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직장 폐쇄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워커힐이 있는 아차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천호동에 살았던 탓에 장로회신학대학교에 들어갈 뻔 하다가
출신 교회가 성결교회인 관계로 서울신학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그 아차산 밑에 한강이 흐르고
그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광나루’입니다.
지금은 그 근처에 몇 개의 다리가 놓여졌지만
제가 자랄 때만 하더라도 광나루 다리 하나였습니다.
언제 기회다 닿으면 그 광나루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오늘 주제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광나루 다리 서편으로 천호대교가 있는데,
이 천호대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돌면 돌로 지은 아름다운 교회당이 보입니다.
광성교회입니다.
아마 저의 오랜 기억이 맞는다면 어느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회인데,
모교회보다 훨씬 바르게 성장했습니다.
제가 신학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제법 큰 교회였는데,
그 뒤로 대표적인 대형교회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최근에 ‘직장폐쇄’를 했다고 합니다.
좀 우습지요.
교회가 직장폐쇄를 하다니 말입니다.
로마에 의해서 수난받던 초대교회나,
혹은 소아시아와 아프리카가 마호멧 군대에 의해서 침략당한 시대,
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서 교회가 핍박당하던 러시아,
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북한이나 중국의 공산당에 의해서 수난 받던 시대,
기독교 신자가 급격히 줄어 교회당을 유지할 수 없어 매각할 수밖에 없는 영국 같은 나라 이외에
기독교 역사에서 스스로 직장 폐쇄를 결정한 교회는 전무후무합니다.
말도 좀 사납습니다.
직장폐쇄!
그 전후 사정을 여기서 일일이 되풀이 할 생각은 없습니다.
짧게 끊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로 목사와 담임 목사 사이에 무슨 일로 인해서 틈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원로 목사 편에 기울어 있던 부목사 10명이 기독교 목회자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떨어지자 그들은 교회당 앞마당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 농성을 막기 위해서 담임 목사 쪽이 직장폐쇄를 노동부에 제출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누가 잘하고 못했는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는 게 아닙니다.
양쪽이 할 말은 산처럼 많겠지요.
또는 양쪽 중에서 더 잘못한 쪽이 있을 수도 있고,
양쪽이 모두 잘못 했을 수고 있고,
혹은 한쪽이 결정적으로 잘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서로의 감정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까지 갈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상대방을 사탄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를 지켜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쪽이 그런 정도로 악하고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만약 그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책임의식이 있다면
이렇게 까지 교회가 추락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겁니다.
한쪽이 물러나서 다른 길을 택하든지,
그것도 안 된다면 늘 하듯이 교회를 분리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물론 분리가 능사는 아닙니다.
정의를 위해서 끝까지 투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문제만큼은 끝까지 투쟁해야 할 때가 없습니다.
마틴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아무리 부패했어도
농성이나 직장폐쇄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진리 투쟁을 했을 뿐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학적 판단을 글로 출판하고 강연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나름으로 자기 정화의 길을 걸었고,
개신교회라는 독특한 교회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광성교회가 사태가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요?
많은 문제가 여기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40년 가까이 이 교회를 키워온 원로 목사의 열정이 지나쳤을 수도 있고,
원로 목사의 힘을 단숨에 제거하고 자기의 교회로 만들겠다는 담임 목사의 욕망이 개입할 수도 있습니다.
열정과 욕망이 증폭되어 이런 “막 가는 길”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광성교회 신자들 자체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큰 교회라는 이름 밑에서 안주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교회를 떠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광성교회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어떤 정신적인 울타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런 종교적인 현상 자체를 내가 탓할 생각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교회라는 그 소속감이 한국교회를 비열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이유라는 사실을
대개 교회에 열정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목사들은 이렇게 ‘막나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농성, 직장폐쇄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면 이미 교회의 본질에 크게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건 거의 사이비 종파의 행태와 다를 게 없는데,
그렇다면 모든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든지
아니면 이런 문제를 야기한 장본인들 모두를 척결하든지 해야하는데
그들은 양쪽으로 갈라져서 여전히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 평신도 지도자들은 광성교회가 자기 교회라고 생각하고 떠나지 못합니다.
만약 이번 일도 광성교회 신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다른 교회로 나간다면,
더 바람직한 것은 그 교인들이 작은 교회로 옮기는 것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는 아무 것도 손해될 것이 없는데,
그때서야 이번 일을 일으킨 분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면 아예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없었겠지요.
간혹 우리는 어느 교회 몇 대 교인이라는 것을 자랑하듯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름다운 일이기는 합니다.
한 교회에 할머니, 어머니, 딸, 손녀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다닌다는 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자랑할만한 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진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자기 교회를 떠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한국처럼 교회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양극화한 상황에서는
이런 일들을 제도적으로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구’제도가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산에 사는데도 서울에 있는 여의도순복음 교회에 다닌다고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님이라는 이름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이 그들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다른 것보다는 개교회주의가 느슨해지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 운동이 활기를 찾는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폭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일어나는데도,
이익집단과 똑같은 현상을 보이는데도 끄떡하지 않는 교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번 광성교회와 같은 사태는 자주 반복될 것이며,
그 와중에, 좀 속되게 표현해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순진한 신자들과 작은 교회가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역사는 숨어서 일어납니다.
깊은 영성을 소유한 사람들의 숨은 기도와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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