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언젠가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월급으로 환산해서 그 금액을 정부가 가정주부에게 지급해야한다는 여성계의 주장을 신문기사를 통해 읽은 적이 있다. 여성들이 집에서 일하는 노동이 최소한 칠십 만원 내지 팔십 만원 상당의 가치가 있다고 계산된 것 같았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로 부터 시작해서 집안 청소나 자질구레한 일거리들이 한 없이 주부들에게 주어져 있다. 간혹 복 많은 어떤 주부들은 시간이 남아돌아 무료하기도 하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풍족하여 탈선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일반적인 주부들의 경우에는 대개 자기계발을 위해 투자할만한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 없이 오직 가사노동에 종사, 심하게 말해서 남자들이 사회활동을 하도록 돕는 일과 자녀 양육하는 일에 혹사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여성들이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출산은 여성들에게 엄청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왜 여성들만 임신, 출산, 육아와 같은 힘든 일을 떠맡아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여성들은 이렇게 아기를 낳고 집안일을 하다가 결국 늙게 되고, 그 늙은 여자를 남자들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여 바람을 피우는 일이 반복된다.

요사이 파출부의 일당도 최소한 2만원을 호가 한다고 할 때 가정주부의 일당은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고 보아야 한다. 주부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노동의 질이 높기 마련이다. 이렇게 질 높은 가사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치러야 할 이유는 여럿이다.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궁극적으로 한 가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전체, 곧 국가적 업무임에 틀림없다. 가정주부들의 손을 통해 사회의 역군들이 생산되기 때문에, 예컨대 우체국이나 학교에서 일하는 여성들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거의 똑같은 수준에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정상적으로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 대가를 정부가 전업 가정주부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게 억지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독일에서는 주(州)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일정액의 육아비(Kindergeld)를 주정부에서 지급한다. 독일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일 보다는 사회활동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감소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실시되는 정책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출산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문제로 간주하려는 사고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성이 출산과 육아 때문에 받게 되는 개인적인 불이익을 정부가 보상한다는 생각이다. 이 덕택에 80년대 중반 독일에서 유학 생활하던 한국 학생부부가 아이를 세 명이나 낳아서 몇 년간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가사노동을 모두 정부가 돈으로 지급하게 된다면 그만큼 세금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지금 까지 불이익을 받아왔던 모든 계층, 즉 여성과 젊은이, 노인, 그리고 저소득층에서 그들의 정당한, 보기에 따라서는 무리한 권리를 강하게 요청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모든 노인들에게 무조건 월 백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부는 여러 집단 사이에서 조정과 균형의 기능을 잘 감당해야 할 텐데, 그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서로의 이익이 상충될 때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은 법이다. 앞으로 언젠가 우리나라의 경제적 여력이 충분하게 될 때 해결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아직 까지는 요원한 일이다.

분명히 가사노동은 지금 까지 다른 일 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남자들도 여자들의 가정 일을 단순히 보조적인 성격으로 간주하였다. 남자들이 사회에 나가 돈을 잘 벌어올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가사라는 말이다. 과연 그러한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회의 일 중에서도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세계경영을 외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넥타이를 매고, 프랑스제 서류가방을 들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는, 그리고 예쁜 여비서에게서 시중을 받는 그런 남자들의 일이 세상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가? 한국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 일, 더 나아가 세계 초일류의 기업, 혹은 국가 정치를 주무르는 그런 남자들의 일이 가사노동 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가치 있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런 일들, 그저 그렇게 남들에게 번쩍거리는 일들,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는 일들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것들은 다만 필요할 뿐이지 절대적이거나 충분하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가사(家事)다. 밥을 지어 먹는 일, 빨래나 청소, 남녀가 사랑하여 아기를 낳는 일이 바로 인간의 생명을 이어가는 본질적인 일이다. 국회에 나가 저 혼자 애국자인양 열을 올리는 일만이 아니라, 집안에서 반찬 만드는 일 역시,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 국회는 없어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지만, 밥과 반찬이 없으면 인간이 끝장난다. 이러한 가사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 흔히 남자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가정주부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가사노동에 대해 참으로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 일은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이며, 그런 뜻에서 창조자 하나님의 일이다. <94.1.16>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