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병원과 교회는 이 세상의 다른 조직이나 단체와 선명하게 구별되는 기관이다. 그 사회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준거는 아마도 이들 세 기관이 아닐까 생각된다. 학교와 병원과 교회는 생명의 본질에 가장 접근해 있는, 아니 그 본질 추구를 존재론적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통해 허망한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학교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교육시키는 기관으로서 소위 백년지대계라는 말에 어울릴 정도로 인류가 소중하게 간직해 온 전통이며 기구다. 교육을 받은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 사이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인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도 인간의 정신적 발달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계획된 교육과정이 더욱 효과적으로 인간 발달은 제고시킨다. 교육의 중요성은 전 세계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교육을 국민의 의무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은 인간의 물리적 생명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기구다. 인간은 정신이나 영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갖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생명은 인간을 전체로서 이해하고자 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의사들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치유 행위를 대신 맡아서 하는 일종의 제사장들이다. 구약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몸의 치료는 제의적 성격을 가졌다. 이러한 내면적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건강하게 사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병원을 구원론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사명과 중요성은 부언할 필요도 없이 모든 인간의 삶을 구원의 지평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막중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인간 구원의 표징으로 이해하고 있는 교회는 인류에게 진정한 희망을 선포하는 기구다.
학교와 병원과 교회는 공히 인간 생명의 본질을 그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수한 사명을 요청받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돈으로 매매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실행의 동기를 금전적인 차원에 둘 수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일 자체에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 학교 선생들은 오직 가르치는 일에서, 의사들은 오직 치료하는 일에서, 목사들은 오직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만약에 그들이 다른 것에 마음을 둔다면 벌써 자신들의 존재론적 근거를 상실한 셈이다.
얼마 전 신흥 명문고인 상문고에서 교사들이 무더기로 양심선언을 했다. 상문고는 전국에서 서울대 입학생을 제일 많이 내는 초일류 고등학교로 명성을 높이고 있었다. 부친으로부터 학교를 물려받은 부부가 교장과 이사장을 맡아 거의 독재에 가까운 전횡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교장이 스파르타식으로 학교를 운영하여 20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80년 대 중반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고치는가 하면, 졸업식 때 상 받을 학생들에게 100만원씩 뜯어 내기도 하고, 상문 사설학원을 운영하던 솜씨를 발휘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교 발전을 꾀했다고 한다.
그 자세한 내용이야 알 수 없는 바이지만 비록 학교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하더라도 교육을 사업하는 식으로 여겼다면 그런 명분은 없는 것만 못하다. 교육은 업적을 내는 것보다는 그 과정, 인간을 교육하는 과정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병원의 비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약회사에서 병원에 로비를 하고, 의사들에게 특정 약품을 제조해 달라는 명목으로 적지 않는 촌지를 지불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선발에 금전이 오가기도 하고, 또는 환자를 실험의 대상쯤으로 여기는 일도 있는 모양이다.
지난 탁명환 씨 살해 사건이나 기도원의 안수기도에 의한 치사사건 등은 교회의 비정상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교회의 문제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복음을 선포하는 게 아니라 "바겐세일"하고 있다.
교회의 목적이 복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반대 급부에 집중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복음은 정말 복된 소식이어야 하며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이어야 할 텐데 오히려 경쟁과 권모 술수와 파렴치가 득세하고 자기 만족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교와 병원과 교회만이라도 이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기구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다른 사회 조직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모두 한결같이 누가 얼마나 상품을 더 많이 판매하였으며 어떤 업적을 내었는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과연 보험회사와 본질적으로 다른 일을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방법론 또한 달리하고 있는가? 모두가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24시간 편의점과 병원 중에 어느 곳이 더 생명의 본질에 가까운지 선뜻 구별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월급이 작다고 교사가 자기 연민에 빠진다면 얼마나 큰 불행인가? 수입이 좋다고 의사가 우월감에 빠진다면 얼마나 불행한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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