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참사 앞에서

지난 8월7일 새벽 0시55분 쯤 승객 2백31명과 승무원23명 등 2백54명을 태운 대한항공 801편 보잉747 여객기가 서태평양 미국령 괌도 아가냐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공항 남쪽 4.8km 지점의 야산 중턱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기적적으로 이십 여명이 살아났지만, 그 외에는 모두가 사망했다. 지금 까지 신원이 확인된 시신 60구 정도만 한국으로 귀환되었고, 나머지는 정밀한 유전자 감식을 위해 아직 괌에 남아 있다는 보도다.
벌써 두 주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악천후, 괌 공항의 관제시설의 고장, 착륙유도를 위한 활공각 유도장치의 고장, 비행기의 정비 불량, 조정사의 실수 등 여러 이유들이 언급되고 있지만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공항에 착륙준비를 하던 비행기가 너무 일찍 고도를 낮추므로 인해서 랜딩기어(앞바퀴)가 야산이 걸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비행기의 중심이 무너지면서 지면과 충돌하게 되어 세 동강이가 나 버렸다는 사실이다. 현재 블랙박스를 인수해간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의 공식적인 판독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비행기 사고 때 마다 그 참담함 때문에 우리가 진저리를 치지만 사고율만으로 따지자면 자동차 보다 훨씬 안전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한해에 일만 여명이 죽는 자동차 사고에 비하면 비행기 사고로 인한 사고는 오히려 미미하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와 달리 비행기 사고로 인해 받는 충격이 심한 이유는 사고 건수에 비해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데 있다. 하늘을 날기 때문에 유사시에 어쩔 도리가 없다는 비행기의 특성상 비행기 사고는 났다 하면 십중팔구는 거의 모두가 죽는다.
비행의 안전을 높이기 위해서 항공기 제작사와 항공사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설치해서 운용하고 있다. 특히 최신의 항공기들은 대개가 컴퓨터로 자동운항 되기 때문에 사고가 날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혹 7,80년대에 테러범들에 의해 자행되는 비행기 납치 사건이 있긴 했지만 세계정치의 화해 분위기와 항공사의 검색수준의 향상 등으로 인해 그것도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
이번에 추락한 보잉기에는 수십만 개의 부품들이 초밀도의 역학구조에 의해 설계되고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화성의 흙을 집어올 수 있을 정도의 고도화된 기술로 제작된 작품이 바로 이런 보잉기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인류의 모든 정신과 꿈이 쌓아온 기술이 담겨져 있다. 엄청난 능력이다. 그런대 현대 공학기술의 집약으로 일컬어지는 거대 항공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차 하는 순간에 박살날 수 있다는 현실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우리의 질문은 이렇다. “인간기술은 무엇인가? 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하이덱거는 <기술에 대한 질문, Die Frage nach der Technik>이라는 글에서 기술은 ‘탈은폐’의 한 방식, 즉 진리의 영역이라고 했다. 숨겨져 있는 것을 드러내게 하는 방식이라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기술은 인간의 삶을 어둠의 세계로 부터 밝음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기능을 감당했다. 우리가 고대의 세계상을 오늘의 세계상과 비교해 보면 분명하다. 농사짓는 기술로 부터, 양치는 기술, 강을 막아 수력발전소를 만드는 일, 급기야 자동차와 핵발전소, 전자기술, 그리고 의료기술 등 많은 기술이 인간 삶을 밝은 세계로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하이덱거에 의하면 현대기술은 도발적 요청이라는 의미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현대기술은 자연에 숨겨져 있는 에너지를 채굴하고 캐낸 것을 변형시키고, 변형된 것을 저장하고, 저장한 것을 다시 분배하고, 분배된 것을 다시 전환해 사용함으로써 이뤄진다는 점에서 도발적 요청인데, 결국 기술은 본질적으로 탈은폐를 위하여 또 다른 은폐의 형식을 갖게 되며, 그 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끝을 모르는 탈은폐의 길을 걷게 된다.
현대는 이런 기술집약적 특징을 갖는 시대다. 도시에 살건, 시골에 살건 누구나 할 것 없이 기술 메커니즘에 묶여서 살아간다.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인간기술의 꽃이다. 이런 기술이 바로 인간을 구원할 것으로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확신하고 있다. 탈은폐의 속성인 기술만이 인간을 어둠으로 부터 구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다.
과연 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조금만 더 냉철하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기술정보 사회가 농경사회 보다 훨씬 구원에 가깝다는 보장도 없다. 컴퓨터 공학기술자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사꾼 보다 구원에 접근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이번 항공기 추락 사고만 해도 그렇다. 수치상으로 볼 때 거의 수백 만분의 일에 불과한 항공기 사고율이지만 실제로는 이런 사고가 늘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더구나 이런 기술의 한계 내지 모순 앞에 인간이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더 큰 위기이다. 아무리 개인이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는 기술의 사고가 우리 앞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인간이 보다 빨리 움직이기 위해서 자동차와 비행기를 발명케 된 역사는 기껏 해봐야 백년 남짓하다. 지난 백 년 동안 인간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으며, 그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인간이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하게 발전하고 있다. 과연 이 길이 바람직한 것인지,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 아니면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번 대한항공기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각기 온 천하 보다 귀한 생명인, 이백여 분들의 명복을 중심으로 바란다. <1997.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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