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장관이 고교입시를 지방자치 교육위원회에 일임하겠나는 발표가 지난 연말쯤에 있었고, 이에 근거하여 인천 등 몇몇 지역에서 이를 추진하겠다는 해당 교육감의 발표도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결국 전국이 다시 고교입시 부활로 나아가게 되어, 삼십 년 전에 폐지된 중학입시까지 거론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정책이건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교입시 부활을 무조건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만은 없다. 이의 시행을 주장하는 이들은 고교 평준화 이후로 고교생들의 실력이 하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고등학교에 선발권을 주어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나아가 엘리트 교육을 고교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천차만별의 학생들을 한 반에 넣어 지도하다 보니 아무래도 학습 효과에 문제가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생님들이 중상 정도 학생 수준에 맞추어 학습을 진행하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중간 이하의 학생들을 허겁지겁 따라 오거나 아예 포기하고, 앞의 학생들을 학습의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입시 부활에 따른 제반 문제점을 생각하면 하향 평준화라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고등학교 교육이 순전히 대학입학을 위한 학원교육 같이 생각되는 실정인데, 만약 고교입시가 부활된다면 중학교육 역시 그런 꼴을 면키 어려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언젠가 보도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일 년 사교육비가 17조 원에 이르며, 그 중에 순전히 과외비만 7.8조 원이라고 하는데 참 엄청난 비용이다.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일자리를 늘려 준다는 점에서는 최소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웬만한 고등학생 교육비가 대학생보다 더 많이 드는 이런 이상한 상태를 어떻게 국가 백년지대계를 꿈꾸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현 정부의 복안대로 고교입시를 부활시키면, 과외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증가되어 말 그대로 과외 망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재원을 들여 교육의 장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국민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사설 교육기관이나 그와 유사한 교육 방법을 찾아나서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자식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인지, 천성적으로 교육열이 강한지, 아니면 자신이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찾아야 할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공교육만으로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만 다녀서는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말이다.
교육이란, 대학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됨에 있다는 말은 하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다들 잘 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과 심지어는 선생님들까지도 그건 그저 이상에 불과한 넋두리이고 현 실정으로는 상급학교 진학이 교육의 목표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런 원론적이 말은 집어치우고라도,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성실하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문제는 학교 교육에 불성실하거나 아니면 태어나기를 학문보다는 기술 쪽에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어거지라도 자기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늘의 한국 교육이 이렇게 꼬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일종의 상품이 되어 버렸다. 상품이 되어 버린 교육은 경제 이념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 안에는 평화, 자유, 해방, 진리가 들어갈 틈이 없고 대신 고도로 훈련된 세일즈맨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 주변에는 과열의 도를 넘어서 광란에 이르는 교육 세일이 허다하다. 입시철이 가까우면 소위 족집게 과외를 받는데, 과외비가 수백만 원, 심지어는 천만 원 대에 이른다는 말도 들린다. 비록 일부이겠지만, 이렇게 해서 무얼 어쩌자는 건가?
초등학생용 학습물을 파는 어떤 출판사는 그 비싼 텔레비전 선전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알아야 할 교육의 양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막대한 비용의 광고를 내면서까지 파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화로 학습을 지도하거나 아니면 일 주일에 한두 번 방문해서 지도해 주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 지도 방문하는 교사들이 과연 교육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부모들은 그런 걸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 2월 말 독일에서 8년 동안 신학공부를 하고 돌아온 친구집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 친구의 초등학교 2학년 짜리 딸에게 물어보았다. "독일에서 이상하게 생긴 아이들하고 공부하는 게 좋았니, 아니면 지금 여기 한국에서 한국 아이들끼리 공부하는 게 좋니?" 그 아이의 대답이 이랬다. "독일이 좋아요. 거기는 학교 가는 게 재미있어요. 선생님들도 친구 같아요. 학교 갈 때 준비물도 없구요. 공부하는 거도 그냥 재미있게 노는 거 같아요."
그런 어린아이의 경험에 따르면, 독일 학생들은 공부에 전혀 부담 없이 학교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부럽다.
우리는 아이들을 초등학교 때부터 몸살나게 만든다. 모든 정열을 아이들 교육에 쏟긴 하지만 그런 행위는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소모적일 뿐이다. 교육을 상품처럼 생각하는 선생님들, 부모님들, 학생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어린 아들과 딸들은 불쌍하게도 공부를 억지로 하게 될 것이며, 결국 인생도 억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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