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이상

유럽은 지금 금세기 최악의 폭우로 비상사태에 돌입해 있다. 하루 150미리 미터의 비가 두 주일 째 내렸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짐작이 간다. 다행히 독일과 프랑스 지역의 강 수위가 약간씩 내려가고 있지만, 특히 전국토의 절반 이상이 해수면 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제방이 붕괴될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미 일부의 제방이 무너져 이십 여만 명의 주민을 대피시켰다는 방송보도도 있다. 꽃의 나라, 풍차의 나라, 성개방의 나라가 금년 겨울에 혹심한 자연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화면에 비친 그 나라 마을이 온통 물바다로 변해 버렸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경관을 잃지는 않고 있었다. 바라기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빨리 홍수위기를 극복하여 평상적 삶을 회복했으면 한다.
지난여름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가뭄은 끝을 모르고 계속된다. 특히 경상도의 가뭄은 매우 심각한다. 예년의 반도 채 안될 정도의 비가 내렸다고 한다. 나의 기억에도 지난여름 장마 때 비다운 비가 내린 이후 지금 까지 감질날 정도에 불과했다. 기상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앞으로도 충분히 해갈될 정도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얼만 전 부터 격일제 급수지역이 늘어나고 있는데,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도 목욕탕과 실내 수영장이 일주일에 한두 번 씩 휴무에 들어가게 되고, 앞으로 어느 기간 안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식수도 역시 격일제로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경상도 내 모든 저수지나 댐 저수율이 2-30%에 이른다고 하니, 이런 상태로 나가다가는 식수는 물론이고 금년 봄 농사에도 결정적인 타격이 가해질 것이다. 아직 대구와 현풍은 그래도 식수에 별 큰 어려움을 모르고 있지만 한 방울의 물이라도 아껴 써야 하겠다.
두 주일 여 전쯤 일본 고베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말미암아 수천 명의 사상자와 수십조 원의 물적 피해가 발생하였다. 일본은 지질학적으로 볼 때 <지진의 카펫> 위에 살고 있는 셈인데, 일본을 끼고 도는 환태평양이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대다. 일본 만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 지진이 빈번해 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2백80만 명이 이런 자연재해로 사망했다고 한다. 지질학자들은 수년 내에 로스앤젤레스에 강진이 발생하며, 휴면기가 지난 이탈리아의 화산이 20년 후 부터 대폭발 단계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가 몸으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 대지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수십만 년 동안 조금씩 이동하여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이 갈라졌으며, 아래와 위의 땅들이 서로 밀어붙여 푹 솟아오른 게 바로 히말라야산맥이다. 아직도 지구의 속은 뜨거운 용암덩어리가 어딘가 약한 지반을 뚫고 나오려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
인간이 지구라는 일종의 떠돌이 별 위에서 정착하게 된 게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너무나 오랜 동안 생명체가 없는 흙과 돌과 먼지 덩어리였는데, 물이 생기면서 차츰 생명체가 발생되기 시작하였고, 그러다가 결국 오늘의 문명을 가진 인간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길지 않다. 그 이전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았고, 무성해지기도 했으며,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공룡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구를 지배하는 동물이었다.
공룡이 사라지게 된 원인은 학자들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공룡의 숫자가 갑자기 많이 불어남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먹이를 구할 수 없어서 결국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고 보기도 하며, 혹은 화산이 폭발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멸절시켰다고도 본다. 그러나 더욱 설득력이 있는 견해는 지구의 빙하기설이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지구는 주기적으로 빙기(氷期)를 맞는데, 10만 년 전부터 대충 네 번의 빙기가 있었고 그 사이에 간빙기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일만 이천 년 전의 뒤름 빙기가 끝나고 비교적 따뜻한 기후에 접어든 후빙기 시대에 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앞에 분명히 빙하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지구에 다시 빙하기가 도래하면 북극의 추위가 훨씬 남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우리나라나 일본, 그리고 프랑스와 뉴욕이 온통 얼음으로 뒤덮이게 되고 적도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나 하와이, 혹은 브라질에서나 겨우 사람이 차가운 바다 속의 물고기를 잡아먹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오래 갈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태양이 정상적으로 운동할 때 까지 지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도 빠른 시간 안에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나 그 인간이 쌓아가는 문명이 자연의 힘을 거스르기에는 너무도 약하다는 점이다. 경상도에 강수량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이 야단인데, 만약 이런 현상이 5년만 계속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저수지는 고사하고 강물 까지 말라버릴 것이며, 목욕은 고사하고 식수 까지 수입 해다가 먹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한 이 지구는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매우 좋은 지질학적 조건 가운데 인간들이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구가 불가항력적으로 파괴되는 일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인간에 스스로에 의해 파괴되는 일만은 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 지구를 적게 훼손시키려면 일단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해야 한다. <9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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