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교회

교회가 하나의 기구로서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이 있은 후, 평소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회고하면서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아마 이것이 교회의 시작이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때에는 아무런 조직이나 제도가 없었으며, 오직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사도행전과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해 보면, 그 당시 교회의 구성원들은 주로 서민층이었다는 것과 교회의 재정적 형편이 별로 양호하지 못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특히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교로부터 종교적 핍박을 받아서 그 공동체에 속해 있던 많은 신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으며, 때로는 예루살렘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초대 교회의 가난한 모습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급기야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면서 뒤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기 이전에도 어느 정도의 제도와 틀을 구성하고 있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확장되기는 아무래도 콘스탄틴 이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로마제국과 더불어 세속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 계속해서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의 결탁 내지 연대를 통해서 서로의 세력을 넓혀갔다.
건축물에서도 그러한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유럽의 역사적인 건축물은 거의 교회나 왕궁이다. 물론 유서 깊은 대학 건물이 있긴 하지만 대학도 역시 성직자들이 신학을 연구하기 위한 시설이었기 때문에 종교와 정치의 두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유럽의 교회는 천 년이 훨씬 넘는 중세의 역사를 통해 매우 부유한 집단으로 탈바꿈하였다. 세속 정치는 교회를 위하여 면세 조치를 해 주거나 적당한 부동산을 제공하였고, 교회는 세속 정치를 위하여 저들에게 종교적 정당성을 제공하였다. 교회와 정치가 서로 상부상조하는 밀월의 시간들이었다.
이 시기에 교회는 라틴신학을 체계화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책임지는 기구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라틴신학의 전통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거부할 수만은 없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헬라의 이원론적 사상에 착상되어 있으며, 세속 정치와 결탁한 정치 신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세속 권력자들의 비호와 서민들의 종교심에 의하여 교회는 큰 부를 쌓게 되었다. 그 부의 흔적을 우리는 현재 로마 교황청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교권을 통해 로마 카톨릭은 세속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부를 축적했으며 그 도가 지나쳐 결국 16세기에 종교개혁의 파도가 교회를 덮치게 되었다.
중남미 나라들은 거의 스페인어나 포르투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의 역사적 배경에는 역시 부해지려는 인간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16~18세기에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바다를 지배하고 있던 이들 나라는 닥치는 대로 약한 나라의 원주민은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원주민을 회개시킨다는 미명하에 원주민의 언어를 빼앗고 그들을 강제로 기독교화했으며, 노골적으로 그들의 재화를 수탈했다. 이러한 일에 기독교가 한몫을 감당했음은 물론이다.
교회가 정치가들에게 이용당했는지 아니면 정치가들의 음모에 맞장구를 쳤는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의든 타의든 교회가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장에 일조를 한 것만은 분명하다.
1960년 대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카톨릭 교회는 서구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부한 나라의 부한 교회가 갖고 있던 구조를 가난한 나라에 그대로 심으려는 그 시도를 거부했는데, 그 신학운동을 가리켜 해방신학이라고 한다. 이들은 가장 핵심적인 신학적 동기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와 수탈당한 자를 편애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철저하게 빼앗긴 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도 이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극단적 사고방식이 없지는 않지만, 이 자리에서는 해방신학을 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일단 접어 두고자 한다. 교회가 부해지려고 할 때 교회는 정치와 야합하게 되었으며(정치·경제 정의를 위해 침묵하는 것도 역시 그런 것인데), 또한 교회가 부를 많이 소유할수록 그 부에 종속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너무 부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 50개 대교회 중에 그 절반이 한국에 있다는 보도를 접하였지만,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심정이 되었다. 세계적인 초일류 대형 교회가 우리 나라에 많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어설프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일일까?
엄격하게 말해서 교회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소금과 같아서 짜게 하는 성격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아무리 큰 교회가 많아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오늘 우리가 느끼는 삶의 질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 현풍제일교회는 가난한 교회이다. 장마철엔 아무리 손질을 해도 몇 군데씩 비가 새는 스레트 지붕의 작은 교회다. 그러나 작은 교회라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작은 것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가 가난한 나라로 남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부정한 나라로 남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죄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1993년,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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