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권의 무능과 오만?

5.31 지방선거가 끝났다.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더 정확하게는
모든 진보세력의 완패다.
아니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
국민중심당(?)도 패했으니까,
한나라당만의 승리라고 해야겠다.
한나라당이 일방독주로 지방선거가 끝났다는 건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떠나서
기본적으로 지방자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의식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말들도 많다.
다른 말은 그냥 접어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노 정권의 무능, 오만에 대한 책임추궁이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다.
언젠가 한번 노 대통령에 관한 글을 썼지만,
한번이 아니라 두세 번 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노 대통령이 그렇게 몰매를 맞을 만큼 잘못한 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노 정권의 무능과 오만을 심판하자는 소리를 높였다.
이게 국민들의 일반 정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인 무능인지 나는 모르겠다.
경제가 파탄 난 것도 아니고,
남북관계가 탈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미관계가 크게 훼손된 것도 아닌데,
뭐가 무능하다는 것일까?
FTA가 문제인지,
대추리 사건이 문제인지,
이라크파병이 문제인지,
아니면 개성공단 추진이 문제인지,
강남집값이 문제인지,
뭐가 그렇게 무능한 정권이라는 낙인이 찍힐 일인가?
그리고 노 대통령이 오만하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지 모르겠다.
교만은 국민들의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밀어붙이는 걸 말하는 데
그가 몇 번이나 그런 일을 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학법이 문제였나?
새만금이 문제인가?
또는 핵폐기물 저장창고 부지 선정과정이 문제였나?
한 동네의 어린아이들이 피리소리를 듣고 산속으로 끌려갔다는 동화처럼
지금 우리는 무언가의 소리에 마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국민대다수가
대통령을 향한 근거 없는 미움과 분노로 가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는 소위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메이저 신문의 역할이 크다.
그 문제를 여기서 다시 재론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민중은 경우에 따라서 ‘마녀사냥’의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다는 사실만은
한번 짚어야겠다.
내가 보기에 노 대통령을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 수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북분단 체제이다.
분단체제로 인해서 벌어지는 소위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히 대한민국 민중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때까지는 그래도 참아주었지만
노무현마저 북한과의 상생으로 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던 김용준 선생님마저
조선일보의 대담에 나오셔서
이런 문제를 짚은 걸 보면 남북분단 체제가 일종의 마약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김용준 선생님은 노 정권이 한미 동맹을 허술하게 하고
민족공조에 치우쳤다는 걸 비판하신 것 같다.
함석헌 선생님의 수제자 비슷한 김용준 선생님마저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뉴라이트 계통과 한기총 계열의 기독교 지도자와 신자들의 생각이 어떨는지는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이것도 그들이 사태를 정확하게 못 본 결과이다.
그 이유는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노 대통령을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다른 수렁은 지역주의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인식으로
노 대통령을 원천적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다.
전라도 사람들은 대통령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해주었더니
배신한 사람이 곧 노무현이라는 생각이 크다.
나는 경상도 사람들이나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정치공학적, 사회심리학적 문제에 대해서 언급할 생각이 없다.
다만 우리는 지금 지역감정이라는 마약에 취해 있다는 사실만 지적할 뿐이다.
그 어떤 것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마약중독에 걸렸다는 말이다.
두 가지의 마약이다.
레드 콤플렉스와 지역감정.
아마 노무현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이런 마약에 취한 민중이 만들어놓은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한 것은
웬만하면 이 수렁은 피해갈 법도 한데
노무현은 거기에 자기 몸을 던졌다.
노 대통령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냐, 하고 묻지는 마시라.
왜 없겠나.
나는 다만 그의 중심을 평가할 뿐이다.
본인의 실수도 있고, 상황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중심이 바로 서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으며,
큰 사심 없이 그 길을 잘 가고 있다.
나는 뉴라이트나 보수쪽의 행동에 대해서는 시비걸 생각이 하나도 없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일단 정권을 되 찾아와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진보 쪽의 사람들, 진보 지식인들에게 실망이 크다.
실망이 크다기보다는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은 지난 해방이후 60년동안 보수일색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그 중심축을 가운데로 옮기면서,
그 다음에 좌쪽으로 옮길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한다.
노무현은 가운데까지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끌어내리면 이 나라는 다시 오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민노당이 별로 맥을 못 춘 이번 선거결과가 이에 대한 반증이다.
모두가 노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런 게 별로 보이지 않으니
지금 내 판단력이 완전히 맛이 갔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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