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유감

우리 민족은 너무도 눈물이 흔하다. 그것이 좋은 점인지, 나쁜 점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눈물이 많다 못해 헤프다. 요사이는 덜한지 모르지만 국산 영화의 대부분은 사랑을 신파조로 만들어 그저 처음부터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 그 배우는 거의 한결같이 눈물 보를 터뜨린다. 심지어는 가요인기 순위 프로그램에 나와 월말 일등 쯤 해도 울어댄다. 때로는 남자 가수들도 운다.

금년도 미스 코리아 진에 당선된 한성주 양은 전혀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았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예년의 미스 코리아 진들은 여지없이 눈물 콧물 뒤섞어 가며 그 감동의 순간을 약간 유치하게 극대화 하였다. 이번에 한성주 양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답게 아주 태연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그 순간을 받아들였다. 다른 미스 코리아들에 비해 훨씬 지성미가 드러나는 것 같아 보기에도 훨씬 좋았다. 아마 심사위원들도 이런 점을 높이 샀을 것이다. 외적인 아름다움이야 손질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내적인 아름다움, 지성적인 아름다움은 결코 인위적으로 생산해 낼 수 없는 것 아닌가.

고려 대학교 학생들은 자기네 학교 여학생이 이런 미인 선발대회에 출전한 것에 대해 좋게도 보고, 한편으로 달갑지 않게도 보는 것 같다. 저학년일수록 신세대의 기풍을 살려 마음껏 자기 아름다움을 견주어 본다는 것에 대해 호감을 나타냈으며, 고학년일수록 여성이 상품화된 콘테스트에 출전한다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보도된 대로 보면 긍정적인 쪽이 더 많았다고 하는데 자세하게는 잘 모르겠다.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행사임에 틀림없다. 일반적 시각대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상품화 시켜 보려는 노력이다. 이번에도 각 도와 직할시를 대표하는 여성들이 콘테스트를 하기 전에 여러 날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자기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가꾸었으며, 북미와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때로는 한국방문의 해를 빛나게 하는데 한 몫 거들기도 했지만, 결국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상품으로 만드는 일에 전력투구했다.

이런 류의 대회가 갖는 더 심각한 문제는 숙명을 우월한 가치로 만든다는데 있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해서 이런 선발대회에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주어진 조건이 그런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저 어떤 축복받은 여자들만의 게임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경쟁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그 행사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남자들에게도 미스터 코리아를 뽑는 대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스포츠다. 어느 누구도 노력 여하에 따라 그 경쟁에 나설 수 있다. 반면에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는 어떤 여자가 노력한다고 해서 경쟁이 가능한 일이 아니다. 탤런트들은 같은 아름다움을 도구로 삼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 풍부한 연기력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모든 인간의 가치 있는 일들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얻어진다. 물론 미스 코리아들에게도 선천적인 아름다움을 어떻게 가꾸느냐, 하는 노력의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의 역할은 너무도 미미할 뿐이다.

차제에 궁금하던 문제를 하나 제기하고 싶다. 한국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뽑는 대회인데 어째서 외국, 그것도 서양 여자들의 기준에 따라야 하는가? 이번 콘테스트에 나온 젊은 여자들의 키가 최소한 170cm 이상이었다. 때로는 185cm의 키를 가진 아가씨도 있었다. 서양 여자들이야 그런 정도의 키가 평균이나 커봐야 약간 클 정도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큰 키다. 무엇 때문에 서양 여자들의 기준에 따라 우리 딸들의 아름다움을 측정하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미스 월드 콘테스트에 참가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세계대회에 참가할 여성들을 따로 선발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그렇게 대대적으로 광고를 해대면서 미스코리아를 뽑으려면 한국여자로서의 객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가 미치는 영향이 작다고 하면 작을 것이고 크다고 하면 클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끼칠지 모른다. 모두가 날씬하고 긴 다리를 가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갖게 할 것 같다. 너두 나두 미스코리아들처럼 정형화된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려고 기를 쓰게 만들지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현상들을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본다. 언제 부터 우리나라 여성들의 코가 높았다고 코끝을 세우는 성형수술을 해야만 하는가? 쌍커플 수술은 젊은 여성들의 필수코스처럼 되어버렸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스코리아들처럼 늘씬한 다리를 갖기 위해 수백만 원씩이나 하는 지방질 제거 수술을 받기도 한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 서양 여배우처럼 생긴 여자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면 무언가 잘못 되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샘이 깊은 물>이라는 월간지의 표지인물을 보라. 그녀들은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한국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물씬 풍기고 있지 않은가? ‘신토불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한국 땅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살아가는 그런 여성들이야 말로 정말 아름답다. 당신들은 미스 코리아를 부러워 할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흉내 내지도 마시오. <9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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