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성악설에 근거하여 인간을 이해하고 있
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 노동의 역동성이 경제적 .동기에서만 재고될 수 있다는 원리를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체제였던 구소련 연방이 와해된 현대사를 통해 볼 때, 이러한 자본주의적 인간 이해는 대단히 현실적인 관점이라 하지 않을 수없다그러나 인간의 소유욕이 아무리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런 방향에서만 인간을 규정하게 될 때 그 사회의 미래는 장기적으로 보아 밝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경제적 이윤이 없을지라도. 참여하고 행동하는 인간상을 지향할 때만 건강한 미래가 그려질 수있다. 이런 면에서 비자본주의적 인간 이해를 고전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인간 이해야말로더욱 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이상을추구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이기때문이다. 삶이란 물질적인 것만으로 충만해질 수는 없다. 거기에는 보다창조적인 활동이 있어야만 한다. 이 창조성이란 진정한 의미에서봉사와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경제적 동기만이아니라 정신적이 중기에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에릭프롬이 말한 대로 소유 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결국 존재 지향적 삶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우리는 매우 철저한, 아니 처절한 자본주의적 사회 질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지난날 사회주의 노선을 지켜가던 나라들도 역시 이런 추세에 놓여 있다. 같은 이념을 가졌던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그 이념의 줄이 더 이상 쓸모없는 시가 되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오직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두고 있다.
이러한 길을 선구적으로 앞서 나간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인큰 60.70년 대에 경제동물이라는 조롱을 받았는데, 이제 온 세가 일본을 뒤따라 가는 형국이 되었다.
이러한 세계사적 조류에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슬픈 일이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사회현상들이 온통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는 것은 왠 일일까? 우리 옛말에 "남의 밥그릇이 더 크게 보인다. "고 했는데, 이렇게만 우리가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그로 비굴하고 각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자에 양약사와 한의사 사이에 피 터지는 싸움이 한창이다 이 싸움을 중재하는 보사부 또한 무능력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이음의 발단은 보사부에서 그 동안 관행적으로 행해 오던 약사들의 한약 조제를 법제화하려는 것에 기인한다. 이에 대해 한의사 측에서 결사 반대를 외치면서, 급기야 3천 명의 한의대생들이 한대학 역사상 초유로 유급되기에 이르렀다.
한의사들의 주장은 한의학의 특성상 한의사가 진료 및 조제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양약사가 한약을 조제하려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월권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양약사들은 이미 약학 대학에서 양약만이 아니라 한약도 공부했기 떼문에 자신들이 충분히 한약을 조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의약 분업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면에서, 약사가(약사들은 자신들을 양약사가 아니라 한약과 양약을 모두 조제할 수 있는 약사라고 생각하는데) 한약을 조제하는 것이 한의사가 조제하는 것보다 훨씬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또 한 가지 내용은 한의사들이 조제하는 것보다 악사들이 조제할 때 한약 값의 단가가 저렴해진다는 사실이다. 어느 약사의 말을 들어 보니 한의과 대학이 처음 시작할 때 그 학생들을 가르친 이들이 대개 약학 대학 교수였다고 한다. 즉 기초 약학은 양약이나 한약이나를 불문하고 학문적 전통을 갖고있는 약학 대학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이 양자를 중재하고 있는 보사부는 원칙적인 기준에서라기보다는 그저 적당한 선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데, 보사부가 준비한 안에 대해서 양측이 모두 거부하고 있는 형편이다. 보사부의 시안은, 잘은 모르겠지만, 일 년 이상 한약을 조제해 온 약국에 대해서는 기득권을 인정하고, 근본적으로는 한의사들의 처방에 의해서만 약사들이 조제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려는 것 같다. 이 자리에서 그것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문외한으로서,그리고 제 상자로서 더 이장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약사와한의사의 이견과 팽팽한 대립을 무조건 파렴치한 행동으로 몰아붙이고 싶지도 않다. 이러한 데립과, 이로 인한 사회의 불안 야기는, 앞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자기 모순이며 일종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약사 한의사의 갈등은 정말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결국 자기 밥그릇을 챙기려는싸움에 불과하다. 사실 약사들은 그 동안 다른 월급쟁이들보다많은 소득을 올렸으며, 지금도 역시 수입이 괜찮은 편에 속한다. 약사들이 흡사 의사처럼 거의 모든 병을 진단하고 처방까지 해왔다. 유럽에서는 의사의 처방 없이 약사가 약을 조제하거나 판매할수 없다고 들었다. 소위 '의약 분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수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서 의료보험이 실시되어환자들이 쉽게 병원과 의원에 드나들 수 있게 되어서, 개업한 약사들의 수입이 즐어든 것만은 분명하며, 앞으로 의약 분업이 정착된다면 더욱 그런 현상이 깊어지기 때문에 약사들이 나름대로 위기감을 갖고 있을 만하다. 한의사들도 지금까지 너무나 터무니 없이 비싸게 약을 팔아 왔다. 별로 의학적인 바탕 없이, 흡사 사이비 교주들의 비술처럼약을 조제하였고, 자의이든 타의이든 불치병도 고칠 수 있다고 은연중에 과대선전하여 혹세무민한 이들이 없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경제와 사회 제도 속에서 양약사와 한의사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건에 불과하다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약사와 한의사들이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마당에 어느 집단이라고 그 일을 마다하겠는가?아마 어떤 이들은 체면이 밥 먹여 주는가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체면이 돈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 밥보다 체면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게 인간이라고 여겨진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씀"을 "체면"으로 바꾸어 보는 것은 지나친 불경일까? (1993년,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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