리라고 믿는다. 특히 사랑의 관계가 그러하다. 사랑은 언제나

그리움을 자아낸다. 이러한 뜻에서 하늘나라는 일종의 그리움을 담은 고향이 되기도 한다.

 

토론

 

<김경재> 시공우주와 영성우주, 제3우주가 적어도 반만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다면, 예수는 화육 사건을

                 통해 이미 와 있는 제3우주의 실상을 드러내 보이신 분이지, 어떻게 제 3우주의 실상이 예수의

                 화육 사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유동식> 자기부정을 매개로 영성의 세계에 이른 정신적 승화는 이미 동양의 성현들을 통해 제시되었고

                  전개되어왔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적 사건으로 실존화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정신적 수양이나 수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사건에

                 동참하는 신앙적 결단으로 제3우주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특권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정신혁명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적 실존의 문제이다. 신앙은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주체적인

                 수용 결단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 사건이 역사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성육신은 영원과 시간이 하나가 된 사건이다. 거기에는 시간적 전후나 공간적 원근이

                 따로 없다. 2천 년 전의 그리스도 사건이 오늘 여기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차옥승> 사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항상 함께 옆에 있다고 느낀다. 죽었다고 해서 죽은 게 아 니다.”하셨는데,

                 그냥 마음속에서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식으로 느끼시는지?

<유동식>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과 그의 부활에 동참한 그리스도인은 이미 부활의 생명을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죽음이 의미를 잃는다.(요 5;24, 11;25) 육신의 죽음은 그와 동시에 영체로의 부활로

                  이어진다고 믿는다.(고후 5:1~3) 그리고 “나 와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은 세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앙이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다는 등의 신앙적 차원에서의

                  동거를 의미한다. 물론 거기에는 개인적인 사랑의 정서가 개입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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