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 본능

어떤 동물들은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데, 이를 가리켜 귀소 본능이라고 한다. 이러한 귀소성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금번 추석을 맞아 남쪽의 백성들 중에 2천5백만 명이나 귀성길을 떠났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반수가 며칠 사이에 고향이나 친지를 찾아 이동하였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짝은 시기에 귀성하게 되는걸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추석이 가져다 주는 향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지용 시인의 잘 알려진 시 「향수」는 다음과 같은 고힝치 서점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약간 길지만 전문을읽어 보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
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음~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돌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설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월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고향을 향한 이러한 향수는 흡사 전쟁과도 같은 귀성길을 무릅쓰게 한다. 인간은 실용성과 편의성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것처럼, 추석의 귀성길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코끝 찡한 감동으로 채우고 있다.
서울이나 그 어떤 대도시에 나가 고생을 하면서도 이러한 명절에 고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진저리나는 도시생활을 장시라도잊게 해준다. 그래서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고향은 언제나 우리가돌아가고 싶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사실은 대단히 많은 현대인이 고향을 떠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 산다는 것은 현대 세속 사회의 특성으로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양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하비 콕스가 지적하다시피 세속도시의 특성 중 하나가 기동성인데, 이 기동성으로 현대인은 고향을 쉽게 떠나서 자기 발전을꾀할 수 있다.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자기가 출생한 곳을 떠나 산다는 것은 장똘뱅이나 벼락 출세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었을 것 이다.
오늘의 사람들은 쉽게 대도시의 정보를 입수할 수아니라 교통 수단의 발달로 지역 간의 차이를 쉼게 극복하고 있다. 시골의 작은 세계에서 대도시의 큰 세계를 향하므로써의 양을 확장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세속 사회에서 끊임없이 장안을 느끼며 산다. 시골에서 자라난 사람이 경쟁 질서로 대도시 안에서 생존의 투쟁을 하게 되면 당연히 불안을럼 안고 살아가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더욱 철저하게 폐쇄적이고 도전적인 인간형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도시화를 통해 나타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향을 찾아야만 한다는 집단적 무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가니까 자기도 당연히 가야 하는 것으로 느끼고, 그속에 참여하므로 일말의 카타르시스 내지 위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에 가서 열심히 노력하여 집 한 칸 마련하고 자가용도 구입했으니 고향에 가서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고향에는 죽마지우들에게 자기의 신분 상승을 확인시키고 싶을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고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은 본인도 의식 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고향을 향하는 그 사람들의 물결에 휩싸이므로써 얻게 되는 만족감이다 매년 수차례 치러지는물결 속에 자신도 동참했다는 그 자족감 때문에 밤을 새워가면서도 고향을 찾아 나서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민족 대이동은 우리의 현실이다. 아마 앞으로 통일이 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도시화가 정착되어 고향의 뿌리를 시골에 두지 않은 세대가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될 때, 그리고 현재 시골에 남아 있는 노인들이 세상을 뜨게 될 때쯤 이 열화같은 귀성 전쟁은 사라지게될 것이다. 그러한 날이 좋은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고향만이 아니라 영원한 고향을기다리며 살아간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긋이 많다고 하셨다 그 곳은 궁극적인 껑명의 세계이며, 부활의 세계이며, 영원의 세계이다. 이러한 영원한 고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그 때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한다.
일 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만 귀성길이 즐겁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장에서 충성스럽게 살았을 때만 그 영원의 세계로 가는 길은 즐거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고항은 철저하게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있다는 말이다
이는 역으로도 같은 의미가 된다 즉 영원한 고향을 간직한 사람만이 현재의 삶을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영적인, 영원한, 쟁명의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날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서 우리를 기다린다고 약속하셨다. (1993,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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