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생각만 해도 상쾌한 일이다. 그렇데 우리 가정은 근래 몇 년 동안 그런 여행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갖지 못했다기보다는 갖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인지 모르겠다. 어디를 가나 조금씩 풍경이 다를 뿐이지 인간이 사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부러 다른 곳을 찾아나서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여행을 위해서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교회를 위한 봉사 외에도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자주 글을 써야 하고, 독일어 교회사 책을 번역도 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는 등 현풍에 앉아서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웬만큼 마음을 다잡아먹지 않고는 길을 나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기분을 전환시키는 것, 더구나 식구들과 새로운 분위기에 접해 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 왜 여행을 가지 않는가?
한 마디로 갈 곳이 없다. 우리 나라처럼 멋진 강과 산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갈 만한 곳이 없다. 우리의 삼천리 강산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또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고 우리 나라 전국토가 유적지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에 솔깃해 했지만 막상 나서려 하면 머뭇거려진다.
왜 그런가? 그 대답은 우리의 강과 산과 바다를 사람들이 버려 놓았기 때문이라는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사람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웬만큼 괜찮다는 곳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내가 살고 있는 부근의 비슬산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여름철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다. 사람만 많이 모인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문제는 사람이 만드는 공해다. 그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연 훼손이며 다른 하나는 소음 공해이다.
몇 년 전에 교우들과 함께 비슬산 계곡에 갔었다. 여기 저기 사람이 많았던 것은 물론이고, 도처에 쓰레깃더미가 널려 있었다. 개울 바닥에는 밥알, 수박 껍질, 쭈쭈바 껍질, 라면봉지 같은 쓰레기가 깔려 있었고, 개를 잡아 먹었는지 아니면 불고기를 해 먹었는지 솥을 걸어 놓았던 크고 작은 바위에는 그을음이 잔뜩 끼어 있었다.
큰 바위 밑에는 촛농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 산 속에 웬 초가 저렇게 많은가 궁금해 했는데 알고 보니 산신령께 소원 기도를 드린 자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싸 가지고 간 밥을 적당히 먹고 내려왔다. 그렇게 지저분한 데서 어떻게 식욕이 나겠는가.
지난 5월 1일 우리 교회는 야외 예배를 삼천포로 갔었다. 속칭 쌍발이라는 해변가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그런 대로 재미있게 지내다가 돌아왔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기암 절벽이 남해를 향해 우뚝 서 있었다. 공룡 발자국이 있다는 그 자리에도 가 보았다.
처음에 본 인상으로, 쌍발이는 아직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깨끗하게 보였다. 그러나 속 깊이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 곳에 큰 바위 굴이 있는데, 그 굴을 통해 절벽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바위 통로 안에도 역시 촛농이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었다. 사람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아 두지 않는다. 유원지 마다 해수욕장마다 얼마나 지저분한지 가 본 분들은 잘 알 것이다.
쓰레깃더미야 눈 질끈 감고 안 볼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내지르는 고함 소리는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딜 가나 남이야 좋든 싫든 상관 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댄다. 요사이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견디기가 쉽지 않다.
우리 민족은 원래 천성적으로 가무를 좋아했던 탓인지 지금도 노래와 춤이 없으면 여행이 불가능한 것 같다. 가끔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관광 버스 안에서 뽕짝 테이브를 메들리로 틀어 놓고 통로에 서서 몸을 흔들어 대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시작해서 늦은 밤에 돌아올때까지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고 놀아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우리에게는 노는 문화가 너무 빈약하다. 모여 낮았다 하면 고스톱을 치든지, 아니면 무조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러제껴야 한다. 그런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동해안 바닷가의 저녁놀을 가족과 함계 보면서 그냥 말 없이, 말을 하려면 소근소근 따뜻하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을까? 논다는 것이 항상 화끈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저 그 자연 속에 있음을 즐길 수는 없을까.
언젠가 대구 시내 모 교회에서 저녁예배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화원 인터체인지부터 논공면까지 대구로 가는 국도에 승용차가 밀려 있었다. 알고 보니 모두가 일요일에 놀러 갔다가 돌아가는 차량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각 가정마다 승용차가 있어서 아주 쉽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 주일 힘들게 일하고 하루만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려는 것이야 나쁠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런 여우 있는 생활 여건을 갖는다는 것은 더욱 창조적인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
하여튼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노는 게 좋아도 경쟁적으로는 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들이 놀러가니까 나도 가야 한다는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어쩌면 우리 나라와 같은 여건에서 주일날 놀러 가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고생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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