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의 남용

경찰이 없어도 치안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대의 정상적인 국가 치고 그러한 나라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고대 인류사회, 예컨대 씨족 사회라면 모를까 최소한 국가의 형태를 가진 공동체 안에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적 힘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한 공권력이 있어야만 그 사회의 부정한 폭력을 적절히 제어하므로 써 국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살인강도, 성폭력, 어린이 유괴나 청부살인 등등, 여러 파렴치하고 반사회적 사건들을 예방하거나 아니면 처치하기 위해서 정부의 강제력은 필수적이다. 그 권력의 기능을 믿고 국민들은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그 사회를 지탱해 주는 근거로서의 공권력은 가능한대로 확고할수록 좋은 것이며, 또한 그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충분한 대가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미국의 경우에 경찰들은 대우도 좋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명예직으로 까지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미국인들은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경찰에 대한 신뢰심을 키워 온 것 같다. 물론 가끔 미국 경찰들의 인종차별과 인권유린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의 경찰상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경찰이 정치로 부터 자유로우면서 오직 시민들을 위한 자리매김을 꾸준히 지탱해온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찰상은 아직 그렇게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경찰에 대한 불신은 매우 뿌리가 깊다. 그것은 왕조시대 때 백성들이 관가의 포졸을 싫어하던 것에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특히 조선 말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툭하면 관가에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하고,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다. 송기숙 씨의 <녹두장군>을 보면 그 당시 실정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경찰에 대한 불신의 깊이를 더 하게 된 역사적 계기는 아마 일제 강점기의 경험이 아닌가 생각된다. 칼을 찬 일본<순사>는 우리 모든 한국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우는 젖먹이 아이를 겁주기 위해서 “저기 순가 온다.”고 까지 말하지 않았는가. 해방 이후에도 일본 순사 출신이 그대로 해방된 나라의 경찰 간부가 되었고, 그들은 일본 사람들에게서 배운 방법으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고문을 가했다. 경찰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오로지 정권유지를 위한 하수인 역할만 감당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이나 검찰, 그리고 안기부 등에 끌려가서 이루 말 못할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불구가 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불귀의 객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소위 문민 시대라 하여 <개혁>의 목소리가 우렁찼지만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영역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것 같다. 최근에 철도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파업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UR비준 반대 시위집회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 있었다. 대학생들이 철도를 강제 정차시키는 등 지나치게 과격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또한 노조원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고 싶다 해도 일반 시민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철도와 지하철을 운행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인해 그들의 주장에 담긴 정당성마저 훼손될 수 있는 사회분위기이긴 하지만, 당국은 그것을 빌미로 노동계의 예봉을 꺾어 버리기 위하여 너무 쉽게 공권력을 투입한 것 같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 사무실에 항의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연행키 위해 경찰이 투입되었다. 교회협은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교회가 예배를 드리는 주일에 한국교회의 대표기구인 교회협에 경찰이 투입된 데 대해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한다.”면서 앞으로 시국대책위원회를 소집해 당국의 사과와 문책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교회협과 아무런 사전논의 없이 경찰투입 방침을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26일 병력투입 직전에야 교회협 총무인 김동완 목사와 인권위 사무국장인 김경남 목사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통보했다. 김동완 목사는 이날 경찰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교회협 사무실 진입은 독재정권 때도 없던 일이다. 강제난입을 할 경우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경찰의 진입을 보류하도록 강력히 요청했지만 당국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다. 장로가 대통령으로 있는 이 나라에서 말이다.
또한 29일 새벽 달성공단의 대우기전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파업 중이던 상당수의 조합원이 연행되었다. 공권력이 투입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때에 따라 그럴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29일자 매일 신문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노사분규해결을 무조건 공권력에 의존하려는 회사 측 태도에 더욱 문제가 있었다. 듣기로는 대우기전은 28일 부터 파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파업이란 절차만 분명하다면 합법적 투쟁 방법이다. 노조에서는 지난 3월에 여섯 개 항의 협상안을 회사 측에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에서는 노동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임금 안을 제외한 다섯 개 항은 협상대상이 아니라며 협상자체를 거부하여 단 한 차례도 협상 테이블에 나서지 않았다가,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지 단 하루 만에 공권력을 투입시킨 것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신보수적 경향에 힘입어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번 대우기전의 공권력 투입이 경찰 당국의 주도적 판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회사의 강력한 요청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권력의 남용이었다. <9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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