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심증



건강검진

지난 6월 초 하양에 있는 병원에서 기본적인 건강검진을 받았다. 집사람이 가입해있는 보험공단에서 마흔 살 넘은 가족에게도 2년마다 한번씩 검진을 받게 해주는 덕분에 지금까지 네 다섯 번 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5,6년 전부터 심전도 검사에서 약간 이상 증상이 나왔다. 그래프의 높낮이가 규칙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몇 마디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해주기는 했지만 내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고, 단지 심장을 조심하는 게 좋다는 의미로만 가볍게 받아들였었다. 이번에는 검진 결과 통보서를 좀더 자세하게 읽어보았다. 다른 부분은 정상으로 나왔는데 심전도 검사에는 "협심증, 심근경색 등 허혈성심질환" 의심으로 나왔다. 검진이 있었던 날 담당 의사는 내게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권고하였다. 런닝 머신을 이용해서 심장의 작동을 검사하는 기계가 하양에는 없다면서, 소견서와 함께 대구의 아무개 종합병원을 소개해주었다. 귀찮지만 의사의 말대로 정밀 검사를 받아볼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대구에 나갈 일이 생기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껏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마 앞으로도 나의 게으른 습관을 미루어 짐작컨대 정밀검사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된다.



자가진단

우선 의사들의 소견을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자가 진단이 훨씬 바람직한 게 아닐까 하는 나의 건방진 생각이 너무 강하게 작용한다. 물론 여기 하양에서 간단히 받을 수 있는 진단이라고 한다면 굳이 피할 생각은 없지만 상당히 귀찮은 절차를 밟아야할 것을 생각하니까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더구나 검진이라는 것이 미리 큰 병을 막아보자는 예방적 차원이 강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로 개연성이 없는 약간의 증상만으로도 정밀진단을 받는 쪽으로 소견이 나오는 것 같아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싶지 않다. 이게 주관적 생각이 너무 강한 사람의 한계일지 모르며, 역으로 과학이 안고 있는 한계를 바로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건강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탓인지는 몰라도 건강진단이 지나치게 과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암이나 고혈압을 미리 진단하고 이에 맞는 약을 쓰거나 스스로 조심함으로써 건강의 결정적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는 하지만, 인간이 건강진단을 통해서 이런 병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기는 힘든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의료기술이 인간을 병으로부터 지켜낸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병 문제를 무조건 의학기술에 매달려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의학기술은 인간의 병을 고친 것만큼 인간으로 하여금 병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인간으로 하여금 점점 더 병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아예 병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그 병을 안고 사는 게 그것을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웬만한 병들은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자연치료가 가능하며, 그렇지 못한 병이라고 한다면 의학기술로도 역시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약간 시간을 연장하는 것뿐이지 근본적 해결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게 의학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건강을 지켜나가는 게 훨씬 중요하다. 식사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노동에 혹사당하지 말고, 마음을 밝게 갖는 것이 지나치게 정밀한 검진을 받으며 의학기술에 의존하며 사는 것보다 우선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좋은 점수를 받을 만큼 나 자신의 건강을 지켜온 셈이다. 테니스를 꾸준히 했고, 밥도 잘 먹고, 마음도 편안하게 갖는 편이다. 몸과 마음의 긴장이 별로 없으니까 지금까지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거나 불쾌한 상태에 빠진 적이 거의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감기, 몸살을 앓은 적도 없다. 약간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럴 때는 잠시 낮잠을 자고 나면 다시 상쾌해진다. 이번에 내 검진을 맡은 의사는 심전도 결과가 그래프로 그려진 종이를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테니스를 치고 난 뒤에 가슴이 조여오는 통증과 식은땀이 나면서 호흡이 곤란했던 적이 없습니까?"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약간의 저림 현상 같은 것은 느꼈지만 그렇다고 통증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의사는 의학적인 통계에 의해서 협심증 의심 운운했을 것이고, 나는 나 자신의 자각증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구의 생각이 옳을까? 이런 질문은 사실 말이 안 된다. 의사들은 이 분야의 전문가이고 나는 그야말로 상식의 틀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보아야 한다. 공연히 자기 상식과 자기 경험의 주관성에 빠져 있다가 병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전문가는 전문가 나름대로의 한계를 안고 있다. 자기의 전문 지식을 약간이라도 벗어난 세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종교 전문가인 우리 목사들이 자신의 전문적 지식 때문에 근본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오묘한 방식으로 육체와 정신이 결합되어 있는 인간의 몸을 의학기술에만 완전히 맡겨두고 싶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오십 년의 세월

내가 반드시 정밀검사까지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내 삶의 연륜 때문이다. 살만큼 살았다는 만족감이 그것이다. 사실 이만큼 산 것도 큰 행운에 속한다. 마흔이나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쓸만한 사람 중에서도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억울한 간첩 누명을 쓰고 죽고, 고문을 당하다가 죽고, 지금도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테러와 반테러로 뜻하지 않은 죽음이 일상사가 되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오십이 넘도록 평안하게, 어떤 면에서는 너무 안이하게 세월만 먹고 살아왔다. 이만큼 살았으면 충분히 산 것이고, 더 산다고 하더라도 별로 새로울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알만큼 알았고, 느낄 만큼 느꼈고, 슬플 만큼 슬펐고, 즐거울 만큼 즐거웠다. 이후의 삶은 이런 것들이 반복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는지. 그렇다고 내가 심한 허무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니다. 아내와 두 딸과 재미있게 살고 있으며, 테니스 동우회에서 테니스 실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고, 학문적으로도 어느 정도 업적을 남겼으며 앞으로도 쓰고 싶은 책이나 번역하고 싶은 책도 많다. 이제 막 시작한 교회를 새로운 공동체로 성장시키고 싶은 생각도 크다. 좋은 책도 더 읽고 싶고, 음악도 더 듣고 싶고, 세상 구경도 더 하고 싶다. 사람도 많이 알고 싶고 말이다. 그만큼 이 세상에는 재미있게 살아갈 만한 일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런 모든 즐거움과 일거리를 그만 둔다고 해도 그렇게 서럽지는 않다. 이만큼 살아도 충분할 정도로 오래 살았다는 게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돌연사

좀 엉뚱하지만 이런 생각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데 가능하면 간단히 죽는 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나 잘 하는 일이 아닐까 모르겠다. 80년, 90년 장수하면서 늘 병원 신세를 지고,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5,60년 살더라도 튼튼하게 살다가 돌연사 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 협심증이야말로 돌연사의 가장 지름길이다. 어느 날 자다가 심장이 멈춘다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상의 죽음이다. 내 기억으로는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이 길을 가다가 그렇게 죽었다. 아쉽지만 깨끗한 죽음이다.

어쨌든 이렇게 뭘 좀 아는 척 하거나, 자기 논리에 푹 빠져 있다가 나중에 실제로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발병하면, 정밀진단을 받지 않은 일을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지 미리 걱정을 싸매고 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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