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이 도시를 만들고 그 도시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킨다. 인간의 문명사는 곧 도시의 역사와 다름없다. 인간이 언제부터 도시를 만들어 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모든 고대의 문명 발생지는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 문명하를 연구해 보면 그 대답도 나올 것 같다.
예컨대 중국의 황하강 유역과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유역에는 거대한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도시다운 도시는 아무래도 도시국가 형태를 가진 헬라의 여러 폴리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아덴, 고린도, 빌립보 같은 곳은 철학과 예술, 건축 등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문명 도시였다. 그들의 문화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데 이제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 전체가 도시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시, 특히 대도시를 거점으로 모든 나라들이 운영되고 있다. 아프리카나 인도, 남아메리카의 오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곳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매우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가는 추세이다.
'도시'하면 우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게 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 나라의 서울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큰 도시다. 한반도의 반쪽 수도인 서울에 자그마치 일천만 명이 모여 산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살게 되었을까? 지정학적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강이 있거나 교통의 요지로서 무언가 편리한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게 되니 결국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주거와 생필품의 생산 시설이 들어서게 되고, 경제와 교육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서울만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학교와 금융기관, 의료시설과 문화공간이 있다.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모두 서울로 모여들고 있으며, 서울대를 중심으로 학교 서열이 매겨질 정도다. 세계 유수의 발레단이나 음악가들이 한국에 올 경우는 거의 서울에만 들르곤 하는데, 이런 경향들이 도시의 비대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사람들이 서울로 많이 몰리게 되는 이유는 우에서 말한 문제만이 아니라 먹고 살기가 다른 데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보다 일거리가 많으니까 당연히 상대적으로 부족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된다.
그런데 서울과 같이 대도시가 비대해지므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는 농촌의 퇴락이다. 지난 70,80년 대 많은 농어촌 인구가 대도시, 특히 서울로 유입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것은 정부가 도시화 정책을 매우 무책임하게 펼쳤다는 점이다.
수출이 지상 목표가 되므로써 도시 내부나 근교에공장이 들어서게 되고, 노동자들을 농촌으로부터 끌어다 쓰게 되었으며,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저곡가 정책을 지속시키므로써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아주 비참하게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도시화를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특히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력의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지나친, 너무 졸속한 도시화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한국의 도시 형성은 그저 사람들을 모아 놓기만 했지 인간답게 살기위한 기반은 닦지 않았다.
달동네라는 말은 그것의 상징적인 용어인데, 어떻게 같은 도시에 살면서 한 가정은 백 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다른 한 가정은 두 평짜리 비닐 천막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같은 도시에서 말이다.
도시라는 것도 사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일종의 생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문명의 힘을 최대한 발휘시켜 보자는 노력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을 위한 도시이지 도시를 위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데 과연 도시에서의 삶이 인간다운 삶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골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문명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인간을 문명의 척도에서만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그런 외형적인 부분보다는 오히려 내적인 어떤 가능성과 힘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도시 삶의 가장 큰 특징은 경쟁적 구조에 놓여 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모두가 경쟁을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그것도 매우 투쟁적으로 출퇴근에 시간을 소비하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도시인들은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적자생존의 원리를 체득해 가는 것이 인간적인 살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대도시에 사는 인간은 서로 소외시키기도 하며, 소외당하기도 하면서 산다. 대도시 구조 자체가 인간의 외소함을 절감케 한다. 이미 거대 도시의 메카니즘이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다. 서른 살 가까이 서울에 살던 내가 요새 일 년에 한두 차례 서울에 갈 기회가 있는데, 그 엄청난 자동차와 고층 건물과 사람들 때문에 기가 죽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차가 밀리고, 사람에게 밟히고 먼지에 숨이 막힌다.
이제 도시는 어쩔 수 없이 현대인의 전형적인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면 최소한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도시로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인간이 자연과의 조화 가운데서 참된생명의 세계를 회복해 나가는 데서 찾아 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늦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의 후손들은 그런 데서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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