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공사장 대폭발을 돌아본다.

지난 4월28일 아침 7시30분 대구 상인동 영남고 네거리 지하철 공사장에서 도시가스 폭발로 101명이 죽고, 17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발표에 따르면 사고 부근에서 천공작업을 하던 표준개발이 지하에 매설된 도시가스관에 구멍을 냈고, 그 구멍에서 새어나온 가스가 파손된 우수 관을 통해 지하철 공사장 까지 흘러들어 왔으며, 이 가스가 지하철 공사장에서 인화되어 순식간에 대형폭발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는 너무나 많은 우연이 겹쳤다. 일단 대백건설이 대백 상인점을 건설하면서 허가에 준하지 않은 굴착공사를 했다는 점이며, 둘째는 표준개발이 천공작업을 하면서 지하매설물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고 가스관이 뚫렸을 때 즉시 조치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셋째는 대경설비가 앞서 우수 관을 파손하였는데도 복구하지 않아 결국 누출된 가스가 밖으로 분출되지 않고 우수 관을 통해 지하철 공사장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는 점이며, 넷째는 극도로 위험한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 사고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공사 진척에 급급함으로써 결국 불꽃이 가스에 점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이외에도 도시가스회사가 가스관을 정확하게 매설하지 않아 단순히 도면에 근거하여 천공작업을 하던 이들에 의해 관이 파손되었다는 점, 그리고 가스압력계를 좀더 면밀히 검토했다면 대량으로 가스가 누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신속히 차단조치를 취함으로써 사고의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정부의 책임은 더욱 근본적이다. 이런 복잡한 사회에서 정부가 나라 안의 모든 문제에 무한대의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 원칙적인 책임만큼은 명백하게 해야 한다. 대백건설이 허가에 준하지 않은 굴착작업을 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감독관청에서는 그런 불법을 엄격하게 추궁해야 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업무태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어느 정도 불법으로 건축과 토목공사를 하는 게 관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관행이 굳어지게 된 이유를 우리는 되돌아보아야 하며, 앞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도 행정적인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원칙대로 행정관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세상의 일이라는 게 마음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다만 너무나 자주 불법이 대충 넘어갔다는 걸 기억해 볼 때, 이번에도 역시 돈과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정의>가 실종됨으로써 이런 엄청난 비극에 까지 이른 게 아닌가 하는 비통한 생각마저 든다.
이번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바다, 하늘, 땅에 뒤이어 드디어 하나 남았던 지하에서도 대형사고가 일어났다고 말들 한다. 우연한 일들을 통해 어떤 필연을 찾아보려는 대중적 심리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이런 대형사고가 무언가 그럴만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게 무얼까? 어떤 문제로 인해 이런 참혹한 사고가 다발되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오묘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데 놓여 있다. 이런 사고투성이의 삶이 바로 우리 자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고를 항상 눈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억지로 피해볼 도리가 없다. 이런 사고를 불러 일으킬만한 단초들이 우리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번에 표준개발과 대백건설의 현장담당자와 책임자 몇 사람을 형사구속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 토목 학계에서도 사고방지의 종합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 같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사람은 그런 일을 함으로써 앞으로 재발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를 못 보는 게 아닐까?
결국은 다시 <인간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질문하지 않는 한 아무리 준엄한 책임을 묻고 기발한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백성들을 엉터리도 살아가게 볶아대면서 책임을 다 하라고 말한다면 그건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이 된다. 예컨대 자식들에게 눈만 뜨면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래야 출세할 수 있다.”라고 윽박지르면서, 풍성한 정서와 확실한 사회적 정의감을 가진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는 죽자 살자 앞만 보고 뛰어간다. 정부에서 그런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사회 전반이 이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물론 경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 경쟁이 인간 자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경쟁에서 뒤쳐지면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세상에서 어떤 윤리의식이 싹틀 수 있단 말인가? 불법으로 굴착이나 천공작업을 하면서 그들이 크게 죄의식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불법을 행하겠다는 생각이야 하지 않았겠지만, 다른 많은 이들이 그렇게 했고, 또한 그렇게 해서라도 다른 기업 보다 훨씬 많은 업적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불법을 선택한다. 이런 생각들이 보편화됨으로써, 사고가 났을 때만 잠시 무언가 달라질 것처럼 법석을 피우지 잠시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만다. 여전히 무책임하고, 여전히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겉으로만 세련되는 게 아니라 마음속이 새로워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만 우리는 인간 삶의 질곡을 조금 씩이나마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95.5.14.>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