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사태 독법


오늘(3월12일)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193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여기서 나는 이 탄핵 소추안의 부당성을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헌법 전문가도 아닌 내가 말해봤자 별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이미 변호사 단체와 대학의 공법학자들이 지적했기 때문이다. 다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한 마디 첨가한다면 임기가 겨우 한달 밖에 남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앞으로 4년이나 남아 있는 대통령을, 그것도 국민의 60 % 이상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면서까지 탄핵할 이유와 정당성을 나는 도저히 발견할 수 없다. 더구나 소위 '차떼기'로 불법 대선자금을 챙기고, 온갖 불법 행위로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구속되어 있는 마당에 말이다. 만약 그들이 실제로 국민을 생각했다면 대통령의 실정을 총선 이슈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게 순리였다.

거대 야당은 결국 대통령을 일단 식물 인간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성공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공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미 오늘 저녁 설문조사에 따르면 70%의 국민들이 오늘의 사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탄핵소추가 실제로 가결되기 전에는 60%였는데, 실제로 발생한 다음에는 10% 이상의 사람들이 야당의 행위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열린 우리당 지지도 역시 10% 이상 급상승해서 30%에 이른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14%, 민주당은 5%였다(KBS 라디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을 묻던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탄핵소추 가결 반대로 돌아섰다. 내일부터 광화문에서 반대 촛불 집회를 열겠다고 하는데, 아마 총선에 이르기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다음에 나는 이런 모든 정세가 결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복안대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어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서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이유를 오늘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번 탄핵 소추안 가결이 노 대통령에게는 '일석 삼조'의 기회가 될 것이며, 아마 본인 자신이 이를 내다보았을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국민의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것은 못되었지만 이를 빌미로 야당이 탄핵 소추안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가결시켰다는 것은 결국 노무현이 던진 미끼를 야당이 덥석 물은 모양이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로는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 소추안이 결국 최종 실효(實效)를 가지려면 헌법 재판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9명의 위원 중에서 6명이 찬성해야만 이 소추안이 실효되는데, 이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그들이 국회에서 넘어온 그대로 의결할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미 민심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법 전문가들 대부분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길어야 4,5개월 이후에 소추안이 폐기되면 노 대통령은 그대로 대통령 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 사태가 과연 누구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 당연히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일단 민심은 이 탄핵 소추안을 가결한 야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민심은 한 달 이후에 있게 된 총선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야당은 앞으로 노 대통령이 잘 한다거나 못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이미 식물 인간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대통령을 공격해봐야 자기들에게 이득될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기껏해야 30%, 어느 대는 20%대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만약 대통령이 그대로 직을 수행하고 있다면 야당은 이를 총선에서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다. 또한 열린 우리당은 대통령의 30% 지지도라는 약점을 안고 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여건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더구나 경제가 불안해지거나 사회혼란이 야기되더라도 야당은 대통령을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

조금 더 정략적인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분석한다면 이렇다. 현재 우리의 정세는 열린 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극한 대립 가운데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지지는 우리당에게 약간 쏠려 있긴 하지만 한나라당을 완전히 제압할만한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여기서 노무현은 개혁 세력에게 힘을 보태주기 위해서 자기를 비우고 그야말로 '올인'하고 있다.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총선을 개혁과 보수의 양자대결로 몰아간 것이다. 박빙의 승부처에서 10%로의 세력을 새롭게 얻어낼 수 있다면 이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 혼미한 정세를 분명한 구도로 재편함으로써 열린 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의 힘을 결집시키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지난 몇 달 동안 질질 끌고 왔던 '재신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헌법 재판소에서 탄핵 소추안을 파기시킨다면 아무도 이 재신임 문제를 걸고넘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민주당의 행태이다. 이번 탄핵 소추안을 주도적으로 끌고 온 민주당은 이 결과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전라도 사람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을 90% 이상 지지했다. 결정적인 잘못이 없는 한 이들이 노무현을 포기할 까닭이 없다. 더구나 한나라당과의 공조로 이루어진 이번 사태를 전라도 사람들은 도저히 묵과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입지는 전라도에서 사라졌다. 민주당에 있는 그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왜 내다보지 못할까?

한나라당으로서는 크게 믿질 게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 모른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역시 마음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무현 측의 불법자금이 이회창 측에 비해서 10분의 1이 아니라 7분의 1이라는 점에서 분노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번 탄핵 소추안이 일정한 기능을 하기는 할 것 같다. 그러나 무조건 자기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단결시켜서 총선을 치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큰 착각이다. 말뚝만 박아놓아도 한나라 후보가 당선되는 대구, 경북 지역 이외의 지역에서 전멸한다면 이제 한나라당은 자민련 꼴이 나고 말 것이다.

내가 이렇게 노무현의 입장만 두둔하고 야당은 비판만 하는 것 같지만 야당이 해도해도 너무 '못한다'는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 좀 거칠게 표현한 것뿐이다. 노 대통령의 실정을 잘 파고들어서 정책적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무식(?)하게 힘으로 몰아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침몰하는 거함 한나라당은 반공이데올로기에 매달려 있는, 지역감정에 기대고 있는 한 정당으로서만이 아니라 이미 20세기 안에 정리되었어야 할 권위주의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런 역사적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 수밖에.

그러면 노무현은 다 잘했는가? 그건 여기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 양비론이 우리에게 적당한 시야를 갖게 하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노무현의 잘못과 한계는 그것대로 다루어야지 야당의 이런 폭거와 비교하면서 '대통령 너도 잘못했으니, 한발씩 물러나라' 하면 역사의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은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큰 줄기에서는 바른 길을 가고 있는 반면에 야당은 큰 줄기에서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서 사회가 혼란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걱정은 매우 두시라.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하게 개혁세력이, 비록 그들이 모든 점에서 모범적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기대를 걸어봄직한 이들이 앞으로 치고 나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들이 얼마나 국가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솔선해서 일하겠는가 하는 점은 차후에 따져볼 일이고, 현재는 그들에게 일단 힘을 실어주는 게 급선무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흘러가는 역사를 지켜보자.   <정용섭, 200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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