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회는 성직자의 소득세를 납부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 현대사를 통해 비교적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자세로 대 사회 관계를 설정해 왔던 천주교회가 이번에도 다른 종파에 앞서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를 결의하였다.
이번의 이 결정이 혹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 전체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 이 시기에 천주교회가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를 견인해 가므로써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하기 위한 행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간혹 그러한 행태를 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시선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지만, 아무리 그러한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다고 하더라도 천주교의 이번 결정은 여러 모로 타 종파에게 일종의 도전이요, 경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개신교의 입장에서 볼 때 한창 교회 재산에 대한 세제의 불합리성을 뜯어고치고자 각지에서 공청회를 여는 등, 개신교의 이권을 보호하고자 여론 형성에 부심하고 있는 이 때, 오히려 소득세를 자진해서 납부하자는 신부들의 주장이 나왔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성직자들이 소득세를 납부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납부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종교 안과 밖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다. 개신교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대담이나 질의 응답식으로 여러 가지 의견을 개진한 바있다.
여기서는 새삼스럽게 이러한 주장들을 모두 재피력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우선 반대 의견과 찬성 의견의 요지가 무엇인지를 잠시 살펴보고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를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은 간단하며 단호하다. 그들은 성직자의 행위를 경제적인 성격으로 보지 않는다. 성직은 인간의 종교적인 요구에 대해 봉사하는 일이기 때문에 소득이 있거나 이윤이 발생했을 때 부과되는 세금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세무 관계에 대해 잘 모르기 떄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예컨대 자선단체가 기부받은 재정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주장이 전혀 엉뚱하지는 않다고 본다.
또한 그들은, 성직자가 생활비로 받는 돈은 이미 신자들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납부한 헌금이기 때문에 성직자가 소득세를 납부한다는 것은 이중 납부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성직자의 납세와 교회 재산세에 대한 이들의 생각 저변에는 소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도식이 놓여 있다.
한편 소득세 납부를 주장하는 이들은 성직이라는 것도 역시 인간의 직업 중의 하나이며, 성직자가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의무로 내는 납세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성직이 과연 직업인지, 아닌지를 논한다는 것은 대단히 광범위한 검증이 요구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면보다는 실제적인 면에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할 필요는 있다.
오늘 한국의 성직자들이 자기의 직업을 얼마나 순수한 봉사의 일로 여기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일반 직업을 가진 이들과 마찬가지로 소득과 이윤에 대단히 민감한 상태에서 성직 운운 하여 소득세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과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목사의 자기 의식과 관련 있다. 목사는 분명히 자기의 일을 소명이라 생각하여 투철한 사명감 가운데서 봉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행위를 절대적인 영역 속에 올려 놓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직업은 그것이 정당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소명으로 이해해야 한다. 목사의 일은 목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진리 가운데 서 있기 때문에 거룩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도 진리 가운데 서 있다면 그 일은 거룩한 일이다.
목사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절대적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난미의 메시아적 지평을 여는 데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의 일은 아무런 카리스마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목사의 일은 목사로서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그것은 설교와 성례전 집행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기독교적 신앙을 지도하는 전문가라는 점에 있다.
목사는 그 일에 전문가일 뿐이지 그 외는 일반인과 동일하다. 목사는, 의사가 의사로서의 카리스마를 가진 전문가인 것처럼 또한 변호사가 그러한 것처럼, 전문가일 뿐이다. 즉 기능에서의 차이를 가질 뿐이지 질적인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목사의 소득세 납부는 아주 당연한 일이다.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를 종교에 대한 압박을 생각한다면 옹졸함을 드러낼 뿐이다. 또한 실제적으로 납세로 인하여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대단히 많은 목사들이 갑근세를 내지 않아도 될 작은 생활비를 받고 있으며, 세를 많이 내어야 할 목사들은 그만큼 떼어 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교회 재산세나 성직자 납세가 중요한 이슈로 되었다는 것은 교회가 이제는 물질적으로 풍부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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