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발목 잡는 사람들!

지난 6월말, 신학강연 건으로 서울에 갔다가 옛날 신학대학교 친구 몇을 만났다. 모두들 서울과 인근에서 중대형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들이었다. 흉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정치 부분에서는 서로가 매우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게 약간 씁쓸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형편없이 깎아내리고, 이명박 서울시장을 한없이 추켜세웠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이 무얼 그리 잘못했냐?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봐라. 내 질문에 그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했다. 행정수도, 한미동맹, 공공기관 이전, 실업자 문제, 경제문제, 사회갈등, 등등.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8월15일, 남덕교회 청년회 수련회 특강 건으로 팔공산 산자락에 있는 전원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 장로 및 몇몇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또 다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감이지 대통령 감이 아니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대신 박근혜 대표의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으로 발언했다. 그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거의 그런 범주에 속했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중에 대구의 아무개 국립대학교 공과대학장이라고 하는 아무개 장로의 발언이 압권이었다. 그는 탈북자 출신 교수가 장로회 모임에 와서 강연한 내용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달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공개처형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국립대학교의 학장이라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름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데, 탈북자의 편향된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인 것처럼 믿는다는 게 좀 우스웠다. 어떤 점에서는 지식인이나 동네 미장원의 미용사나 자기의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에 관해서는 거의 똑같은 수준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8월 중순 어느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있었던 해프닝을 소개한다. 청와대 및 여당 쪽 패널과 야당 쪽 패널 사이의 토론이었다. 야당 쪽 패널로 나온 연세대학교 사회학부(?) 아무개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을 이렇게 비판했다. 대통령은 국민들보다 한 발자국만 앞서 가야하는데, 노 대통령은 열 발자국 앞서 가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방향으로만 앞서 가도 괜찮을 텐데, 노 대통령은 이쪽으로 열 발자국 갔다가 거꾸로 열 발자국 가기 때문에 국민들이 혼란스럽게 느낀다. 한미동맹 문제에서 노 대통령은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정작 미국에 가서는 ‘미국이 아니었으며 저는 포로수용소에 가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식으로 오락가락하는 데서 국민들은 헷갈린다. 일본 문제에서도 처음에서는 과거 문제를 잊자고 하더라도, 요즘엔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왜 이렇게 오락가락 하냐? 마주 앉아 있던 조기숙 청와대 홍보 수석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국민들이 헷갈려 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 대학 교수가 그렇다는 건 이상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문제에서도 한 번도 오락가락한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해서 한국이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쪽으로 일관되게 나가고 있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 일본을 향해서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으로 과거 문제를 잊고 앞으로 나가자고 발언한 것은 당연하지 않지 않느냐? 선의의 경쟁 대상인 일본을 향해서 그런 말을 한 건 일종의 외교적 전술, 전략이 아니냐? 그런데 그 후에 일본이 신사참배나, 역사왜곡 교과서, 독도 문제 등,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따끔하게 질책한 것이다. 조 수석의 발언 사이에 끼어든 연세대학교 교수는 ‘일본 문제는 그렇다 치고, 미국의 관계는 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고 질문했다. 그러자 조 수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서 미국 문제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가지만 말할 테니까 다른 건 똑같이 대입해서 학습하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구의 모 국립대학교 학장도 그렇고, 티브이 패널로 나온 연세대학교 교수 같은 전문가들이 역사를 동네 구멍가게 주인의 수준과 비슷하게 본다는 게 말이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으려는 데에 힘을 쓰다가 결국 자신의 학문적 통찰력을 송두리 채 상실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지식인들이 신문에 칼럼을 쓰고, 이런 지식인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근거해서 신문 논설위원들이 사설을 쓴다면, 그걸 읽는 국민들의 판단이 어떠하리라는 건 불문가지이다. 거기다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정치인들은 이런 정보를 침소봉대하고, 국민들은 또한 그런 정치인들의 논리에 부화뇌동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원성을 사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이 무엇일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아직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칭찬받을 일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걸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적시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건 대통령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니까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이제 명실상부하게 탈권위주의 시대가 열린 게 아닐까? 정경유착, 정언유착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건 말해도 나는 대통령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대통령은 이제 결코 권위적인 체제로, 정경유착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 두자. 내가 지금 청와대 홍보를 맡은 사람도 아니니까.
대개의 사람들이 노 대통령은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가 망가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런 주장만큼 큰 오해도 없다. 이미 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그런 조짐들이 팽배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무분별하게 발행된 신용카드 문제, 주식시장의 침체, 북핵과 미국의 공화당 집권 등으로 인해서 국내외 환경이 열악했다.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길게 하는 건 무의미할지 모르겠다.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몇 가지만 짚어보자. 강남 집값의 폭등이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일까? 무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통령이니까 물론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는 한국 전체 사회의 구조적인 것이다. 부동산 정책을 기발하게 추진한다거나 세제정책, 교육정책을 기발하게 추진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모두가 자기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올려본 경험이 많은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결국 국민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의식 전환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실업자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실업자는 어느 사회나 있다. 통계 수치만 본다면 다른 OECD 나라에 비해서 우리의 실업 상황은 별로 심각하지 않다. 우리의 경우에는 주로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처럼 80% 이상이 대학교를 나온 실정에 이에 준하는 일자리를 어느 수로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중소기업에서는 노동인력이 부족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산업연수 명목으로 불러들여야 할 판인데,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 나라가 우리의 모습이다. 이런 문제가 노 대통령의 책임일까?
더 근본적으로 볼 때 우리는 지금 나름으로 잘 살고 있다. 여전히 수출이 잘 되고, 슈퍼마켓에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청소년들도 핸드폰과 엠피 쓰리를 갖고 다니며, 어린이들이 두 세군데 학원을 다닌다. 여기서 우리가 무얼 더 원하는가? 물론 노숙자도 있고, 극빈자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한 모든 나라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수출은 잘 되지만 내수가 안 되는 게 문제라는 논리가 내게는 정당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가정이 건강하려면 돈을 많이 벌고, 가능한 대로 절약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국가 경제는 한 가정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원리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수출도 잘 되고 내수도 늘어나서 모든 경기가 활성화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국가 발전인지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내 영역이 아니니까 접어두자.
어떤 사람은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30% 지지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오늘 한국이라는 사회의 지형을 놓고 볼 때 말이다. 한국사회의 지역구도는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이 안정된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정치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사실 정치에는 늘 양면성이 있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일편단심 한나라당과 박근혜에 쏠려 있는 경상도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택도 없다!” 여전히 김대중 전대통령을 중심으로 쉽게 움직이는 전라도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하겠는가? 만약 지금의 민주당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그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우익에 속한 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진보에 속한 사람들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라크 파병은 진보의 지지를 잃는 것이며, 북한과의 민족 공조 정책은 보수의 지지를 잃는 것이다. 거의 보수적인 노선에 치우쳐 있는 기독교 인사들도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그는 김영삼이나 김대중처럼 지역의 절대적인 지지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상태에서도 30% 지지면 괜찮은 점수가 아닐까?
당신은 ‘노빠’인가? 당신은 노 대통령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나는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둘 뿐이지 그가 절대적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큰 틀에서 바른 길을 가고 있으면, 비록 구체적인 사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좀 참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대통령에게서 성직자의 모습을 찾으려거나 교수의 모습, 또는 혁명가의 모습을 찾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어제(8월25일) 밤 KBS 티브이에서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10시-11시40분까지 방영되었다. 어제가 바로 5년 임기에서 딱 반으로 접어든 때라고 한다. 원래 나는 비판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지만, 어제 노 대통령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의 모든 정책이 무조건 옳다는 게 아니라 옳은 것을 향해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 “너무 순진한 것 같애.”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염려는 지우셔도 될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도 큰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다. 사심 없이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의 정책이 실패할 수도 있고,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며, 만약 그의 정책이 실패했다면 다음 대선 때 정권을 바꾸면 된다.
그래도 비판이 필요한 거 아닌가? 옳은 말이다. 언론도 비판해야 하고, 야당도 비판해야하고, 시민단체도 비판해야하고, 특히 종교인들도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한다. 다만 그 비판이 실증적으로 정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대통령 못해 먹겠어요.’ 같은 말은 놓고 대통령 자격이 없다느니, 하고 신문이 대서특필 한다거나, 설문조사에서 경제 살리기가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해서 대통령이 왜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지 않고 정치적인 발언만 하는가, 하고 야당이 국민들을 선동하는 건 실증적인 비판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나? 중증이 들었던 환자가 그 위기를 넘겼으며, 이제 천천히 기초 체력을 확보하면 됐지, 당장 심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닦달할 수 있나?

오늘, 내가 공연히 정치적인 문제로 흥분한 것 같다. 여전히 세상 일에 대한 관심이 쓸데 없이 많은 것 같다. 어쨌거나 이렇게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을 때, 그가 결정적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예언자로서 종교 지도자들이 힘을 보태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히려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을 때가 바로 우리가 나서야 할 순간은 아닐는지. 그런 게 싫다면 지금은 침묵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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