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

일반적으로 노동자라고 하면 노동현장에서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일컫는다. 노사의 대립관계 속에서 보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에 속한 모든 이들이 노동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동의 중심을 육체에 두고 있는 이들을 노동자로 부르는 게 타당하다. 4천 년 전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쌓거나 2천2백 년 전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축성하던 이들, 그리고 대장장이나 백정, 구두장이, 청소부 등이 모두 순수한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 인류역사가 이런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해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노동은 문화와 역사창조의 밑거름과 같이 소중하다. 노동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런 행위가 아니면 인간일 수 없는 인간생명의 본질적 차원을 갖는다. 예컨대 모내기나 가을걷이를 함께 하면서 비록 힘이 들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공동의 노동행위를 통해서 공동체 의식을 나누게 될 뿐만 아니라 인간됨의 기쁨도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함께 일하고 함께 땀을 흘림으로써 존재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대 인간본질로서의 노동이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사라질 조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더 이상 땀을 흘릴 필요가 없는 그런 시대가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류역사에서 지난 몇 천 년 동안 때로는 점진적으로 때로는 급진적으로 많은 과학발전이 있었다. 경운기나 트랙터 등 여러 종류의 기계가 발명됐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이 직접 모내기를 하거나 탈곡기를 돌리지 않아도 좋게 됐다. 옛날 같으면 농사철만 되면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서 새벽녘부터 해가 떨어질 때 까지 논과 밭에서 흙과 씨름을 했지만 이제는 기계를 다룰 줄 아는 한 사람이 몫을 감당한다.
지금 까지도 과학문명의 발전으로 노동현실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앞으로의 사회는 이것 보다 훨씬 엄청난 노동현실의 혁명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아직 까지는 그래도 사람의 노동이 어느 정도 까지는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거의 필요 없게 될 날이 온다는 말이다. 자동차 공장의 예를 들어보자. 아무리 자동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아직은 어느 정도 노동자들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현대나 기아, 대우 등의 자동차 공장에는 아직 상당히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멀지 않은 때가 되면 완전 자동화되어서 지금에 비해 10분의 1이나 50분의 1 정도의 인원만으로도 현재와 같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사회가 되면 육체노동자는 사라지고 컴퓨터 관련 기술자들만 자리를 지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1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던 공장이 완전자동화 되어서 1백 명으로 충분히 돌아가게 된다면 결국 9천9백 명의 노동자들은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 엄청난 숫자의 노동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다른 회사도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의 실직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업주가 노동자들을 내보내지 않는다면, 그럴 사업주도 없지만, 그 회사는 아주 짧은 시일 안에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사업주 측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완전자동화 된 공장시스템을 구축해서 임금경쟁력에서 남보다 한발이라도 앞서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부 정치, 기술엘리트 등 사회주도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우리의 후손들은 아무 일자리 없이 빈둥빈둥 놀면서 정부가 베풀어주는 주는 최소한의 실업수당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이런 암울한 미래를 충분한 자료와 연구 분석을 근거로 해서 설득력 있게 설파하고 있는 학자가 있는데, 그는 <노동의 종말>이란 책을 쓴 제레미 리프킨이다. 그는 소프트웨어가 노동자를 대체하게 될 것이며 각 기업마다 리엔지니어링으로 일자리를 대폭 삭감하게 됨으로써 결국 노동자 없는 시대가 다가오리라고 예고한다. 이미 미국, 일본, 유럽의 일류 기업에서는 대량해고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1981년에서 1991년 사이에 미국의 제조부문에서 1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독일의 경우에도 1992년에서 1993년 사이에 5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리프킨이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근대적 기술이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희망과는 달리, 또한 기술적 풍요의 현실과는 달리 노동자들의 경제적 운명은 계속 악화될 것인데, 그 이유는 지나친 기술 의존적 가치관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술발전의 무한경쟁은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만 유발시킴으로써 결국 일반 대중의 삶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그의 예측이 들어맞을는지는 조금 더 살펴야봐야 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난 96년12월26일 새벽에 여당단독으로 노동법이 날치기 처리된 이후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처리된 노동법의 관건은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인 것 같은데, 그것의 문제점이 얼마나 있건 없건 간에 지금과 같은 시대정신 가운데서는 그런 길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옳던 그르던 노동의 집중력이라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노동자나 사업주나 노동의 종말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성이 도구적으로만 이해되고 발전과 복지만이 지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근대주의정신 안에 갇혀 있는 한 노동의 본질은 훼손당하게 되고, 결국 인간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199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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