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를 보고



나는 어제 오후 2시부터 티브이와 라디로오 생중계된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를 반쯤은 티브이로 보았고, 반쯤은 라디오로 들었다. 오후 4시에 모 교회의 청년회 헌신예배 설교 때문에 2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주 열심히 보고 들었다. 재미도 좋았다. 평검사들은 검찰 내부에서 어떤 보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검찰의 수사 실무를 맡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신과 출세보다는 여전히 검찰로서의 본질에 충실하려는 마음 자세를 갖춘 분들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은 검찰 전체의 생각보다 훨씬 개혁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이들의 주장에서 그들에 대해 가졌던 나의 생각과 반하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는 그동안 정치권으로부터 받았던 심리적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자괴감이라고 할런지, 아니면 열등감이라고 할런지, 어쨌든지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서 인사권을 자기들이 갖겠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그들의 정신적 피해의식이 숨겨져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발언한 대부분의 검사들의 주장은 정치권 때문에 자기들의 처지가 이런 모양이 되었다는 하소연으로 모아졌다. 노무현 당신도 그런 것 같으니 차제에 검찰의 명실상부한 독립을 위해서 인사권을 확보하겠다는 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 있을까? 군사독재 시절의 대통령들이 검찰을 자기 하인 다루듯이 했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라 일컬어지는 대통령들에게서도 이런 흔적들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치권의 외압에 대해서 검찰들이 얼마나 저항했는가 하는 점이다. 어제도 어느 검사가 토로한 것처럼 고위층 인사의 전화 한 통화에 인사상의 불이익을 볼까봐 전전긍긍하는 검사들이면서 정치권 외압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의 지적에도 있었듯이 어두운 시절에 언론인들은 해직 당하고 투옥 당하면서도 언론 자유를 위해서 투쟁한 역사가 있었지만, 검사들 중에는 검찰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했다는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간혹 심 아무개 검사를 거론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자신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이 떨어졌을 때나 반발하는 것이지 정의로운 검찰상을 위해서 투쟁한 것은 아니다. 이 사회 집단 중에서 검찰만큼 자기들의 조직과 일신상의 안위에 안주하고 있던 집단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생, 노동자, 성직자, 심지어는 교수들까지 해직과 투옥, 심지어는 사형에 처해지던 시기에도 검찰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양심수나 정치범들을 기소하는 실무를 맡았다. 이런 마당에 이번 노 대통령의 검찰 인사에 대해서 평검사들이 나서서 집단적인 항의 표시를 했다는 사실은 평상심에서 나온 정당한 의사 표현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신경증적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하나는 검사들이 보이는 철학(논리성)의 빈곤이다. 우리의 법체계에서 기소권은 검찰에게 독점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경찰도 기소권을 확보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검찰측의 결사적인 반대와 이런 저런 이유로 유보되어 있다. 재판이라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검찰을 어떻게 견제해 나가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나라와 같은 과도기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그들이 수사권과 인사권을 독점하겠다는 발상은 어떤 정당한 법철학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전적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는 이기심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그런 주장이 무조건 불순하다는 것은 아니다. 철학의 빈곤으로 인해서 자신들도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집단적 이기심에 흘러든 게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까지 검찰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에서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더 나아가서 정권의 도구처럼 이용당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본연의 자리를 찾아야 하겠다는 충정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인간과 법과 정치, 정의와 평화, 제도와 의식 같은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이렇듯 몰염치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의 대화에서 몇몇 검사들은 대통령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식으로 자기 주장을 펼쳤다. 그 자리는 대통령에 대한 청문회가 아니라 지금까지 엉망으로 망가진 검찰의 바른 자리를 찾아보자는,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법으로 주어진 대통령의 인사권을 부정하는 검사들의 감정적 대응을 설득시켜보자는 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형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청탁건 같은 아주 지엽적인 사안들을 흡사 죄인 취조하듯이 쏟아낸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대로 이들이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철학의 빈곤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약 어제의 자리에서 대통령이 옷로비 등을 비롯하여 그간에 보였던 검찰의 어두운 면을 꺼집어 냈다면 아마 말싸움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대통령은 적당한 선에서 검사들의 말을 정리하고 대화의 흐름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검사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멸사봉공 한 자신들을 대통령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이 총장에게 학생회 운영을 위해서 자치권을 보장해달라는 수준의 건의사항에 불과했다. 그런 정도의 것이라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건의를 해야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이라는 조직의 근간을 허물어 버릴 정도의 행동을 취했다는 것은 인간과 삶 전체에 대한 이해가 미숙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즉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할 문제인지, 자숙하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개혁하고 건의해 나가야 할 문제인지 구분하지 못한 경솔한 행동이었다는 말이다. (정용섭, 2003년 3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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