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어느 날, 집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며칠을 지낸 적이 있었다. 혼자서 삼시 세 끼 먹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냈는데 아주 간편했다. 아침에는 가족이 함께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빵 한 조각으로 때웠고, 점심이나 저녁도 그저 김치와 몇리 볶음, 그리고 계란 후라이 두 개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우리 집은 모든 식구들이 가능한 대로 간단하게 먹고 사는 편이다. 일부러 식사를 준비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별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면서 다시 한 번 느낀 바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먹는 문제만이 아니라 옷이나 생활 용품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챙기고 있는 그런 것들이 생각만큼 많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휴가철에 가족과 함께 야외 캠프를 나갈 때 집안에 있는 생활용품을 모두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먹고, 입고, 씻고 지낼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면서도 그런 정도의 수준에 따라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는 평상시에 너무도 많이 먹고, 많이 쓰고 , 많이 소유하며 사는 것 같다. 부엌 살림살이로부터 시작해서 책상, 장롱, 온갖 전자제품, 옷, 신발, 아이들 학습 교재나 놀이기구, 화분, 화장품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솔직히 말해 우리집 창고 안에도 뭐가 그리 많은지 치워도 또다시 가득 채워지곤 한다.
물론 살아가면서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는 건 없다. 아무짝에도 필요 없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나중에는 아주 요긴하게 쓰여지곤 한다. 이런 면에서야 모든 물건을 소중하게 여겨 알뜰살뜰 살아야겠지만, 요즘 우리들은 조금만 필요해도 쉽게 장만하여 쓰다가 조금 지나면 한쪽에 쌓아 두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의든 타의든 집안에 불건이 쌓이게 되어, 별로 살림살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집도 이사하는 날 보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지 신기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소비를 삶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비지향적 삶이라고나 할까? 존재 자체에 참여하기 보다는 그 무엇을 소비하므로써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삶의 자세다.
간혼 매스컴에서 주부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쇼핑을 나간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녀들은 몇 십만 원씩 신용카드로 물품을 사는 걸로 기분을 풀어보려고 한다. 이런 구매 능력을 갖고 있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그런 행태가 오늘 우리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한결같이 돈을 많이 벌어서 없는 거 없이 다 해 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무언가 많은 걸 갖고 산다는 건 때로 재미도 있겠지만 그만큼 피곤핡 수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승용차를 구입했다고 하자.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차로 인해서 감당해야 할 문제도 엄청나다. 일단 차에 들어가는 비용도 많을 뿐더러,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심지어 서울 같은 곳에서는 동네 주차 문제로 인해서 민심이 사나워지기까지 한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텔레비전도 그렇다. 30인치 대형 화면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말 연속극이나 비디오 테이프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텔레비전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는 점차 줄어들게 되어 모두가 그것의 노예가 되어간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우리를 소비지향적으로 만드는 주범은 역시 매스컴이다. 신문,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의 광고가 사람들을 그렇게 충동질한다. 그 약을 먹기만 하면 누구나 건강해질 것처럼, 그 옷만 입으면 누구나 모델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서럼, 그 침대만 사면 부부 사이가 좋아질 것처럼 만든다.
샴푸만 해도 그렇다. 그런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머리카락은 비단결처럼 보인다. 그 여자들이 정말 그 샴푸를 썼기 때문에 그런 머리카락을 갖게 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많은 여성들은 그  선전에 나온 샴푸를 사 쓴다.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는 게 아니라 거의 무의식적으로, 충동적으로, 일종의 세뇌 교육에 의해 그런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 이런 생활 습관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연장되어 있는 실정이다.
소비를 많이 하게 되면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고 나아가 자연계가 파괴되니까 좀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당위에서만이 아니라, 소비지향적 삶이 자기 자신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걸 소유하고 소비하고 향유한다는 게 무조건 좋은 일도 아니고 행복에 이르는 길도 아니다. 그런 일은 그저 우리에게 그런 일을 반복하게 하여 의존적으로 만들 뿐이지 우리를 자유하게 하거나 평화롭게 만들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런 소비지향적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유일한 길은 우리의 의식이 전환되는 것이다. 무엇을 소비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삶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의식하고 살게 되면, 당연히 소비지향적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보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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