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대의 위기

우리는 지금 온통 정보홍수 가운데 휩싸여있다. 라디오, 신문, 텔레비전, 전화, 팩스, 컴퓨터 같은 것들이 모두 정보매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집어 들고 국내외 뉴스를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텔레비전 심야 뉴스를 들으면서 하루를 끝낸다. 만약 일주일만이라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멀리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말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보의 특징은 우선 개방성에 있다. 정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가정주보들도 쉽게 정보를 접하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는 물론이고, 요즘은 주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산업이 많이 발달해 있다. 텔레비전 아침 방송만 해도 그렇다. 주부들이 집안 정리를 대충 해놓고 텔레비전 스위치를 켜기만 하면 온갖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개개인의 인생살이, 살림살이 장만, 부동산 정보, 미용, 다이어트, 여가이용방법 등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컴퓨터 통신은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점에 관계없이 작동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성인들과 똑같은 정보가 흘러들어가게 된다.
정보의 개방성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주장은 일단 일리가 있다. 논문들 쓰는 학자들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일부러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에 가지 않고 인터넷을 통하기만 하면 된다. 전 세계의 도서관이나 연구소에 연결되어 있는 인터넷은 연구 활동에 들이는 노력을 훨씬 감소시켰다. 이런 통신망만 갖추고 있으면 안방에 앉아서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고 필요한 물건을 주문할 수도 있으며, 여행신청도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정보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점점 편리하게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보기술에 의존하는 사회는 좋은 점만이 아니라 몇 가지 문제점을 동시에 드러낼 것이다. 기술정보 사회에 살게 될 인간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정보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정보가치에 대한 혼란이다. 특히 나쁜 정보가 오히려 좋은 정보를 억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텔레비전의 광고도 역시 이런 정보의 일종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 광고의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광고효과에 강요된 행위를 무의식중에 하게 된다. 텔레비전에서 광고한 상품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생각이다. 텔레비전이야 그런대로 공용성이라는 점에 어느 정도 걸러지게 되겠지만 컴퓨터 통신은 거의 맹목적으로 불량한 정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을 공격한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듯이 인터넷은 청소년들을 상대로 포르노, 폭력물장사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세계관이 정립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이런 정보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정보 보다 더 중요한 삶 자체에 대한 생각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현대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정보의 노예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가 아니라 주인의 의지에 의존적으로 살아가는 이를 노예라고 하는 것처럼, 현대인은 정보에 의존적으로 살아감으로써 자기 주체성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생각 없이 살아가게 된다. 정보는 대개 기계적으로 기능하는데, 이런 기능에 익숙해 진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그런 기계로 생각하고 기계적으로 반응한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이런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진단한 바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아니라 대물관계로 변화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단순히 이용할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당연히 있어야할 인간존중, 인간이해가 실종되고 만다. 인간관계가 허물어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풍요로운 사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실용적인 사회가 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더 이상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어떤 시대라 하더라도 핵심은 결국 인간이다. 인간의 인간됨, 인간의 행복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문화, 역사 활동이 추구해야 할 핵심주제다. 그런대 오늘 정보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겉으로는 물론 화려하게 인간을 주제로 삼는 것 같지만 거기서 다루어지는 인간은 대단히 추상적일 뿐이다. 여기에 바로 오늘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위기가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정보가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매스컴이 열을 올려 홍보하고 있는 NBA의 마이클 조던이나 로드맨, 세계 골프계의 영웅 타이거 우즈, 미국이나 일본의 프로야구 소식 같은 것을 몰라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이웃사람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하늘과 바람과 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고 사는 것이다. 그런대 오늘 우리 젊은이들은 세계 곳곳의 연예계, 스포츠계 소식을 알아야만 살맛이 나는 것처럼 생각한다.
옛날에는 정보다운 정보가 없었다. 앞마을 갑돌이와 뒷마을 갑순이가 짝사랑을 하다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 임금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 혹은 강원도에서 홍수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나 들으면서 살았다. 그래도 열심히 농사짓고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그들이 오늘 캄보디아의 내란소식을 상세히 알고 지내는, 혹은 영국 챨스 황태자의 애인이 누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지내는 우리 보다 불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반대다. 정보시대의 위기는 삶의 추상화, 인간의 추상화에 있다. <199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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