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정치는 어떻게 된 게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을까?
새해 벽두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을
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한 것 때문에 말들이 많다.
이런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는 원래 야당에서 말들이 말은 법인데,
이번에는 오히려 여당에서 더 큰 소리를 낸다.
금년 한해도 국민들이 조용하게 지내기는 글렀나보다.
이런 현상은 어떤 한 두 사람이 잘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 국민성과 연관된 건 아닐까 모르겠다.
늘 큰 소리내고,
주먹 휘두르고,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우리네 정서가 바로 이런 현상을 양산하는 건 아닐까.

여당의 젊은 의원들, 소위 '386'으로 불리는 그런 젊은 의원들이
유시민을 그렇게 반대하는 이유는 무얼까?
내가 뉴스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별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그냥 주는 것 없이 얄미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가장 결정적인 것 같다.
"싸가지 없다"는 막말도 나오는 형편인 걸 보면
유시민을 향한 그들의 적대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또는 얼마나 감정적인지 알만 하다.
나는 유시민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지난 총선 때 기독교 쪽에서 그를 비판했다는 말은 들었다.
유시민이 기독교를 나쁘게 말했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공식적으로 사과했을 것이다.
좀 모양이 웃긴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 사람들인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일개 국회의원이 말꼬리를 잡아서 트집을 잡는가?
유시민이 기독교를 이유 없이 깎아내렸다면
그 당시에 한번 충고하고 말 일이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끄집어 낼 건 무어란 말인가.
참으로 딱한 일이다.
나는 유시민의 종교도 모르고
학력도 모르고
무슨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
다만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당선을 위해서 온몸을 던졌다는 사실과
그동안 티브이 시사토론회에 패널로 나와서
주로 노무현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만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그가 복지부 장관으로 어떤 역량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장관 내정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도 말할 입장이 아니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일개 장관 임명을 두고 당이 쪼개질 것처럼
저렇게 난리를 치는 모습이다.
유시민이 장관으로서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있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실증은 없는 것 같다.
비록 그런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끝나야지
그걸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건 오버하는 게 아닐까 모르겠다.
노파심으로 다시 한 번 더 말해야겠다.
나는 유시민과 그를 극한적으로 반대하는 이들 사이의 놓여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누가 옳다 그르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사태에 놓인 어떤 객관적 사실보다는
그들이 보이는 태도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중이다.
그 태도가 별로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다는 말이다.

사실 그들은 유시민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노무현을 향해서 분노하는 것 같다.
그들이 왜 분노하는가?
이해는 간다.
그들이 누군가?
진보의식이 투철한 '386' 아닌가?
(이번 파문에 반드시 386만 개입된 건 아니지만
그들이 주동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을 대표로 볼 수 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들도 순수한 386이 아니라 486도 있다.)
그들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주역들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통해서 진보정치를 이뤄보려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들은 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으며,
노 대통령이 제안한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결사반대했다.
시간이 갈수록 노무현과 386의 관계는 싸늘해져갔다.
밑바탕에 깔린 이런 분노가 유시민 사태로 폭발한 게 아닐까?

이들은 순수하기는 하지만 참으로 어리석다.
노무현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정치를 풀어 가는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직을 수행할 때
대한민국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
남북관계, 한미관계, 카드 남발로 인한 국가 경제의 위기,
연이은 대선 실패에 의한 하나라당의 실망과 경상도 민심 등등,
지역배경이 없는 대통령으로 그는 망망대해의 작은 배와 같았다.
지난 3년 동안 그가 시도한 정책은
내가 보기에는 최선이었다.
집권 초기 한나라당에 의해 제시된 김대중 정권의 남북경협에 대한 특검 수용도 최선이고,
대선자금 수사도 최선이고,
국군의 이라크 파병도 최선이다.
진보 인사들에 의해서 비난받은 이라크 파병이 왜 최선인지
내가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내 주변에 그곳에 파병했다가 돌아온 부사관 한 분이 있다.
그분의 설명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국군의 인기가 짱이었다고 한다.
아직 희생된 국군이 한 사람도 없다는 걸 주시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은 꿩 먹고 알 먹는 장사였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 두자).
한나라당과의 연정도 내가 보기에는 최선이다.
연정은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전제한다.
그런 방식으로 경상도에서도 열린당 의원이 나오고
전라도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정 제안은 단지 정치역학의 차원만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철학의 소산이다.
하나라당도 역시 현실적인 정치세력이고,
그들과 더불어 상생하는 정치를 해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주장이다.
노무현의 인사는 어땠을까?
이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게 없으니까 할 말이 별로 없지만
크게 잘못된 건 없지 않을까?
강금실 장관 임명할 때 안팎으로 반대가 많았지만
그는 지금 서울시장 후보감으로 1위를 달린다.

당신 눈에는 왜 노무현의 잘못이 안 보이냐, 하고 따지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 중에는 노무현이 집권하는 한
기독교가 수난 받는다고까지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내 말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만 보아야지
도덕군자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철학자가 아니라 현실 정치인일 뿐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그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걸
나는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유시민 문제를 한나라당이 들고 일어났다면
나는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러나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칭하는 열린당의 386이
생트집을 부리듯이 난리를 피운다는 건 우습게 보인다.
보수와 진보로 나눈다면 나는 진보이긴 하지만
진보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그렇게 신뢰만 가는 건 아니다.
그들은 너무 조급하다.
아군과 적을 지나치게 선명하게 구분한다.
사실 한 인간 안에 진보와 보수가 겹쳐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노무현이 선명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발끈했으며,
그런 기분을 별로 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늘 싸워서 승부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걸까?
진보는 순식간에 수구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극과 극은 통하듯이 말이다.
오늘 기독교 인사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어디 한 둘인가.

오늘 내 말이 급하게 가느라 두서가 없었다.
많은 부분에서 비약도 있었다.
대충 넘어가는 식으로 읽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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