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사회는 가정공동체를 강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약화시킬 것인가? 양면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편으로 보면 강화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느슨해질 수도 있다.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 혹은 최소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보편적인 입장이다. 인류의 역사는 가정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이 가정의 연대가 허물어진다는 것은 인간 공동체가 와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의 몸을 통해 인류의 생명이 연장되는 한, 가정은 그 어떤 체제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다. 인간은 가정 안에서 인간 관계를 배우고 사랑을 체험하고 주변의 사물을 인식해 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가정, 즉 피를 나눈 이들의 공고한 연대감 속에서 자기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반면에 가정의 제도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주장, 혹은 최소한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가정이란 인간이 아직도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지 진정으로 성숙하게 되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가정이 절대의 세계이지만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는 자기의 세계를 형성하게 되므로 그 가정은 상대적 가치를 갖게 되는 것과 같다. 사회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가정의 연대감으로부터 자유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수도승들은 출가하므로써 더 큰 세계에 참여하고자 했다. 지금도 카톨릭의 신부들은 가정을 갖지 않는다. 예술가나 정치가, 혹은 사회운동가들이 가정의 일보다는 자기의 업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가정이 인간에게 절대적인 조직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직 가정 제도의 미래를 가늠할 만큼 어떤 징조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혈연 관계를 중요시하는 나라일수록 가정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결혼식은 너무 허례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 그 결혼식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모든 힘을 결혼식에 쏟아 붓는다. 그렇게 거창하게 결혼식을 올려도 두 사람은 인격적인 신뢰 관계보다는 그저 본능적인 가족 관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본능적 혈연 관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은, 인간을 두 가지 면에서 폐쇄적으로 만든다. 첫째는, 남자나 여자 모두 가정을 숙명처럼 여기고 때로는 굴종적으로(매조키즘), 때로는 폭력적으로(새디즘) 그 제도에 적응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개 여자들은 경제적인 종속감 때문에 남자의 정신,육체적 폭력을 물리치지 못하며 남자들은 그 반대다. 이러한 과계는 어느 한 쪽만이 아니라 모두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둘째는, 가족 성원들이 가족 이기주의에 머물러 있는 경우다. 이들의 연대감은 너무 확실하고 경직되어서 주변 사람들이 접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반사회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극단적 개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보다 넓은 세계를 위한 자기 희생이다. 전자는 유럽 등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서 독신으로 살아간다. 철저하게 개인 이기주의에 파묻혀서 오직 자기만 아는 그런 생활 패턴을 가리킨다. 이러한 삶은 가정 이기주의가 몰고 오는 폐해보다 더 심각하다.
반면에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혹은 하나님을 위해서 가정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예수님이 가정의 의무만을 생각하셨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실 수 있었겠는가?
일제시대 때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이들이 가정에 얽매였다면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한 나라나 한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개인이나 가정보다 더 큰 질서를 위해서 자기의 삶을 투자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자주 듣는 이야기이지만 선천적으로 지체가 부자유하게 태어난 한국의 아이들을 외국 사람들이 입양해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은 아무런 피도 섞이지 않은, 더구나 피도 섞이지 않은, 더구나 피부색도 다른 동양의 아이들을 그 어떤 보상도 염두에 두지 않고 데리고 간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인지 모른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도 입양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거의 대를 잇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입양을 하더라도 남자아이, 그것도 잘 생기고 똑똑한 아이만은 데려간다. 도대체 대를 잇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들을 낫지 못한 여자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을 낳기 위해 애를 쓰고, 결국 아이들의 남녀 비율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코미디 같은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렇듯 폐쇄적인 가정 질서 가운데서 자라난 아이들은 커서도 자기와 자기 식구밖에 모르는 인간이 된다. 자기 식구도 모르는 폐륜아가 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 사회 전체를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키운데서야 어디 말이 되겠는가?
인간은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가정으로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더 큰 사회가 있으며, 국가가 있고, 또한 인류 전체가 있다. 전체 인류와 함께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자연과 함께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네 식구들을 내버려 두라"고 하셨다. 가정의 달인 5월에, 가정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고 초보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뛰어넘어 이 세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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