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시대 앞에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전 세계의 생물학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일반 지성인들과 정치인들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미래에 관해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끼친 것 같다. 기초학문의 황무지나 진배없는 한국에서 이런 개가를 올렸다는 건 황우석 박사의 개인적인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을 추진하겠다는 말도 나오고, 정부에서는 연구비를 무한정으로 지원하겠다는 말도 있고, 이곳저곳에서 밀려드는 강연 초청으로 황 교수가 몸살이 날 정도라고 한다.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한 거의 일방적인 찬사 물결 중에서도 약간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대표적으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내심으로 반대하지만 민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성명서를 내지 않은 선에서 매듭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이런 연구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외신이 들려온다. 가장 진보적인 한국의 민주노동당과 가장 우익적인 부시가 결국 이번 연구에 대해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 신기하게 보인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이런 연구 결과로 인해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이 질병치료에서도 크게 갈린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며, 부시의 입장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역인 생명까지 손을 댈 수 없다는 보수적 기독교 신앙에 기대어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접근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지 결과는 같게 나왔다. 미국 의회에서는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화당의 일부 지지에 힘입어 배아복제 연구를 위한 정부 지원법을 통과시켰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하니 한국의 상황과는 다른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무엇이 논란의 핵심인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근본적으로 루게릭 같은 난치병 치료에 가장 어려운 관문을 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한다. 내가 전문적인 부분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 이렇게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를 난자와 결합해서 만든 배아를 14일 동안 배양하면 줄기세포가 조성된다고 한다. 그 배아는 무슨 장기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환자의 손상된 장기에 이식함으로써 원상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장애로 태어난 사람이 이런 줄기세포를 통해서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면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명윤리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배아를 14일 동안 배양해서 만들어낸 줄기세포를 마음대로 이용한다는 게 과연 정당한지 아닌지 아직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줄기세포는 아직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배아 상태에 돌입했다면 생명의 초입에 도달한 것인데, 그것을 소모품처럼 다루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더 이상 언급할 만큼 준비되지 않았으니 접어두기로 하고, 다른 관점에서 한 가지 문제만 짚도록 하자. 난치병 치료를 이렇게 생명윤리와 민감하게 연결된 배아를 통한 줄기세포 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게 지혜로운지에 관한 질문이 그것이다.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는다거나 인공 장기를 정밀하게 만드는 것도 그런 치료의 한 방법일 수도 있으며, 혹은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외국에서 짐승의 배아복제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된 반면에 사람의 배아복제에 관해서 소극적인 이유는 이런 생명윤리의 근본적인 문제도 문제이지만, 이런 연구에는 여성의 난자가 실험용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데에도 있다. 실험의 정밀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난자의 수요도 적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여성의 난자가 실험용으로 소비된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난치병 치료라는 인간애적 사명을 위해서 그런 비인간적인 상황을 일시적으로 용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연구가 계속 앞으로 나갈 경우에 인간 자체가 기계적인 대상으로 변질될 위험성은 좀더 진지하게 고려되어야만 할 것이다. 여성들이 미인이 되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하듯이 앞으로 난치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좀더 건강한 신체를 갖기 위해서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결국 경제적 능력이 그 인간의 건강과 수명까지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미 줄기세포 은행 운운하는 걸 보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리라는 건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배아복제와 줄기세포를 통한 건강한 삶과 영생을 향해서 나가는 이런 길이 인간의 미래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임상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안전장치를 마련하겠지만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서 자리한 인간의 생명현상이 이런 줄기세포 작용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천년 후에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간의 과학이 나름으로 예방조치를 하겠지만 인간 생명에는 그런 과학기술의 조치로 전혀 예방할 수 없는 힘들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염려를 지울 수 없다.
이제 ‘판도라’ 상자는 열렸다. 아직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지만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중지시킬 수 없을 것이다. 과연 그 안에서 난치병을 치료해주는 귀여운 요정이 나올 것인지 아니면 인류 전체를 끔찍한 파멸로 몰아넣을 괴물이 나올 것인지 확실한 게 우리에게 없다. 이런 연구 업적 자체는 높이 평가해야하겠지만 인간과 세계의 미래가 걸려있는 문제니까 그 업적에만 흥분하지 말고 훨씬 냉철하게 종합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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