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란 무엇인가?

지난 현충일 이른 아침 시간에 경찰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들어가 농성 중이던 한국통신 노조 집행부를 번개처럼 검거해갔다. 경찰과 정부 측에서는 노동법을 위반한 범죄자를 체포하는 데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종교계는 군사정권 하에서도 없었던 성역의 침탈이라고 강경 대응할 태세다. 그들 말대로 공권력을 엄정히 집행한 정부쪽의 주장이 옳은가, 아니면 종교의 특수성을 강조한 종교계의 주장이 옳은가? 우리는 정치와 종교의 이질적 질서와 성격을 같은 잣대로 잴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자기주장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어떤 선입견이나 감정이 아니라 가능한대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자세로 접근해 보아야 한다.
공권력 앞에는 성역이 없다고 정부관계자들은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이 말은 한편으로 옳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르다.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법집행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점에서 옳고, 불의한 공권력은 그것이 유지되어야 할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상황론적인 점에서 잘못되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우리는 불법한 공권력의 남용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유신정권과 5공화국으로 지칭되는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정권안보를 위하여 경찰력, 심지어는 군사력 까지 동원하였다. 정부의 잘못을 비판할 수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그걸 어기는 사람들에게 공권력을 동원하여 구금, 체포, 때로는 고문을 일삼았다. 이런 공권력은 악이다. 악을 방관하는 것은 또 다른 죄다.
지금은 그때와 다른 문민정부가 아니냐, 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건 분명하다. 군사정권 시대와 지금의 문민정권 시대가 다르다는 걸 아무도 부인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문민정부 하에서 그들의 공권력이 초지일관 하게 관철되어왔을까, 라는 질문이 제기되어야만 한다. 비근한 예로 5.18 광주민주화 항쟁과 관련 고소고발건만 하더라도 그렇다.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사안으로서 그 무엇 보다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 구인장을 발부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12.12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하극상의 범죄임을 인정하면서도 불기소 처리하는 검찰의 태도가 과연 성역 없는 공권력의 행사였던가? 문민정부 하에서도 공권력은 여전히 그것을 가진 이들에게 편리할 때만 엄정하게 집행될 뿐이지 일관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종교도 그렇고 정권도 마찬가지로 일단 옳아야(義) 한다. 옳지 못한 종교의 절대성, 옳지 못한 정권의 절대성은 스스로 우상이 되며 독단론에 빠지게 되어 결국 부패되고 백성들을 괴롭히게 된다. 오늘의 시대는 종교적 절대성의 남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권의 남용은 선진국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공권력의 과잉행사를 끊임없이 견제해야 한다. 백성들을 위해 공권력이 있는 거지, 공권력을 위해 백성이 있는 게 아니라는 대원칙 아래서 공권력은 항상 옳게, 가능한대로 소극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경찰의 종교영역 난입사건이 얼마나 정당했는지 판단해야 한다. 그런 특단의 조치를 취할 만큼 시급한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과잉조치였는지 말이다. 한통노조의 행위가 노동법에 의한 불법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그들이 매우 온건하게 노사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했음은 분명하다. 그들의 준법투쟁만 하더라도 그렇다. 시민들에게 별로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법 테두리 안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담자를 처벌하겠다는 엄포가 초라하게 보인다. 그들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을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사회가 혼란스러워 질 것도 없었고, 조금 더 시간을 두면 종교계가 중재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경찰력을 동원한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 정부가 종교계의 비난을 각오하고 공권력을 투입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현 정부가 한통노조 문제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결성에 쐐기를 박아 기선을 잡으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엔고현상으로 한창 수출이 늘어나면서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민주노조가 출현하면 지장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한통노조를 강력하게 제어하려는 것 같다. 또 다른 현실적 이유로는 6월27일에 있게 될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속셈으로 파악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인 보수성에 호소하여 득표를 올리려는 정책으로 보인다. 유신정권과 5공화국 하에서 공권력의 횡포를 몸으로 겪었던 김영삼 대통령이 명동성당 안으로 까지 경찰을 밀어 넣으면서 마음이 편했을 리 없었을 것이다. 그건 분명히 정치적 계산에 의한 작품이었다. 좋게 보아, 자신의 개혁을 추진하려면 힘을 가져야 하고, 힘을 가지려면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義 보다는 힘에 의지해서 통치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게 사실 자본주의와 정치의 실체이긴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카톨릭계와 불교계에서는 반정부 투쟁 까지는 몰라도 이번 사건의 책임자 처벌을 끝 까지 추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 기독교 회관 교회협(KNCC) 사무실에서 농성하던 지하철 노조 집행부를 경찰이 강제연행 한 사건이 있었을 때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최형우 씨의 형식적인 사과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그 당시는 그래도 김영삼 정부를 향한 개혁의 희망이 남아 있을 때였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런 희망의 불씨가 사그라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9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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