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못가는 사람들

금년도 추석에는 거의 이천 오백만 명이 어디론가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교통지옥이 예상된다고 말들 한다. 추석연휴 기간의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 예약이 완전히 끝났다는 보도를 보니 적지 않은 숫자가 여행을 즐기기 위해 떠나기도 하겠지만 차량이동의 대부분은 그래도 귀향이 목적일 것이다. 귀향의 발길 중에는 아직 부모가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인사 차 가는 이들도 있을 터이고, 아무도 아는 이가 남지 않은 고향이지만 선대의 묘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대단히 많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가족과 함께 소위 <귀성> 길에 오르고 있긴 하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과연 고향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간단히 <그렇다>고 대답하기 쉽지 않은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산술적인 의미에서 점차적으로 도시에서 출생한 이들이 증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형적인 고향의 풍경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이라 하면 어릴 때의 향수가 물씬 넘쳐나는 곳이어야 할텐데 우리 나라에 어느 정도나 그런 고향의 멋과 맛이 남아있겠는가. 웬만한 면소재지만 하더라도 아파트와 공단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술집이나 다방이나 노래방 등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데, 어디 가서 어머니 품 같은 고향의 정서를 찾아본단 말인가. 정지용의 시 <향수>를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이 고향은 정말 자연스러움이 남아 있는 곳이어야 한다.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처녀들, 개천에서 멱을 감는 동네 개구쟁이들, 뒷동산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 구슬피 울어 젖히는 소쩍새, 아니면 최소한 황소 울음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어딘가에 이런 그림이 남아 있긴 하겠지만, 이런 모습들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는 그런 고향을 찾기란 무릉도원처럼 불가능할 것 같다. 어느 시골이고 모두가 사는 게 바빠서 아래 웃집 사이에도 인사하고 지내기 힘들고 때로는 사소한 일로 사이가 벌어지는, 그렇게 살벌한 세상을 살면서 고향 운운 한다는 것은 사치스런 일인지 모르겠다.
비록 어설픈 모습의 고향일망정 그런 고향이 있다는 것, 아귀다툼 같은 귀성전쟁을 치르고서라도 가야할, 그리고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오늘과 같은 무고향의 시대에 일종의 축복이요 선택받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고향에 갈 수 없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북에 자신이나 부모들의 고향을 둔 이들이 천만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들은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이들이다. 그렇게 먼, 낯설고 말 설고 물 설은 모스크바나 뉴욕은 여행할 돈만 있으면 아주 간단히 갔다 올 수 있는데, 비행기를 탈 필요도 없이 자동차로 쉽게 갔다 올 수 있는 이웃 고향엘 50년 동안이나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은 이 나라의 불행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치요 미련스러움이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야 별로 마음이 간절하지 않겠지만, 그곳에 늙으신 부모님이나 아내와 자식을 두고 온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추석을 맞아 고향엘 못가는 사람들 중에는 <가난이 원수>인 이들도 있다. 특히 중국 교포나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에 와서 2,3년 동안 고생하면 고향에 돌아가서 편안히 살 수 있겠다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졸부의 나라 남한에 들어와 건설현장에서, 염색공장에서, 식당에서, 다방에서 노동력을 팔던 교포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깨진 꿈을 부여안고 분노를 되씹으며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은 그것을 이루려고 이국 땅 한국에서 불안하게 날품을 팔고 있다. 한국에 나가 큰돈을 벌어오겠다며 큰 빚을 지면서 까지 가족과 헤어져 한국에 들어왔는데, 척박한 이 나라의 인정을 그들은 견뎌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고향이 있건만 현대판 노예처럼 우리 남한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다.
어찌된 일인지 이번 윤이상 음악제에 본인이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 음악제 때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 우선 성묘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이국땅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한국정부와 입국문제를 놓고 티걱태걱하다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입원했다고 하는데 기왕에 고향땅을 밟지 못할 바에야 건강이라도 잃지 말았으면 한다. 앞서 한번 윤이상에 대해 언급했지만, 왜 우리는 현대음악의 세계적인 대가를 대접할 줄 모르는지 참으로 딱하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평생 외국에서 음악에 전념하여 살다가 그쪽 분야에 일가를 이루고 이제 여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원로 예술가에게 인간적인 예우를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는 지금 아마 프랑스나 독일의 어느 병원에서 고향의 대보름달을 노래하고 있을게다.
고향이 있지만 가지 않는 이들이 또 있다. 못가는 게 아니라 안가는 그런 이들이다. 다방이나 술집에서 일하는 직업여성들은 매우 독특한 조직 속에서, 모두들 고향을 찾는다 하여 어수선 한 이 추석대목에도 역시 고향을 피하고 있다. 그들만이 아니라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추석은 더욱 자신들의 운명을 비참하게 만드는 날이다. 물론 긍정적인 이유로 인해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병원의 당직자들이나 군인들, 유학생들, 종교적인 이유로 출가한 이들이 그들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고향을 찾을 수 있는 사람 보다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즐거움은 그것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배려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삶이 바로 기독교적인 신앙이다. 이번 추석에 우리는 그런 이들을 찾아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면 최소한 그런 이들을 생각하여 우리의 즐거움이 방종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적절하게 조절이라도 해야겠다. 우리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고향을 찾아 나선 나그네 길일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자. <9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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