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 노벨상, 성수대교

10월2일 부터 16일 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제12회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는 당초 기대하고 희망했던 대로 금63, 은53, 동63개로 금59개의 일본을 제치고 42개국 중에서 당당히 종합 2위를 달성했다. 이번의 쾌거로 인해 우리는 86 서울 아시안 게임으로 부터 연속 3회 종합 2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적 결과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므로 써 앞으로 외교력의 상승과 아울러 상품수출입에 관한 부수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우리가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던 주최국 일본을 남한 선수들로만 구성된 우리가 이겼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들의 속마음을 후련하게 해 준 것 같다. 이제 우리가 노력만 하면 경제적으로도 일본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많은 선수들이 잘 싸웠지만, 특히 황영조 선수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일본 선수를 보기 좋게 따돌린 그 멋진 순간을 우리 국민들은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우리가 일본을 이겼다고 온통 잔치판 같이 떠들고 있는 그 순간에 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시안 게임 종합 2위와 노벨 문학상을 비교한다면 어느 쪽에 더 점수를 주어야 할는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본인이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노벨상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아시안 게임에서 월등한 성적으로 거두고, 올림픽 경기에서도 10위에 오르내리면서 일본 사람들이 여덟 번(?)이나 수상한 노벨상을 한 번도 타지 못하는 걸까? 물론 세계사적으로 위대한 시인과 소설가들이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구성이나 그들의 편향적 사고방식에서 찾으려 한다면 오히려 우리의 속 좁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물리학이나 화학, 경제학 부문이야 이미 그런 쪽에 앞선 나라의 학자들에게 기득권이 돌아갈지 모르지만, 평화상이나 문학상 같은 것은 결코 선진국에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다시피 소위 제삼세계의 문인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 적도 많다. 만약 남북한의 분단문제를 획기적으로 풀 수만 있다면 당연히 노벨평화상을 받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데 남쪽이나 북쪽의 관련 인사들이 그런 거시적 안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우리에게 노벨평화상은 난망하다 하겠다. 한편 노벨 문학상을 우리가 아직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점을 다른 나라에서는 의외로 생각한다는데, 2차 세계대전과 남북전쟁, 그리고 50년에 이르는 분단의 현실을 안고 살면서도 그에 걸맞은 문학작품이 없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그가 경험한 고통만큼 성숙해 진다는, 약간 진부한, 그런 말을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이 당한 고통은 이 세계를 향해서 인간의 존재와 세계의 미래에 대해 무언가 참된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데도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재가 부족하단 말인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이게 과장된 것이라면 최소한 어깨를 겨룰만큼 총명한 민족 중의 하나인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인가?
아무리 세계적인 문학작품을 쓸 수 있는 역사적 소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문학적으로 소화할 만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한 투자에 인색하게 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을 위해서 우리 정부가 투자하는 것의 반, 혹은 십분의 일만이라도 문학발전을 위해 투자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번에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평균 일천만원 정도의 포상금이 돌아간다고 한다. 이미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들에게 적지 않은 연금이 지급되고 있다. 선수들을 태릉선수촌에서 일 년이나 육 개월 씩 단체훈련을 시키고 그 성과에 따라 돈을 주니까 이런 아시안 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다. 매일 밥만 먹으면 운동을 하는 사람과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이웃을 위해 봉사도 하며 사는 사람이 운동시합을 한다면 누가 이길는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나라가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통해 아무리 금메달을 휩쓸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체육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정말 정치기술에 불과하지 국가적 수준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아시안 게임 출전 선수들이 돌아오자마자 며칠 지나지 않아 지난 21일 아침 출근길에 한강의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삼십 여명이 사망했다. 대통령이 저녁 8시에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던 24일, 성명에 앞서 충주호에서 유람선의 화재로 삼십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큰 일이 터질 때 마다 <우째 그런 일이!>라고 한탄하셨다고 하는데, 요새 같으면 대통령 된 것을 후회하실지 모르겠다. 79년에 동아건설에서 완공한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두고 여러 모로 문제점이 분석되었다. 설계의 문제인지, 시공의 문제인지, 관리의 문제인지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인간 삶 자체에 대한 관심의 부족인 것 같다. 다리의 보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국장이 전결 처리해 버렸는지, 시장에게 까지 보고가 되었지만 밑에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급하게 출세하고 돈을 벌고, 그리고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앞서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은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아직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마당에 개혁의 칼을 녹슬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10월을 우리는 잔인하게 보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9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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