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

오래 전에 읽은 모파상의 단편소설<비곗덩어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사람들이 <비곗덩어리>라고 낮추어 부르는 창녀가 있었다. 독일과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게 된다. 그 마을 수녀와 공장 사장과 그 외에 내로라하는 지역 유지들이 타고 피난을 떠나는 그 마차 한쪽 켠에 평소 그들이 모욕을 주던 <비곗덩어리> 창녀도 앉아 있었다. 그 마차에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그 사람들은 자기들 속에 창녀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매우 꺼림칙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그 여자에 대한 소문을 쑥덕거리며 피난길을 떠났는데, 해질 무렵 도착한 마을은 이미 독일군에 의해 앞서 점령되어 있었다. 그들은 점령군 책임 장교에게 자기들은 순수한 민간인이므로 그냥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독일군 장교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포로로 삼을 것처럼 은근히 위협을 가했다. 여러 번에 걸쳐 협상을 벌인 결과 그 마차에 타고 있던 여자 중에 한 사람이 독일군 장교와 하룻밤을 보내기만 하면 다음날 아침 아무 탈 없이 모두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사람들은 살았다는 심정으로 <비계 덩어리>라 불리던 창녀에게 가서 “우리의 생명을 살려준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룻밤만 독일군 장교와 동침해 주시오.”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 창녀는 비록 몸을 파는 여자지만 독일군 장교에게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여러 시간에 걸쳐 이 사람들은 이 창녀를 구슬리고 위협하고 애걸했다. 사장, 지방의원, 수녀, 선생들이 그 앞에 와서 “제발 좀 들어주세요.” 라고 했다. 결국 그녀는 그날 밤 독일군 장교와 잠자리를 같이 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이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독일군 장교에게 간 여자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부리나케 그 마을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창녀는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허겁지겁 겨우 마차에 올라탔다. 독일군을 피해 멀리 도망치는 이 마차 안에서 사람들은 준비해 온 음식을 맛있게 들면서 한쪽 켠에 맥없이 앉아있는 창녀가 들으라는 식으로 “그래, 넌 어쩔 수 없는 비계 덩어리 같은 창녀야. 저런 여자하고 같은 마차를 타고 간다는 게 정말 창피해 죽겠어.”라면서 힐긋거렸다.
위에서 약간 길게 설명한 모파상의 이 작품은 그 마차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과연 누가 <비계 덩어리>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사회적인 통념이 인간을 얼마나 잘못 평가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로가 자기들의 위신과 체면을 앞세우며 그렇지 못한 이들을 자꾸 깎아 내리는 그 당시의 상류층 인사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여자의 경우처럼 인간 사회 속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춘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원리에 따라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하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있기 때문이다. 성(性)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나이의 젊은이들로 부터 시작해서, 사회적으로 안정된 중년층이나, 심지어는 성적인 관심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매매춘(賣買春)을 필요로 한다. 군인들이 삭막한 군대생활을 하다가 휴가 때 사회에 나오면 대단히 많은 수가 흥등가를 찾아간다. 요사이 연예계 비리가 드러나고 있는데, 그중에는 PD들이 여자 탤런트나 가수들을 사회 지도층과 연결시켜주는 일 까지 있는 것 같다. 인간은 그만큼 성적 파토스를 조절하거나 억제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동물인 셈이다. 만약 매춘을 무조건 제거해 버린다면 성폭력 사건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하게 발생하게 되지는 않을까? 매춘의 근절은 아직도 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 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사실은 그런 사회에서도 성범죄는 발생하지만 말이다.
왜 매춘이 죄가 되는가? 공장에 나가 육체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거나 아니면 소설을 써서 돈을 벌면 떳떳하다고 생각하면서 성(性)을 팔아서 돈을 벌면 죄가 되는 이유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까? 이탈리아에서는 포르노 영화배우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고,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매춘을 정당한 직업으로 간주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건 일반적인 우리의 윤리기준과 너무 거리가 먼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어쨌거나 이 문제는 그 사회적 관행과 전통 안에서 생각되어야지 단순히 일률적으로 판단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즉 우리의 유교적인 동양 문화권과 근동지역의 이슬람문화권, 그리고 기독교적 유럽문화권은 현격한 윤리적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배경을 감안한 상태에서만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매춘은 결국 <성윤리>에 직결된 문제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성윤리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제공할 만큼 충분한 지면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단적인 질문만 제기해 보도록 하자. 성(性)은 죄인가, 아닌가? 그것은 부끄러움인가, 아닌가? 그건 죄도 아니고 부끄러움도 아닌 인간의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이다. 성서적 신앙 안에서 본다면 그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문제는 성이 파괴적으로 사용되는가, 아니면 창조적으로 사용되는가에 따라 그 행위가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매춘을 우리가 죄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일반적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비인간적으로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죄는 모파상이 고발하고 있듯이 정신적인 <비곗덩어리>이며,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향해 돌을 들고 서 있던,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던 그런 사람들의 교만이다. <9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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