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후반기부터 우리 나라 안방 극장에서 방영된 <반관 포청천>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금요일 밤마다 온 가족을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둘러 앉게 만들었다. 텔레비전 방송 수입 작품이 대개는 미국 쪽의 것이었는데, 이번에 동양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성공적인 시청률을 올렸다.
중국 송나라 때 실제 존재했던 인물을 중심으로 엮어진 시리즈물 작품으로서 별로 탄탄한 구성력을 갖고 있다거나 출연진들의 연기력이 출중하다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서까지 그런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재미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개되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된다. 비상한 감각력으로 심증을 굳힌 포청천은 범인이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하여 결국은 체포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제법 서구의 추리물 같은, 예컨대 탐정 루팡이나 콜롬보 형사 같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므로써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것 같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의 범인 검거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 일단 수사 대상이 정해지기만 하면 빈틈없이 잡아들인다.
이런 과정의 재미도 재미려니와 죄의 징벌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박수를 친다. 그렇다고 내용 전개가 고도의 구성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초등학생 정도면 따라 갈 수 있을 정도로서 작품성으로만 말하자면 가까스로 합격선에 들어와 있다고나 할까!
두 번째로 이 작품이 고대 중국의 색다른 이국적 분위기를 영상에 담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흥미를 담고 있다. 그 당시 중국의 왕실이나 고관들, 혹은 여염집 규수로부터 홍등가 여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인간과 생활 품습을 볼 수 있다.
세 번째의 특징은 굳이 학문적으로 설명하자면 일종의 초현실 주의이다. 죽은 혼령이 현실에 등장하는 이야기나 거북이가 인간이 되는 일, 한 걸음 더 나아가 무협소설에 등장하듯이 기상 천외의 무공을 보여주는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젊었을 때 무협소설 한두 권 읽어보지 않은 한국 남자들이 없을 텐데, 그들은 지난 날 머리 속으로 그려 가며 읽어가던 옛날 소설을 다시 돌아보면서, 하늘을 날듯이 달려가는 축지법이나 여러 종류의 독극물, 한 사람이 열 사람의 힘을 제압하는 내공을 즐기는 것이다. 자칫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작품의 진지성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는데, 포청천에서는 오히려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성공한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관점들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런 점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붙들어 놓는 핵심은 역시 포청천의 성격이다. 그는 오늘의 대검찰청장과 대법원장을 겸한 직책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황제에게 절대 충성을 하고 백성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직책에 무모할 정도로 충실하였다. 요사이 말로 하자면 원칙주의자, 원리주의자, 법치주의자라고나 할까.
그는 모든 사안에 예외 규정을 두지 않고 국법에 의해서만 처리한다. 범법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법에 따라 징벌한다. 고관들의 아들 뿐만 아니라 황제의 사촌 동생도 참수형에 처한다. 심지어는 범인들을 잡으러 간 자기 수하의 심복이 황제의 특사를 방해했다고 처형하려고 까지 하였다.
불의한 일은 물론이고 의로운 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행한 것이라 할지라도, 법에 어긋나기만 하면 모든 행위를 징벌한, 그야말로 원리 원칙에서 추호도 벗어나지 않은 인물이었다.
포청천의 이러한 성격은 중국의 전통에 비춰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에서는 국가에서 녹을 먹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약점을 갖고 있어야 백성들의 실수도 너그러이 눈감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람이 어느 정도 도덕적으로 완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사회 지도자의 결벽성이 과연 그 사회를 어느 정도 정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다.
송나라 때의 포청천이나 방콕 시장이었던 잠롱 같은 이들의 방식만이 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모든 인간의 행동을 법의 잣대로만 엄격하게 측정한다면 어느 누구도 떳떳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청천과 같은 법 진행자는 우리 모두의 사표가 될 수밖에 없다. 포청천이 절대 선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다른 어떤 인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롭고 선하다. 특히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 부패와 비교해 볼 때 그는 더욱 빛나는 사람이다.
우리의 검찰과 법관은 어떤 모습인가? 나라의 법을 집행하는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먼저 그 법에 따라 살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검찰이 주먹 세계와 연루되는 파렴치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정권의 시녀 역활에 머물기도 한다.
변호사 세계에는 전관예우라는 게 있어서, 판사나 검찰에서 물러난 직후에 맡는 소송 사건의 승률은 현저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그들이 변호사 개업 1년 안에 평생 먹을 걸 벌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는 실정이니, 이 나라 법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충분히 알만 하지 않는가?
며칠 전에는 인천 지방법원 집달관실 사무원들이 입찰 보증금을 횡령했다 해서 야단이다. 앞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밝혀지겠지만 법관의 감독하에 있는 집달관이 수백억 원을 횡령했다면 그 상납 고리는 불을 보듯 분명한 것 아닌가?
우리의 법조인들이 법을 뛰어넘어 사랑의 능력을 실천할 수 없다면 최소한 포청천처럼 법에라도 충실해야 한다.  포청천이 우리에게 신화로만 남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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