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

지금 이라크 전쟁에 파병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고, 국회에서도 논란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병을 원하는 미국의 요청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공병과 의무병을 파병하겠다고 말한 다음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문제점이 제기되다가 이제 정식으로 국회의결 단계에 이르러서 거의 국론분열 상태에 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한 국가의 정체성에 관련된 중요 사안이 이전처럼 대통령과 소수의 정책 결정 집단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수행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시민적 역량이 성장한 것 같아서 일단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파병 찬성과 반대, 양측의 주장이 나름대로의 자기 논리가 있습니다. 찬성 쪽에서는 파병이 곧 국가 이익에 직결된다고 주장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 문제가 고도의 국가 전략이라고 했으며, 들기기로는 김수환 추기경도 비슷한 발언을 한 것 같습니다. 일단 이번에 파병을 통해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돈독히 다지게 되면 결국 북핵 문제에서도 발언권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반대 쪽에서는 파병은 세계평화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명분을 잃을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를 푸는 데서도 별로 실익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서로의 주장이 첨예하기 때문에, 그리고 고도의 국가 전력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목사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사실은 눈에 보입니다.

우선 이번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우리의 군대를 파병한다는 것에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는 양측이 어느 정도 이해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파병 반대 측이야 이 명분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들고 있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고, 찬성 측도 주로 국가 이익을 강조하는 걸 보면 명분에서는 일단 밀리는 셈입니다. 찬성  측은 국제 질서가 명분보다는 냉정한 국가 이익의 메카니즘에 입각해 있다는 사실을 가장 핵심적인 자기 논리로 삼고 있습니다. 티브이 대담에 나온 어떤 패널은 6.25때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었으니까, 또는 미군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사회 안녕이 무너지니까 당연히 파병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순진한 분들이십니다. 어쨌든지 저도 미국의 이번 이라크 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9.11 테러 이후로 미국 국민들 사이에 펴지고 있는 반테러주의가 이렇듯 또 하나의 테러리즘의 형태로 현상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한 독립 국가를 과거의 행적을 문제 삼아, 또한 테러를 지원했을 것 같다는 심증에 의해서만, 그것도 유엔의 결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기 사찰을 좀더 진행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묵살한 채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서 공격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범죄 행위입니다. 유엔 헌장에 따르면 자국이 군사적 침략을 받을 경우에만 군사적 공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번 경우에 미국은 이라크로부터 군사적인 침략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유엔 헌장을 위반한 것입니다. 만약 이라크가 세계 테러의 배후라는 증거가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 해결 방안은 유엔을 통해서 제시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국제적 테러 행위는 그 내면에 상당히 복잡한 국제관계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전쟁이지만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 손해가 되는가라는 점에서 서로의 의견들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만은 저도 확실하게 언급하기 힘듭니다. 전세계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미국을 이번에 눈 딱 감고 손을 들어주면 나중에 그만한 반대급부가 있을 게 아닌가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국제관계도 역시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다'는 기본적인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우리가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북핵 문제에서 역시 자기들 뜻대로 밀어붙일 것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더구나 거의 모든 나라가 반대하는 이번 전쟁에 파병하게 되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세계로부터 왕따 당할지 모른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어떤 주장이 국익에 맞는 정답일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운명도 그렇지만 국가의 운명도 역시 우리의 계산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타날 때가 더 많습니다. 국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에 큰 재앙으로 다가올지 모릅니다. 미국이 9.11 사건 이후로 때려부순 아프카니스탄이나 지금 공격하고 있는 이라크를 미국 스스로 국익원리에 따라서 전폭적으로 지원했었습니다. 그 불똥이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 국익을 우선한다는 그 국익우선주의가 근본적으로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익주의는 국제 질서에서 냉엄한 현실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이것은 반드시 어떤 전제 안에서 실행되어야 합니다. 즉 다른 나라에 손해가 가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다른 나라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국가 이익만 챙기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파괴적인 행위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게 바로 제국주의의 속성입니다. 로마의 평화를 위해서 주변 식민지의 평화를 깬 로마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의해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어느 나라 사람보다 훨씬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정당하지 않은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더구나 이 전쟁의 진행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이라크 국민들의 희생만 늘어나고 있는 이 엄청난 재앙에 들러리를 서지 않으려면 비록 파병을 통해서 얻어지는 국익이 눈에 보인다고 해도 파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잃으면서까지 국익을 좇는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힘이 강한 나라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구차한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강대국과 의견을 달리 하는 게 떳떳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정책을 결정할 때 어떤 나라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또한 그런 나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이득에 치우치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세계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이런 국제 질서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찾는다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안이한 발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국가의 위기 앞에서 구약의 예언자들은 유대 왕들을 향해서 국제질서의 틈바구니에서 외줄타기를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바벨론과의 정치적 협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그런 언급은 유대 왕들이 이집트의 힘으로 어려운 환경을 해결해보려는, 그러다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었지,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가르침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확실하지도 않은, 그리고 눈앞의 이익만 챙길 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목표로 해서 정책을 세우라는 뜻입니다. 왕이 생각하는 국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국익이라할 정의와 평화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말씀입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국익 운운 하지 말고 대한민국이 세계사에서 기리기리 떳떳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정치의 본질이 아닐까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소 정치철학이 원칙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자기에게 불이익이 온다고 하더라도 대의명분을 추구하는 정치가였다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별로 확실하지도 않은 국익 운운 한다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면에서 미국에 예속적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런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어쩌면 내심으로는 파병하고 싶지 않지만 이렇듯 특수한 한미관계, 남북관계, 북미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처럼 대통령과 시민단체 및 파병 반대 의원들이 이 뜨거운 감자같은 파병 문제를 고도의 테크닉을 발휘해서 해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결국 우여곡절 끝에 파병을 하지 않게 되거나 의료단만 지원하는 정도로 매듭지을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요. 그러나 결국은 원안대로 파병하게 되고, 더욱이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서 월남전 때처럼 전투병까지 파병하게 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그야말로 씻을 수 없는 정책적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떳떳하게 잘 할 것으로 믿습니다. 믿고요!

     <정용섭, 200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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