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세와 간접세

세금을 일전 한 푼 거두어들이지 않더라도 국가 경영에 아무 지장이 없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그런 일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세금을 징수하려고 하며, 국민 개개인은 그 반대의 마음을 갖고 있다. 어느 한 쪽만을 일방적으로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세금을 인색하게 낸다면 그만큼 국가의 힘이 약화될 것이며, 반대로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낸다면 개개인의 삶이 궁핍하게 될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적은 세금으로 충분한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것일 텐데 그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구라파나 북미 등 소위 선진국들은 높은 세율을 갖고 있다. 수입의 많은 부분이 각종 세금, 연금 항목으로 지출되기 때문에 가정마다 재정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이에 반해 저개발 국가들은 세금을 거두어들이려야 들일 대상도 별로 없기 때문에 아주 낮은 세율을 갖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북반구의 나라(선진국)와 남반구의 나라(후진국) 사이에 있는 국가경쟁력의 격차가 누진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잘사는 나라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과감하게 미래지향적으로 투자할 수 있지만 못사는 나라는 적은 세금으로 겨우 생존에 급급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개개인이 힘들더라도 세금을 많이 내고, 그 돈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세금은 일종의 저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인류역사 어느 때 세금이 시작되었는지 문헌을 조사해 보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보아 왕정정치가 시작된 이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보면 사사들이 다스릴 때는 정기적인 세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주변의 제국들 처럼 왕을 세우고 나서 일정부분의 세금을 바치게 되었다. 추수한 농산물을 바치고, 아들을 군사로 보내고, 딸을 궁녀로 보내야만 했다.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에게 앞으로 왕이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고 경고했지만 백성들은 자기들이 져야할 의무보다는 주변의 제국들과 같은 상비군을 가진 강력한 왕을 선호했다. 사무엘서의 전승에 의하면 왕은 백성들에게 유익하기 보다는 오히려 짐스러운 존재가 된다. 아마 이스라엘의 역사경험이 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했던 것 같다.

세금과 통치력의 관계를 연구해 본다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추측컨대 역사상 위대했던 군주들, 정확히 말해서 인간적이었던지 아니었던 지간에 강한 통치력을 갖고 있던 왕이나 군주들은 거의 높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을 것이다. 국가의 힘, 정부의 힘은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통치력이란 백성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미 인간의 역사는 그것이 옳던 그르던 세금이 없는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의로운 세제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소득에 많은 세금을, 적은 소득에 적은 세금을 물려야 함은 정의로운 세무를 위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은 그것에 대해 회의적이게 만든다. 세금포탈은 샐러리맨이 아니라 소위 ‘잘 나가는 이들’, 거액을 만지는 이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으로 알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적발하여 공정한 세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때로 정치헌금이란 명목으로 거래되는 검은 돈과 검은 손들이 국민들의 경제적 가치관을 얼마나 손상시키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세제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직접세와 간접세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국가 세입 중에 간접세의 비율이 과다하다는 말이다. 개인의 수입에서 일정 부분을 직접 취하는 세금에 비해 어떤 상품을 살 때 마다 간접적으로 지불해야할 세금이 높다. 자동차를 살 때도 세금을 내야하고 가전제품을 살 때도 그렇고, 요사이는 어떤지 모르지만 극장을 갈 때도 방위세(?)를 내야만 한 적이 있었다. 직접세는 수입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세율이 달라지니까 어느 정도 사회정의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간접세는 사용자의 수입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대단히 불의한 항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기서 간접세를 모두 없애고 직접세만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관계된 이들이 기본적으로 어떤 사고방식으로 세무행정을 운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가능한대로 손쉬운 세수 증대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들은 간단하게 간접세 항목을 늘리게 될 것이다. 그것 보다는 왜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좀더 진지하게 -본인들은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생각해 달라는 요청이다.

세금은 세금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국민을 위한 사회질서유지, 둘째로 개개인의 경제정의실천, 셋째로 미래설계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하고 실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무조건적인 간접세는 줄여 나가고 수입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되는 직접세는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원칙론을 말하긴 하지만 이 일의 실행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개인의 이기심은 사회정의를 하찮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9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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