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체

10월2일 케이비에스 티브방송국에서는 <선교 120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를 방영했다.
한기총에 속한 일부 교회와 신자들이 그에 앞서 며칠 동안 방송국 앞에서 데모를 했다.
데모인지, 기도회인지 내가 잘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방영을 앞두고 압력을 넣는 행위였다.
그들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왜 그런 모임을 할까?
방송국이 의도적으로 기독교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내용 중에서 부정적인 주제에 해당되는 교회의 일방적인 반응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방송과 그에 대한 한기총의 반응을 보면서 착찹한 마음이 들었다.
기독교가 왜 이렇게 종교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지,
상당히 추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메스컴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 대응해야지
무조건 기독교를 핍박한다는 식으로 몰아치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체제 안에서 기독교가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할 말 다 하면서 수난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케이비에스의 방송을 나도 직접 시청했는데,
피디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거의 변죽만 울리는 식으로 끌어갔다.
아무 것도 아닌,
거의 심심풀이 땅콩 정도의 내용에 불과한 것을 두고
신자들을 동원해서 방송 반대 기도회를 연 한기총 집행부는 도대체 무엇하는 집단인가?
그들이 툭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왜 이렇게 기도회를 남발하는가?
오늘(10월4일) 오후 4시에는 서울 시청 앞에서 경찰 추산 10만명 이상이 모여서
또 시국 기도회를 열었다고 한다.
한기총과 보수시민단체가 모여서 반정부 시위와 같은 집회를 열었다.
보수 시민단체의 공식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기독교의 기도회가
오픈 행사처럼 열렸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도 등장하셨다고 하는데,
왜 기독교가 이렇게 타락하는 걸까?
군사독재 시절에는 말 한마디 못하던 분들이,
아니 군사독재자들을 위해서 조찬기도회를 열던 분들이
이제는 왜 저렇게 말씀들이 많은 걸까?
오늘 나는 기분이 좀 우울하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 가까운 친구 목사가 인천지역의 대형교회 담임 목사로 가기에
송별 모임을 가졌는데,
그곳에 참가한 목사들이 한결같이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럽게 되었다고
비판 일색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논설위원은 노무현 정부에게 색갈을 밝히라고 다그쳤다.
가관이다.
색갈을 무슨 색갈을 밝히는가?
김대중의 눈에는 모든 인간과 역사의 문제를 그렇게 색갈로만 재단하는가?
그는 노무현의 색갈을 모르겠다고 한다.
좌파라고 떳떳이 나서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가 어떻게 좌파인가?
그는 경우에 따라서 우파이고 경우에 따라서 좌파이다.
아니 우파, 좌파라기보다는
그런 정책을 선택할 뿐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적인 실용주의자이다.
대한민국에 가장 이익이 되는 길을 찾아가되 가능하면 진보적으로 가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보인사들로부터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왜 사람에게 색갈을 씌우려고 하는가?
지금 이 세상에는 좌파 정부는 없다.
중국마저 자본주의적 경제정책을 쓰고 있는 마당에 좌파를 선택할 정부는 없다.
이제는 국가 이익에 최선을 다 할 뿐
이데올로기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대중 논설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색갈을 밝히라고 주장한다.
오늘 한기총의 모임에서도 사립학교법 반대, 국보법 반대가 핵심 주제였다고 한다.
수도 이전 반대도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미국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고 하는데,
그들에게는 부시가 메시아다.
내 주변에 있는 대다수의 목회자들과 친인척들이 노무현을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벌떼같이 달려들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상고 출신 대통령이라서 그런가?
퍼스트 페이디가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탓인가?
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트집을 잡는 걸까?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발언을 두고 그렇게 오랫동안 말꼬리를 잡는 나라가
우리 말고 어디에 있을까?
언어는 현장의 사건이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이 말이 나온 현장을 놓치고 단지 그 말 자체만으로
신중하지 못하다느니, 대통령 체통이 서지 않는다고 따지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아니면 경직되었다는 증거다.
내일 나는 기장 목회자 세미나에 가서 설교에 관한 특강을 두편 해야한다.
오늘 공연히 흥분하다가 내일 특강 망치지 말아야겠다.
지난 주말에 며칠에 걸친 방송국 앞 기도회,
오늘 보수 단체와 연합해서 개최한 기도회 때문에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이런 행태야말로 전형적인 '정치신학'이다.
종교를 빙자한 정치행위이다.
도대체 국보법 반대를 주제로 기도회를 열고 있는 그들의 신앙은 무언가?
인권을 침해하는 국보법 반대를 위한 기도회라면 그건 가능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권리는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안보를 명분으로 국보법 폐지를 반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만 하자.
여호와의증인에 속한 사람들이 대체군복무를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리에 나서서
재를 뿌리는 그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역사와 존재의 신비는 사라지고
오직 도그마와 규범만 득세하고 있는 오늘의 이 기독교 현상 앞에서 나는 참으로 비통하다.
생명의 영인 성령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자신들이 차지하고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반공을 기독교와 하나로 생각하는 그들과
내가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앞에서 나는 좌절한다.
아마 이런 방식으로 기독교가 자기의 길을 계속 간다면
멀지 않아 이 민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내가 만약 목사가 아니라면 이런 교회에 남아 있을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진리에 빛에 자기를 맡기고 있는 숨어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결국 진리에 의해서 진행되리라는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속도를 내가 답답해하고 있으며
그 은폐성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키리에 엘레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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