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3월19일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이 “전쟁도 불사한다.”는 북한쪽의 최후 통첩성 발언과 함께 결렬되었다고 한다. 서울불바다 운운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되었다. 남북 대표자들은 다음 접촉에 대한 합의 없이 대단히 섭섭하게 헤어졌다. 미국은 서서히 유엔을 간판으로 내세워 북한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유엔 안보리가 북한에 대한 제재조처를 어떠한 수준에서 설정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의 상태에서 북한이 갑자기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적 핵사찰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미국은 아마 경제적 압력수단을 통해서 사찰을 강요하게 될 텐데, 그렇다고 북한이 그러한 압력에 선뜻 굴복할 것 같지도 않다. 지금 까지 미국과 팽팽하게 대결해온 그 체면 때문이라도 대단히 위험한 수준에 이르기 전 까지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고양이가 쥐를 막다른 구석으로 내몰듯이 코너에 몰아넣을는지 확실하지 않다. 팀스피릿 훈련을 강행하겠다고 하며, 또한 미 대통령 클린턴이 남한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를 이미 명령했다고 하는데 미국의 의지가 확고하긴 한 것 같다. 그렇지만 북한에게 실제적으로 불이익을 줄만큼 조치를 취하겠느냐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고가의, 그러나 한국 지형에 적합한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주한 미군부대에 설치했다가 나중에 우리에게 팔아먹으려는 속셈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국 무기상들의 상술과 그 로비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음직하다.

만약 미국이 유엔을 중심으로 북한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게 된다면 북한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태도는 우리 남한의 존립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태평양 건너에 사는 미국인들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이번에 북한의 어느 실무자가 내뱉었다는 “불바다” 속으로 남북이 함께 뛰어 들어가는 그 길을 북한이 선택할리 없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추측 컨데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원조 없이 전쟁을 도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남한과 북한의 전쟁수행능력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그들도 역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는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결국 북한 핵이다. 북한의 핵무기 의혹이 잔존하기 때문에 국제원자력 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라고 미국을 중심한 나라들이 압력을 행사하였고, 북한은 여러 이유로 그 요구를 거절하였다가 얼마 전에 승낙하기는 했는데 양자 간 이해가 상충되었다. 북한은 부분사찰을 허용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제원자력 기구는 전면사찰 내지 핵무기제조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시료채취를 감행하겠다고 맞섰다.

핵문제에 문외한으로서 이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어줍잖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몇 가지 관점에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이 그렇게 핵문제를 질질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까짓 거 전면적인 사찰을 받으면 그만일 텐데 신경질 날 정도로 이리저리 피하고 있다. 온 세계가 핵문제로 인해 북한을 손가락질 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형제라는 면에서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입장을 배려해야한다. 경제적인 후진성과 어쩔 수 없는 개방화 물결 속에서 김일성 주석 부자의 카리스마적 권위가 상대화되는 위기를 저들은 맞고 있다. 구소련이 해체되었고, 중국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들은 사면초가의 상태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그렇다고 그들의 말마따나 주체적으로 살아가기에는 이 세대가 너무도 빠르게 움직여 나가고 있다. 그런데다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핵사찰을 종용하고 있으니 속된 말로 죽을 지경일 것이다. 북한은 가만 두어도 사실은 그 한계 때문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반대로 핵무기를 제조하여 세계평화에 위기를 몰고 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만큼 북한의 과학이 발달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전쟁에 사용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방만이 아니라 자기들 까지 죽게 되는, 그야말로 너죽고 나죽자는 식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군사강대국으로 인정받는다는 간접적인 효과는 있지만, 현재 핵무기를 갖고 있는 세계의 여러 나라가 그것 때문에 자동적으로 강대국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사생결단으로 매달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중국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지 오래 되었고, 일본도 케네스 월츠가 주장하는 대로 핵무장을 하게 된다고 가정할 때, 그 사이에 낀 우리(남한과 북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우리도 그러한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헤게모니 싸움을 하자는 게 아니다. 한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과 대등한 경쟁을 하기 위하여 핵문제는 졸속하게, 혹은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하여튼 지난번 실무자들 접촉은 매우 어설프게 진행되었다. 그게 아이들 말싸움이지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공식회의일 수 있는가? 특사교환 이전에 실무자들부터 민족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이들로 구성해야할 것 같다. <9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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