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명환 씨 살해사건을 보며

교회는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만큼 교회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절실해 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92년도에 소위 <시한부 종말론> 사건으로 이 사회를 시끄럽게 하더니, 급기야 이번에는 살인사건에 연루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교회는 급격한 팽창과 더불어 반사회적 사건들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쏟아냈다. 안수기도 중에 죽어 나오는 사람, 교회 대지 매매에 얽힌 총기사건, 할렐루야 기도원 등에서 벌어진 비정상적인 치유행위 등등. 최소한 상식을 갖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조차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 수 없이 발생되었다.

오늘 까지(2월23일) 알려진 바대로는 대성교회의 운전기사 겸 잡부인 임흥천 씨가 평소 대성교회의 이단시비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한 탁명환 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영생교 문제가 터진 것을 알고 탁명환 씨를 없애 버리더라도 그 의혹이 영생교 쪽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임씨의 단독범행으로 단정하기에 많은 의문점이 있다면서 교회관계자와의 공모여부를 계속 수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기서 이 사건의 전모를 일일이 챙겨 볼 필요는 없다.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을 뿐더러, 어쩌면 그 결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개인의 충동이었던지, 아니면 그 집단의 조직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던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교회는 이미 어떠한 결과에도 그만한 책임을 져야할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한부 종말론 사건이나 이번의 대성교회 사건을 통해, 그리고 약간 내용을 달리하지만 영생교 사건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적 형태를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여기에 연루된 교회나 단체들은 기독교적 이단 내지 이단성을 의심받고 있었다. 이단성의 강도로 분류하자면 영생교가 가장 심하게 이단적인 집단이고, 다음으로는 이장림의 다미 선교회, 그리고 대성교회 순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영생교는 우리 기독교와 전혀 다른 종파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우리에게 그만큼 책임이 덜 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별로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이장림의 다미선교회는 한국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한 명백한 이단이지만 거의 모든 교리를 성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한부 종말론을 제외하면 대개의 교리가 기성교회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기독교에 그만큼 상처와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대성교회는 아직도 교단에 따라 이단시비가 끝나지 않은, 대단히 정통에 가까운 교회라는 점에서 우리는 공동의 책임으로 부터 면책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대성교회는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다니는 교회라 하여 오래 전 부터 비판이 제기되었었다.

이번 탁명환 씨 살인 사건의 본질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로 정리해 봄으로써 오늘 한국 교회의 자리를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성교회는 한국에서 10대 교회 안에 들어갈 정도로 대형교회다. 들리는 말로는 등록 교인이 5만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군중이 그곳에 모여들 수 있었을까? 모든 사이비성 종파가 다 그렇듯이 대성교회의 창립자인 박윤식 목사의 초월적 카리스마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류의 교회 안에서는 대개 병고침이나 예언, 혹은 물질적 축복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이것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영생교도 역시 사람들에게 그러한 동기유발을 제시하므로 써 사람들을 모아 들였다. 신유나 축복 등의 현상 자체는 종교일반에서 발견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지만 종교와 신앙의 중심축을 그러한 호기심으로 대체하였다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 신자들이 이러한 현상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접근하는 이유는 인생의 문제를 너무도 쉽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욱 성실하게 노력해서 주어지는 댓가만큼만 갖고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불로소득이나 일확천금만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 교회에 다니는 모든 신자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대성교회의 신앙은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살거나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당연히 자기의 목적 성취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 신자들의 배타성은 거의 열광주의적이다. 자기들의 신앙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남에 대해 적대감을 갖는 수준에 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광기에 불과하다. 적대감을 갖고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상대방이 없어져 주기를 바라게 된다. 상대방의 파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수많은 토지전쟁에 참여한 사실이나 기독교 십자군 전쟁이 그와 같은 것들이다. 임흥천 씨가 대성교회에서 받은 신앙훈련이 이러한 적대감의 증가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보아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임홍천씨의 개인적인 성품과 인격이 그러한 배타성을 범죄에 까지 이끌어간 가장 핵심적 원인이긴 하지만 그러한 류의 교회가 갖는 신앙적 경향성이 배타적인 열광주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시 한 번 확인하건데, 대성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바른 생각을 가졌다면 그러한 영향을 받는다고 하여도 휩쓸리지 않게 마련이다.

사이비와 정통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정통교회 안에도 근자에 대두되었던 사이비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현상들이 내재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생의문제를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주 손쉽게 해결해 보려는 신앙의 편이주의, 자기 신앙만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독단주의가 교회 안에 보편적으로 널려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편견일까?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이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위해 고난받는 이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때다. <9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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