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이야기

국내외 정치 이야기는 한편으로 재미있기는 하지만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언급하구 싶지 않다.
그러나 어젯밤 시사 토론 방송을 잠시 시청하면서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도 도저히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발견하고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언가 한 마디 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서
이렇게 북한 핵 주제를 앞에 걸었다.
어제 나온 패널들 중에서 도저히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을 하는 분들은
한나라 당을 대표하는 김문수 의원,
몇십년 전인가 7.4남북 평화공동 선언 당시에 실무를 맡았던 김동복(?) 선생,
연세대학교(?) 아무개 교수였다.
그들의 일관된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북한은 불량국가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남한 정부는 북한의 전략에 끌려 다닌다.
이제 당근보다는 채찍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남북 핵문제는 한미동맹을 우선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겠지만
이런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한미동맹을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외교정책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철저하게 국가 이기주의에 근거해서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슨 이유로 남북 공조보다는 한미동맹을 상위의 가치로 여기는 걸까?
북한은 잘났든, 못났든 우리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할 민족이고,
미국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우리와 적대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정말 모르는지, 정략적으로 모르는 체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사실을 외면한다는 건
그들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인식의 오류인 것 같다.
물론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세습, 반인권과 독재로 악명이 높다.
그것만이 아니라 마약 수출국이며, 간혹 대량무기 수출국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며, 또 부분적으로는 과장되었을 것이다.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북한이 그렇게 바람직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국가의 통치제체나 그들의 윤리적 가치에 대해서
제삼자가 평가할 때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만약 비난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나라는 불량국가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쪽방의 삶이 어떤지,
비정규직의 삶이 어떤지,
양심수와 장기수의 실상이 어떤지 따지고 든다면 불량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은 불량국가가 아닐까?
그들은 국제적으로 불량한 나라가 아닐까?
다른 것은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본인들은 수백 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으면서 북한의 핵에 대해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게 좀 가소로운 일이 아닐까?
물론 이미 인류의 역사에 벌어진 핵 상황을
가능한대로 안정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소위 ‘핵확산 금지조약’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재 핵보유국들이 우선 가시적인 핵무기 폐기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순차적으로 50년 후까지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 조치 없이 핵 미보유국에게 금지조약을 강요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말이 좀 옆으로 나갔는데,
한국의 우익 집단들은 무슨 근거로 한미 동맹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려고 하는 걸까?
그들 중에서는 명분보다는
세계 최강국 미국에게 잘 보여야만 우리의 안보가 보장될 수 있다는 현실론에 근거해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대주의이다.
한민족의 동북아와 아시아, 더 나아가서 세계의 국제 정세 속에서
바른 길을 밀고 나가는 것이 우리의 안보에 최선이지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이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내가 언급할 게 아니니까 이만 접자.
그러나 우익 집단들의 논리 중에서 모순 되는 부분은 내 눈에도 들어오니까
한번 물어보아야겠다.
우리의 우익들이 원래의 우익에 충실하다면
북한의 핵 보유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남북통일 이후를 내다면본다면 북한의 핵이 결국 우리의 핵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일본과 영토 분쟁이 일어날 경우를 전제한다면
핵무기가 있을 경우에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통일 이후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핵무기만이 아니라 재래식 무기까지
점진적으로 폐기하는 쪽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이다.
왜 우리의 우익들은 북한의 핵이 결국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일까?
아마 여기에도 그들에게 어떤 평화주의보다는
북한을 향한 적개심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유를 불문하고 북한을 악의 화신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은 북한을 향해서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다.
남북문제가 불량학생 길들이 수준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남북문제는 우리 남쪽이 비굴하게 보이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만에 하나 채찍을 들었다가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그때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완전히 망하는 길밖에는 하나도 없다.
전쟁을 불사하고 북한을 타일러야 한다는 우익들의 주장은
철이 없어도 한참이 없다.
그들도 북한이 거의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는 말인데,
그런 북한에게 채찍을 들어서라도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북한에 핵폭탄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한반도는 핵의 참화를 면할 수 없다.
남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핵발전소가 파괴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걱정을 붙들어 매어 두어도 좋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남한과 적대적인 관계로 접어들 생각이 없는 한
북한을 공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북한을 공격하는 그 순간에 남한도 역시 그만한 보복을 받게 되며
더 나아가서 일본도 역시 비슷한 공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정권은 끝장나겠지만,
전쟁의 뒤치다꺼리는 우리가 모두 떠안아야만 한다.
그 전쟁 후에 일어나게 될 상황은 끔찍하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도 없다.
수십 년이 지나도, 어떤 백년 이상이 흘러도 복구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후손들이 이미 사라져버린 북한 정권을 미워하겠는가?
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완전히 적대적으로 변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는 것은
미국의 안보에 결정적인 위협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핵은 현실적으로 미국에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
결국 우리 남북의 문제는 남북이 주도적으로 풀어가야만 한다.
북한 정권이 기본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려있고,
나름으로 콤플렉스에 빠져 있으니까 우리가 달래는 방식으로,
한민족의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그런 방식으로 우리가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나가야 한다.
우리의 우익은 우익의 철학도 없고,
단지 북한을 향한 적대감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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