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소고

공식일정으로 6월9일부터 7월9일까지 FIFA(국제축구연맹)이 주최하는 월드컵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중심으로 12개 도시에서 열린다. 지난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회한 월드컵에서 우리는 4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 당시 ‘붉은악마’의 응원 열기도 엄청났다. 아마 “대-한민국 짝짜악짝 짝짝!” 하는 구호를 모르거나 한번이라도 외쳐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실제 게임이 열리는 운동장만이 아니라 시청광장, 역 광장, 대학교 운동장 등,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이 붉은 티를 입고 응원을 보냈다는 건 한민족에게 내재한 신바람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동방의 작은 나라, 현재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대한민국이 온 세계 사람들에게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에서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께름칙한 느낌도 없지 않다. 월드컵에 몰려든 그 군중은 왜 K리그를 외면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월드컵의 군중들이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민족주의를 자극시킬 수 있는 사건만, 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스타 선수들만 필요했지 그것의 저변인 국내 리그와 거기서 뛰는 일반 선수들은 필요 없었다.
지난 연말에 터진 황우석 교수 사건에서도 우리는 똑같은 현상을 읽을 수 있다. 황우석의 사기 가능성을 방송한 MBC가 ‘피디수첩’ 프로그램을 즉각 폐쇄하고 방송국 전체의 존폐 위기까지 다다르게 한 힘도 역시 기업 측에 광고계약을 파기하게 만든 민중들의 열광적 행동에서 나왔다. 미국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꽂고 왔다는 황우석 박사의 언어기교에 매료당한 그들은 모든 합리적 논의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열광에 사로잡혀 있었다.
월드컵에 쏟는 에너지가 국내 리그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못한 것처럼 황우석에게 쏟았던 그런 민중들의 지지가 과학발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이런 사회 현상에 대해서는 필자가 아는 척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상식적으로는 한 마디만 하자. 우리 민중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대리만족시켜줄 수 있는 스타다. 축구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면서도 월드컵에 마취되는 것도 거기에서 대리만족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자연과학에 대해서 무관심하면서도 광신도처럼 황우석에게 쏠린 것도 역시 그에게서 대리만족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모르겠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한겨레 21, 5월30일>에 기고한 글 “기죽지 말고 원 없이 놀자”에서 한국인을 ‘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이라고 정의하면서 그 특유의 냉소적 시각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 놀이가 소중하면 남의 놀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남의 놀이를 비난한 것도 놀이다. 각자 기죽지 말고 원 없이 놀자.” 복선을 깔고 그 글 자체에 대해서는 토를 달 게 없지만, 다만 원 없이 놀자는 말이 과연 한국 젊은이들의 월드컵 신드롬과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는 선듯 동의하기는 어렵다. 똥을 배출하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인간은 심리적으로 쌓여 있는 찌꺼기를 그런 놀이에서 쏟아내야만 생존할 수 있긴 하지만, 그리고 거기에 이성적 판단 운운하는 게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무데서나 똥을 누면 곤란하듯이 열광적인 행태 자체를 그런 식으로 합리화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렇다. 결국 이런 행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의미하게 소비될 수밖에 없는 스타 중심의 정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대충 즐거우면 된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곤란해 보인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교회 안에서 더 리얼하게 발생하는지 모른다. 월드컵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대형교회의 종교현상에서 나타나는 광신적 태도가 일란성쌍둥이처럼 흡사하다. 월드컵 게임에 열광적 지지가 국내 축구 리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대형교회 중심의 교회 부흥이 전체 한국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닮았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스타로 부각되지만 일반 선수들은 별 볼일 없다는 사실과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스타가 뜨지만 작은 교회 목사들은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사실도 역시 비슷하다. 월드컵에 몰두하는 군중들이 실제로는 축구에 관해서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대형교회에 몰리는 신자들이 실제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마음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일치한다.
힘들고 지겨운 세상살이를 민중들이 그런 방식으로라도 극복하면서 살아가면 됐지 무얼 그렇게 따지냐 하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중성을 강조하는 분들 앞에서 필자는 할 말이 궁핍해진다. 인식론적 훈련이 없는 일반 대중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은 기복적이고 감정적인 접근일 수밖에 없다는 막강한 주장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런 방식으로 그들의 영성이 건강해질 수 없으며, 삶의 신비를 들여다보는 영적 시각이 풍요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약간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지구촌을 달구게 될 축구 열기는 생태계, 제삼세계, 소수자 인권 등등, 인간다운 삶을 위한 모든 의제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우리가 잠시 축구 스타에 열광하는 데 머물지 말고 무명의 선수들까지 나름으로 자기의 몫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기초와 틀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 나마 다행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문제는 한국교회에 똑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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