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럽 신학의 대가 두 사람을 든다면 조직신학자인 칼바르트와 신약학자인 루돌프 불트만이라 할 수 있다. 바르트는 소위 말씀의 신학을 제창하므로써 차유주의 신학을 종교개혁적 신학으로 돌려 놓았으며, 불트만은 실존주의 신학이라는 독특한 해석학적 방법론을 제기하므로써 기독교 신학의 지평을역사적 차원으로 확대한 공로가 크다 하겠다.
특히 불트만은 성경의 탈신화화 논쟁을 불러일으켜 일대 혼란을 야기시키므로써 한 때 기독교를 파괴시키려 한 학자로 매도당하기도 하였다.
사실상 그가 제기한 탈신화화 논쟁은 그렇게 복잡한 문제도, 그렇게 위험한 문제도 아니었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쓰여진 그 시대가 어떤 세계 이해와 우주 이해를 갖고 있었는지 충분히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성경 시대는 분명히 고대가 항상 그랬듯이 신화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신화적이라는 말의 뜻은 현실과 초현실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흡사 어린아이들에게는 동화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구분되지 않는 것과 같다.
성경이 신화적 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성경에 초현실을 다루는 신화적 내용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건 아주 당연하다. 불트만은 이런 신화를 오늘의 잣대로 읽지 말고 그 당시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신화화 된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신화를 탈신화화 해야 하는데, 이는 곧 신화를 현실로서 읽는 게 아니라 신화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성경의 신화가 황당하다거나 무가치하다거나, 혹은 포기되어져야 한다는 건 아니다. 성경의 사건들을 신화와 현실로 구분해서, 신화는 신화로, 현실은 현실로 읽으면 된다. 이게 바로 불트만의 탈신화화 논쟁의 핵심인데, 이런 그의 시도는 근본적으로 성경을 바르게 접근하려는 한 지성적 노력이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신화는 비록 비현실적으로 구성된 이야기지만 고대인들이 나름대로 경험한 세계와 우주 이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령이 현실처럼 생각되던 시대, 그리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온갖 종류의 초현실적인 신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상상 속에는 신과 천사들, 정령과 악령, 귀신들이 활동했다. 가장 전형적인 신화의 특징은 그 주인공의 탁월한 능력이 초월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말한 초능력의 슈퍼맨이 등장하였다.
그 당시 자연의 위력 앞에서 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현실적 한계를, 나름대로 이런 초능력의 대상을 통해서 해결해 보려는 고대인들의 기대가 투사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신화는 인간의 우주 물리학적 지식이 짧았을 때 형성되긴 했지만, 사실은 지금도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끊임없이 슈퍼맨을 탄생시키므로써 자기를 그 대상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심리적 현상들은 현대인들에게도 보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청소년들에게 유명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은 일종의 신화다. 중학교 학생들이 인기 탤런트들의 사진을 수집해서 자기방에 붙여 놓거나 지갑에 넣고 다니는 행위는 그 대상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에 근거한다.
그들에게 서태지나 김건모 같은 가수들은 슈퍼맨이다. 그들에게는 이 가수들에 얽힌 온갖 종류의 이야기들, 스캔들, 일상사가 신비롭게 비쳐진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텔레비전이나 영화 제작자들이 돈을 벌어들인다.
그런데 어린 청소년들이 인기 연예인들을 신화적으로 생각한다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나이가 든 사람들조차 여전히 그런 정서에 매달려 있다는 게 문제다. 연예계 기사를 다룬 주간지가 불티나게 팔리는 걸 보면 청소년 같은 어른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어른들은 일반적으로 정치,경제적 신화를 만든다. 정치적 스타, 경제계의 스타를 탄생시키므로써 자신들의 무력증을 해소해보려고 한다. 우리의 많은 기성세대가 정치에 민감하게 행동하는 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정치적 신화에 목말라 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씨는 우리에게 정치적 신화였다. 김영삼 씨는 영남, 특히 경남과 부산 지역에서, 김대중 씨는 전라도 지역에서, 김종필 씨는 충청도 지역에서 그렇게 기능했다.
이들에게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그 지역에서 끄떡하지 않는 슈퍼맨들이다. 어떤 정치적 당위성도, 어떤 민족사적 사명감도, 어떤 종교적 요청도 그들의 신화적 권위는 깨뜨릴 수 없었다. 이런 신화적 현상을 담보로 해서 이들은 참된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들의 입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이제 이들의 신화는 깨어져야 하며, 다행스럽게 이미 그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기해 정치권 전체에 대한 신화는 말끔히 사라져야 한다. 아울러 정치와 결탁해서 경제적 신화를 만들어 온 일부 재벌들의 신화도 사라져야 한다. 이런 작업은 신화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그들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어 있는 민중들에 의해서 가능하다.
탈신화화는 신화를 현실과 구분하는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적 탈신화화는 정치인들의 막강한 힘을 제거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슈퍼맨으로서의 기대를 갖지 말고, 그들이 얼마나 부도덕할 수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몰염치할 수 있는지를 현실적을 파악해야 한다. 그럴 때 바른 정치 구조가 이 땅에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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