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쇼인가?

얼마 전 내한하기도 했던 미국의 저명한 종교사회학자인 하비 콕스도 지적한 바 있지만, 최근 까지 부흥한 교회들은 거의 오순절적 계통에 속해 있는 교회라고 한다. 이런 유의 교회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강림을 가장 중요한 신앙경험으로 이해하고 신자들에게 이런 경험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예컨대 방언, 입신, 신유 등 초자연적 은사체험의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오순절적 교회는 한국뿐만 아니라 남북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대신 정통 침례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의 신자는 계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오순절 유의 교회와는 약간 다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별로 차이가 없는, 소위 ‘빈야드 운동’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도하 기독교 신문의 광고란을 보면 빈야드 교회의 단체 방문 및 견학 일정이 많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사이비 논쟁으로 까지 확장되고 있긴 하지만 그 빈야드 운동이 정체에 빠져 있는 교회를 7,80년대처럼 고속 성장시켜 보겠다는 한국 목회자들에게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유의 교회는 예배를 철저하게 현대화한다. 전통 교회의 예배가 형식적이고 엄숙해서 경우에 따라 상당히 진부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감각적 현대인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예배운동을 펼친다. 이들의 예배는 실로 다양하기 그지없다. 청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대형 화면에 시원한 풀밭의 양떼나 장엄한 자연경관을 비롯해 보기만 해도 감동적인 그림들이 돌아가며, 음향은 매우 감미롭게 전개된다. 특정 사회자가 틀에 박힌 예배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흡사 연극을 하듯이 각자 맡은 이들이 완벽한 연출에 따라 참여한다. 설교자도 전통 목사가운을 입지 않고 평상복을 입고 나와 아주 간단하게 복음적으로 전한다. 이런 빈야드 유의 교회는 기성교회의 엄숙주의를 탈피하고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많은 신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했다.
앞서 말한 순복음 유의 교회나 뒤에서 말한 빈야드 유의 교회가 갖는 공통점은 나름대로 볼거리를 많이 제공함으로써 청중들을 압도한다는데 있다. 70년대 말 서울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예배에 한 번 참석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으로는 예배가 매우 즉흥적이고 감각적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박수를 많이 쳤다. 설교를 하다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라고 하면 청중들이 박수를 쳤다. 본 예배에 이어 간단한 신유집회가 이어지는데 그 시간에 자신의 아픈 곳에 손을 대라고 하면서 사회자가 치료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곧 이어 병이 나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일어섰다. 또 다시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립시다.’는 말에 박수를 요란하게 쳤다. 그곳에 참석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호흡을 갖고 있듯이 강렬하고 열광적인 분위기가 예배의 처음부터 끝 시간 까지 지속됐다.
이들의 예배는 청중들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예배가 어느 정도까지 그런 대중성을 가져야만 하는가에 대해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라훈아 씨의 리사이틀에서 느끼던 흥분과 순복음 교회에서 느끼던 열광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KBS의 열린 음악회와 빈야드 운동 사이에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음악쇼와 예배라는 형식적인 차이만 있었지 그 공간 안에서 이루이지는 현상은 거의 동일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청중에게 어떤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감정에 호소하려고 하였다. 상업성에 물든 여러 쇼, 혹은 대중적 지지를 얻어야만 자기 유지가 가능한 연극무대 같은 것들이라면 그런 볼거리에 연연해한다고 해서 크게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에게서 그 존재근거를 갖고 있는 교회가 그런 볼거리에 중심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스럽지 않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그런 경향으로 치우쳐 있다는 건 대중동원에 끔찍스런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법이야 어찌됐건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툭하면 부흥회다 연예인 초청 집회다 해서 교회가 흡사 이벤트 사업을 하는 단체처럼 별의 별 기발한 사업을 떠벌린다. 더 가관인 것은 홍해작전이다 뭐다 해서 ‘작전’을 많이 벌리는데, 이 작전이라는 건 군사 문화적 소산이 아닌가. 그런걸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다. 하기야 군대만큼 효율성이 큰 집단도 없으니까 교회도 그걸 부러워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지 교회의 예배가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엄숙주의에 빠져서 모든 신자들이 빨리 끝나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위에서 언급된 류의 교회들의 예배나 행사처럼, 그리고 지금 많은 한국 교회들이 그렇게 따라가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은 류의 사업들 또한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요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갖고 있단 말인가? 이 자리에서 그런 대안을 모두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하나의 입장만이라도 분명히 하자. 성서적 전통 종교인 우리 기독교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볼거리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일들은 이방종교(바알, 아세라), 그리고 무당종교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성서적 신앙과 그 신앙의 형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놓여 있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떨어지더라도 말씀(설교)을 그 축으로 삼아야지 주변의 현란한 꾸밈이 안방을 차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교회의 예배는 결코 쇼가 아니다.(96.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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