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의 의미

피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다. 인간의 장기 중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을 리 없지만 피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인간은 자기 몸무게의 8% 정도의 피를 갖고 있다. 예컨대 60키로 그람의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라면 4.5 리터의 피를 갖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지만 피의 기능은 대단히 많다. 동아대백과 사전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혈액의 주된 역할은 각종 물질의 운반이며, 폐에서 섭취한 산소나 소화관에서 흡수한 영양소 등을 전신의 모든 세포로 보내고, 반대로 세포에서 만들어진 탄산가스나 노폐물을 운반해서 폐, 신장, 피부 등을 통해서 몸 밖으로 배설한다. 또 골격근이나 간장과 같은 열 생산이 왕성한 곳으로 부터 다른 부분으로 열을 옮겨서 체열의 분포를 균등하게 하고, 피부에서 방열하여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데도 관여한다.>

헌혈이 요청되는 현실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들 수 있다. 아직 사람의 피를 과학의 힘을 빌려 생산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늘날처럼 우주과학의 시대에,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한 시대에, 거의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 같은 이 시대에, 간혹 피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는 보도가 있긴 하지만 정말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것과 동일한 피는 만들어 낼 수 없다. 물은 화학적 방법으로 추출해 낼 수 있지만 피는 그렇지 못하다. 인간의 몸은 그런 면에서 최고의, 첨단의 생산 공장이라 불러야 한다. 어쩌면 먼 후일 인간이 자신의 피를 똑 같이 만들어 사용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직 까지는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은 형편이기 때문에 오직 인간의 몸속에서 직접 피를 받아내야 한다. 또한 피의 장기적 보관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도 우리의 꾸준한 헌혈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피를 2,3개월 동안 보관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헌혈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말한 현실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신앙적인 이유에서 헌혈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첫 번째의 이유는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에 놓여 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라는 특성을 갖고 행동한다. 그것을 이기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 집착에 기인한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라는 반문도 가능하지만 자기에 대한 이기적인 관심과 자기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을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지으셨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속한 것 중에 정말 우리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가진 재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도 역시 마찬가지다. 몇 년 전 부터 어떤 목사님을 중심으로 헌혈만이 아니라 장기기증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거나 늙어 죽게 되는 경우에 자신의 장기 중에서 사용가능한 부분을 기증한다는 결단이다. 지난 봄에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님도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여하튼 우리의 육체는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피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부터 출발한다.
둘째는 모든 인간 사이에 이루어야 할 형제애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이란 우리의 구체적인 결단과 실천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웃들을 형제로 이해해야 하는데, 형제 사랑 중에 피를 나누는 것만큼 더 절실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성만찬에서 발견할 수 있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므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다는 종교의식으로서의 성찬식은 진정한 형제애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셋째는 생명의 본질이 자기의 것을 지키는 데서가 아니라 전체 생명에 참여하는 데서 확인된다는 점이다. 인간 개개인의 생명은 그것 자체로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라고 하는 전체 생명체와의 관련 속에서 그렇게 된다. 우리는 피를 나눔으로서 전체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여호와의 증인 교도들은 수혈을 하지 않고 헌혈도 하지 않는다. 간혹 자기 딸이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도 죽으면 죽었지 수혈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여호와 증인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들은 성서가 수혈을 부정하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보면 피는 생명이며, 그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피를 마시지 말라고 금한 구절이 있긴 하지만 그 말씀은 그 당시 이교도들의 그릇된 관행을 거절하라는 뜻이지 오늘날과 같은 의미에서의 헌혈과 수혈을 거부하라는 뜻은 아니다. 고대인들 중에는 동물의 피를 마시는 이들이 있었다. 종교적인 의식으로서 그렇기도 하고, 생활습관으로서 그렇기도 하였다. 요사이도 건강을 위해서 곰의 피나 심지어는 개의 피를 마시는 이들이 없지 않은 것 같은데, 딱한 일이다.

우리 교회는 작년에 이어 금년도 창립 8주년 기념 주일에 단체 헌혈을 할 예정이다. 남이 하니까 덩달아서 하는 게 아니라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이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피에 의지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고 믿는다.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는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수혈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하다. 가능한대로 우리도 우리의 생명을 이웃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헌혈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9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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