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성결교회 대구 지방회 때 예상치 못한,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예견되었던 불상사가 발생했다. 입장을 달리하는 회원들이 감정적으로 대립하여 급기야 집단 퇴장이라는 상처를 남겼고,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상당 기간 지방회의 파행 운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 문제의 도화선은 표면적으로 볼 때 임원 선거였지만, 내면적으로는 대구신학교 문제였다. 더 본질적으로 보면 지방회의 주도권 쟁탈전이 아니었으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한쪽에는 성결교 대구신학교를 설립하고 총회 승인을 받기 위해서 자기 희생적으로 뛰는 이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그것의 필요성과 진행 과정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 양자 사이에 이번 지방회 임원 구성을 두고 심각한 갈등이 표출하게 된 것이다.

대구신학교는 2년 전에 시작되어 이제 학생들이 20명 가까이되는 것 같다. 대구 신학교가 최소한 명분을 얻으려면 총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게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임에 틀림없다. 현재 전국적으로 성결교회가 4,5개 정도의 신학교를 세워놓고 총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대구 지역에 지방 신학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현재 전도사를 청빙하고 싶어도 서울신학대학교 출신은 이에 응하지 않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배출하여 수요를 채우자는 것이다. 사실 본 교단 총회 직영 신학교인 서울신학대학교 출신들이 대구와 경북 지역까지 내려오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대개의 경우 서울과 인천, 혹은 경기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는 성결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지방 신학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장로교회가 대구와 경북에서 성장한 이유는 그들에게 자체적인 지방 신학교가 오래 전에 설립되었기 때문이므로 성결교회도 성장하려면 이제라도 지방 신학교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위에서 열거한 두 가지 문제에 집중된다. 지방 신학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 문제접이 있다.

우선 신학교를 설립해 가는 과정에 큰 문제가 있다. 문교부로 부터 인가를 받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아직 총회의 승인도 없는 상태에서 신학교를 시작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신학교가 처음부터 법적인 절차를 갖추고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나느 것과 불법적으로라도 시작해서 잘 운영되면 차츰 정부와 총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 지방회 자체적으로도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또 하나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추진하려면 충분한 여론을 무아야 할 텐데 그런 작업이 없었다. 최소한 공청회라도 몇 번 열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몇몇 사람들은 사전에 많이 했겠지만 대개의 목사와 장로들은 지방회 하는 날 '지방 신학교 설립 건의안' 연명부에 별로 깊은 생각 없이 도장을 찍고 말았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대구신학교의 운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다. 현재 대구 지방회에 소속된 교회는 서른 두 개다. 경북 지방회에도 그런 정도의 교회가 있으며, 경북 서지방에는 마흔 아홉 개의 교회가 있다. 경북 지역에 있는 성결교회가 모두 합해도 백여 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 숫자의 교회도 사실은 개척교회나 미자립 교회, 사실상 기도처에 불과한 교회를 모두 포함할 때 그렇다.

장로교회의 경우는 우리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통합측에는 대구 지역에만 네 개의 노회가 있는데, 한 노회는 일백 이십 개 정도의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교회가 있을 때 영남신학교 같은 교육기관이 필요하며, 현실적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성결교회의 경우는 신학생을 충당할 만한 자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졸업생이 2,3회만 지나면 더 이상 졸업생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안으로 교회를 개척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점차 교회의 성장율이 감소하고 있는 실정에서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이 옛날처럼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다. 다음 총회에서 승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구신학교 문제를 누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왜 이렇게 너 나 할 것 업이 신학교를 설립하려고 야단인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정부에서는 무인가 신학교를 정리하겠다고 칼을 갈고 있는데 목사와 장로들은 무인가라도 신학교를 세우겠다고 옥신각신이다. 성결교회는 문교부에서 인정받은 서울신학대학교라는 총회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 지방마다 한 개씩의 지방 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는 중앙신학교, 충청도에는 대전신학교, 전라도에는 광주신학교, 경상도에는 부산신학교가 있다. 그런데 인천에서도, 대구에서도, 어느 개교회에서도 우후죽순처럼 신학교를 만들겠다고 총회에 승인 신청을 냈다. 누가, 어떤 신학생들을, 어떤 교육 목표를 갖고, 얼마만큼의 지원으로 가르치려고 하는가?

빌리 그레함 목사, 로버트 슐러 목사, 조용기 목사(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조다윗 목사로 개명을 했다)로 대표되는 가능성과 성장의 신학이 한국 교회를 1970년 대부터 지배했다.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유신독재와 때를 같이 한다.

70,80년 대 한국 교회는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지칠 줄 모르고 전진, 또 전진을 계속했다. 교회 성장 지상주의자들이 한국 교회를 이끌어 왔다. 그들이 나름대로 한국 교회에 공헌을 하긴 했지만, 결국 충분한 준비 없이 신한교를 밀어붙이 듯이 교회를 운영해 왔으며, 이제 그러한 성장론의 한계를 맞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성장주의라는 신화로부터 탈신화화 작업을 벌여야 한다. 큰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듯이 작은 교회도 역시 그것으로 아름답다. 교회는 교회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키가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모두 인간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지금 시급히, 그리고 영속적으로 요청되는 문제는 마구잡이로 신학교를 세워 목사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목사됨,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길이 21세기를 준비하는 길이며, 교회가 진리를 담지한 공동체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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