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이런 저런 많은 말을 들으면서도 삼성이 기를 쓰고 승용차 사업에 뛰어든 걸 보면 그게 돈벌이가 되는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자동차 생산으로만 말하자면 우리는 세계에서도 손가락 안에 낄 수 있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자료에 의하면 작년 한 해 동안 2백85만대를 만들어 1백21만대를 수출했으며, 이로써 국가 총 수출액의 8%에 해당하는 1백4억 달러의 외화획득을 올렸다고 한다. 더구나 현대, 대우, 기아, 쌍용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1차 2차 부품 공장의 노동자들을 합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이는 자동차 산업이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를 감당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자동차 산업은 초창기에 주로 수출에 의존했다. 현대에서 만든 ‘포니’는 한 때 미국에서 서민들을 위한 승용차로 인기를 끌었다. 한국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포니’는 알았을 정도니까 나름대로 국위선양에도 한몫을 담당한 셈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동남아나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국 차가 많이 팔리고 있다.
초창기와는 달리 이제는 국내 소비도 상당하다. 특히 ‘88올림픽’ 이후로 소득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의식이 세계화(?)되면서 자동차 국내소비는 상승 곡선을 그었다. 자동차 회사들이 펼치는 교묘한 마케팅 작전에 휘말려 국민들은 너도 나도 승용차를 구입했다. 차가 많이 팔리면 정부는 정부대로 국고가 늘어나니까 옆에서 적극적으로 부추겼다. 금년 7월15일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5번째로 자동차 1천만 시대를 돌파한 날이었다고 한다. 이는 인구 4.6명당(1.5가구당) 자동차 한대가 보급되었다는 걸 뜻한다. 이십년 전만 하더라도 자가용을 가진 집은 주로 상류층이었는데 지금은 중산층이 아니라 그 아래층이라 하더라도 자가용 한 대 쯤은 갖고 산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자가용의 보편화는 지난날처럼 자가용을 자기 신분의 과시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위화감을 깨는데 일조를 한 게 아닌가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7,80%가 스스로 중산층으로 생각하고 있다는데, 아마 자기 집이 없더라도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고 자가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이는 자가용이라는 환상이 일으키고 있는 일종의 착각, 착시 현상이다. 다른 문화적인 삶은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고 자가용만 있으면 자기의 신분이 어느 정도 상승되었다고 생각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결과이다.
우리나라처럼 자가용이 신분을 가리키는 나라도 없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자기의 격에 넘치는 차를 타고 다니려고 애를 쓴다. 호텔이나 정부 청사 같은 데서도 방문객이 타고 온 자가용의 크기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자가용 안에 앉아 있게 되면 일단 자기 공간이 완벽하게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정신적인 안정감을 갖게 되며, 한편으로는 외부와의 단절감 속에 빠지게 된다. 이런 단절감은 외부 세계를, 특히 행인들을 방해거리로 생각하게 된다. 평소에 침착하고 온순하던 사람도 운전대를 잡으면 난폭해지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가용의 바깥 세계를 적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걸어갈 때는 먼저 가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지만 자동차를 타게 되면 굉장히 쫓기듯이 운전을 하게 된다. 대개의 자동차 사고는 이런 잘못된 운전습관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 문제는 원래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자동차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걸어서 열 시간 걸리는 거리를 단 2,30분 만에 갈 수 있다는 데 그 매력에 때문에, 운전석에 앉게 되면 너두나두 속도를 내게 된다.
현대를 살면서 자동차를 타지 않고 견뎌낼 수 없다. 자가용 없이 사회활동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자가용은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필요악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지, 아니면 재택근무로 충분하다면 모를까, 모든 사람에게 필수품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자가용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도시 도시마다 매연에 찌들고 이로 인한 호흡기 질병이 늘어나며, 학자들이 지구 온난화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빨리 움직여야만 하는 현대인은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타고 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도로율이 턱 없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자가용 중심으로 교통대책을 세워왔다는 점에서 정책적인 근본 문제가 있지만, 이미 엎지르진 물이다. 이제라도 대안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그 대안이라는 게 별 뾰족한 것은 아니고 대중교통의 활성화뿐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구조의 개혁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해결될 수 없다.
더 중요한 부분은 명확한 의식의 전환이다. 자가용은 자기 신분 상승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며, 반드시 있어야 할 그 무엇도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가용은 약간의 편리성을 위해서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 삶의 내용이 파괴되는 정도에 까지 자가용을 무조건 굴려야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자가용만이 구원론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죽은 다이애나가 탔던 세계 최고의 승용차 벤츠(S-280 모델)도 역시 술 먹고 과속하게 되면 끔찍한 참사를 면치 못하게 된다. 필요한 사람은 자가용을 굴리고, 필요 없거나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은 굴리지 않고 살아도 괜찮은 사회가 와야겠다. 자가용은 우리를 편리하게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죽게도 만든다. <1997.9.14.>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